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들어가 혜량법사의 강설을 듣다

거칠부는 젊었을 때 마음이 해이하여 실없지 않았고 원대한 뜻을 품었으며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며 구경하였다. 곧 고구려를 엿보려고 그곳에 들어갔다가 혜량법사(惠亮法師)035035 고구려의 승려이다. 고구려에서 정치가 혼미해져 말기적 현상이 나타나자, 거칠부(居柒夫)가 고구려에 밀정으로 갔을 때에 신라에 귀부할 결심을 하고 약속하였다는 일화가 본전(本傳)에 보이고 있다. 그가 어느 곳의 사찰에 머물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칠부가 죽령(竹嶺) 이북을 점령하였을 때에 그를 다시 만난 점으로 미루어 현재의 경기도 이남 또는 충북 이북의 어느 절에 머물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진흥왕 12년(551)에 신라에 귀화하여 거칠부의 천거에 의하여 사주(寺主 : 國統)가 되었고 백고좌강회(百高座講會)와 팔관회(八關會)를 최초로 주관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3쪽).닫기가 절(堂)을 개창하여 불경을 설법한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내 [그 절에] 나아가 경전의 뜻을 해설하는 것을 들었다.

註 035
고구려의 승려이다. 고구려에서 정치가 혼미해져 말기적 현상이 나타나자, 거칠부(居柒夫)가 고구려에 밀정으로 갔을 때에 신라에 귀부할 결심을 하고 약속하였다는 일화가 본전(本傳)에 보이고 있다. 그가 어느 곳의 사찰에 머물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칠부가 죽령(竹嶺) 이북을 점령하였을 때에 그를 다시 만난 점으로 미루어 현재의 경기도 이남 또는 충북 이북의 어느 절에 머물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진흥왕 12년(551)에 신라에 귀화하여 거칠부의 천거에 의하여 사주(寺主 : 國統)가 되었고 백고좌강회(百高座講會)와 팔관회(八關會)를 최초로 주관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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