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대각간에 추증되고 서원에 묻히다 ( 695년 10월27일(음) )

효소대왕(孝昭大王)114114 신라 32대 왕이다.닫기은 [인문에게] 태대각간(太大角干)115115 신라 17위 관등과 대각간(大角干) 위에 더한 비상위(非常位)이다. 문무왕 8년(998)에 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이 큰 김유신에게 준 것이 그 시초이다.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이라고도 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05쪽).닫기을 추증하였다. 담당 관서에 명을 내려 연재(延載) 2년(695, 효소왕 4) 10월 27일에 서울 서쪽 언덕(西原)116116 경주 서악(西岳) 아래로, 1931년에 지금 서악서원(西岳書院) 구내(構內)에서 김인문의 묘비 일부가 발견되었다. 그 분묘도 본래 그 구내에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그 형체가 없어지고 비석도 매몰되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9쪽). 비석편은 현재 국립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05쪽).닫기에 묻었다.117117 김인문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로는 1913년에 경주 서악서원에서 발견된 김인문비가 있다(이강래 옮김, 《삼국사기》 Ⅱ, 한길사, 1998, 792쪽)닫기

註 114
신라 32대 왕이다.
註 115
신라 17위 관등과 대각간(大角干) 위에 더한 비상위(非常位)이다. 문무왕 8년(998)에 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이 큰 김유신에게 준 것이 그 시초이다.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이라고도 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05쪽).
註 116
경주 서악(西岳) 아래로, 1931년에 지금 서악서원(西岳書院) 구내(構內)에서 김인문의 묘비 일부가 발견되었다. 그 분묘도 본래 그 구내에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그 형체가 없어지고 비석도 매몰되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49쪽). 비석편은 현재 국립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05쪽).
註 117
김인문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로는 1913년에 경주 서악서원에서 발견된 김인문비가 있다(이강래 옮김, 《삼국사기》 Ⅱ, 한길사, 1998, 792쪽)
주제분류
사회>의례>관혼상제>상제
정치>법률>행정>시호
색인어
이름 : 효소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