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주에서 스스로 왕이 되다

드디어 무진주(武珍州)061061 현재의 광주광역시 일대이다.닫기를 습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062062 본 열전에서는 892년을 후백제 원년으로 보았으나 《삼국유사》에는 원년을 88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라가 庚寅(930)까지 42년간 지속되었다는 열전의 기록으로부터 역산하여도 원년은 889년이 합당하다. 한편 남원 實相寺의 片雲浮屠碑片에는 “政開十年 庚午“(910)의 기록이 있으니 이는 견훤이 나라를 전주로 옮긴 후에 연호를 칭하였다고 생각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826쪽).닫기 아직 감히 공공연히 왕을 칭하지는 못하였다. 스스로 서명하기를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 지절(持節) 도독전무공등주군사(都督全武公等州軍事)063063 전주, 무주, 공주는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 백제의 옛 땅을 셋으로 나누어 설치한 州로서 견훤이 신라의 관직을 自署할 때부터 백제의 계승을 표방하였다고 보는 설도 있다(박한설, 「후삼국의 성립」,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7, 619~620쪽)(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826~827쪽).닫기 행전주자사(行全州刺使) 겸 어사중승(御史中丞) 상주국(上柱國) 한남군개국공(漢南郡開國公) 식읍이천호(食邑二千戶)라고 하였다.


註 061
현재의 광주광역시 일대이다.
註 062
본 열전에서는 892년을 후백제 원년으로 보았으나 《삼국유사》에는 원년을 88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라가 庚寅(930)까지 42년간 지속되었다는 열전의 기록으로부터 역산하여도 원년은 889년이 합당하다. 한편 남원 實相寺의 片雲浮屠碑片에는 “政開十年 庚午“(910)의 기록이 있으니 이는 견훤이 나라를 전주로 옮긴 후에 연호를 칭하였다고 생각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826쪽).
註 063
전주, 무주, 공주는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 백제의 옛 땅을 셋으로 나누어 설치한 州로서 견훤이 신라의 관직을 自署할 때부터 백제의 계승을 표방하였다고 보는 설도 있다(박한설, 「후삼국의 성립」,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7, 619~620쪽)(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826~8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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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 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