가계

거칠부(居柒夫)030030 ?~579. 진흥왕 때의 장군으로 황종(荒宗)이라고도 하나, 이를 읽을 때는 거칠부로 훈독하였을 것이다. 거칠부(居柒夫)를 혹은 황종(荒宗)이라고 함은 국어 연구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거칠(居柒)은 황(荒 : 거칠)의 국어요, 종(宗)의 훈(訓)인 '보'는 부(夫)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이사부혹운태종(異斯夫或云苔宗)'에서도 볼 수 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3쪽).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의‘居七夫’, 마운령진흥왕순수비의‘居朼夫’,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7 계체기(繼體紀) 23년조의 ‘久遲布禮’가 동일인이다. 나물왕(奈勿王)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각간(角干) 잉숙(仍宿)이고 아버지는 소지왕(炤知王)의 장인인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신라 6부의 탁부(啄部) 출신이다. 일찍이 승려가 되어 고구려 강역에 들어가 혜량법사(惠亮法師)의 강설(講說)을 들었다. 진흥왕 8년(547)에 대아찬(大阿湌)으로서 왕명을 받아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진흥왕 12년(551) 소백산맥을 넘어 고구려 영토의 10개 군현을 탈취하였다. 이 밖에 한강 유역의 점령, 대가야의 복속 등 활발한 정복전쟁의 주역이 되었다. 진지왕(眞智王) 원년(576) 이찬(伊湌)으로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3쪽).닫기 혹은 황종(荒宗)이라고 한다.의 성은 김씨이고 나물왕(奈勿王)031031 신라 제17대왕이다.닫기의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각간(角干)032032 각찬(角湌)이라고도 하며 신라 제1관등인 이벌찬(伊伐湌)의 별칭이다.닫기잉숙(仍宿)033033 거칠부의 할아버지로, 물력(勿力)이 아들이다. 각간에까지 올랐다.닫기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034034 거칠부의 아버지로, 이찬까지 올랐다. 아버지는 각간을 지낸 잉숙(仍宿)이다.닫기이다.

註 030
?~579. 진흥왕 때의 장군으로 황종(荒宗)이라고도 하나, 이를 읽을 때는 거칠부로 훈독하였을 것이다. 거칠부(居柒夫)를 혹은 황종(荒宗)이라고 함은 국어 연구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거칠(居柒)은 황(荒 : 거칠)의 국어요, 종(宗)의 훈(訓)인 '보'는 부(夫)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이사부혹운태종(異斯夫或云苔宗)'에서도 볼 수 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3쪽).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의‘居七夫’, 마운령진흥왕순수비의‘居朼夫’,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7 계체기(繼體紀) 23년조의 ‘久遲布禮’가 동일인이다. 나물왕(奈勿王)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각간(角干) 잉숙(仍宿)이고 아버지는 소지왕(炤知王)의 장인인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신라 6부의 탁부(啄部) 출신이다. 일찍이 승려가 되어 고구려 강역에 들어가 혜량법사(惠亮法師)의 강설(講說)을 들었다. 진흥왕 8년(547)에 대아찬(大阿湌)으로서 왕명을 받아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진흥왕 12년(551) 소백산맥을 넘어 고구려 영토의 10개 군현을 탈취하였다. 이 밖에 한강 유역의 점령, 대가야의 복속 등 활발한 정복전쟁의 주역이 되었다. 진지왕(眞智王) 원년(576) 이찬(伊湌)으로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3쪽).
註 031
신라 제17대왕이다.
註 032
각찬(角湌)이라고도 하며 신라 제1관등인 이벌찬(伊伐湌)의 별칭이다.
註 033
거칠부의 할아버지로, 물력(勿力)이 아들이다. 각간에까지 올랐다.
註 034
거칠부의 아버지로, 이찬까지 올랐다. 아버지는 각간을 지낸 잉숙(仍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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