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摠章) 원년 무진(戊辰:668, 문무왕 8)에 고종(高宗) 황제가 영국공이적(英國公李勣)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또 [김]인문을 보내 우리에게 군사를 징발하게 하였다. 문무대왕(文武大王)이 [김]인문과 함께 군사 20만을 내어 가서 북한산성(北漢山城)에 이르렀다. 왕은 여기에 머무르고, 먼저 [김]인문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군대와 만나게 하였다.
평양성을 공격한 지 한 달 이상이 지나, [고구려]왕 장(臧)을 사로잡았다. [김]인문이 [고구려]왕으로 하여금 영공(英公) 앞에 꿇어 앉게 하고 그 죄를 헤아렸다. [고구려]왕이 재배하고 영공은 예로 그것에 답하였다. [영공은] 곧 [고구려]왕과 남산(男産)·남건(男建)·남생(男生) 등을 데리고 돌아갔다.
문무대왕은 [김]인문의 영특한 재략과 용감한 공로가 보통의 예보다 뛰어났으므로, 죽은 대각간(大角干)박뉴(朴紐)의 식읍(食邑) 5백 호를 내렸다. 고종도 [김]인문이 여러 차례의 전공(戰功)이 있음을 듣고서 제서(制書)를 내려,
“용감하고 훌륭한 장수요, 문무(文武)에 뛰어난 재사이다. 작(爵)을 제정하고 봉읍을 주고 그 위에 아름다운 명을 내림이 마땅하겠다.”고 하였다. 인하여 작록과 식읍 2천 호를 더하였다. 그 후로 [당의] 궁궐에서 시위(侍衛)하기를 여러 해 동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