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왕(奈勿王) 나밀왕(那密王)이라고도 한다김제상(金堤上)
제17대 나밀왕(那密王)510510 신라의 제17대 왕으로 나물(奈勿) 혹은 나밀(奈密)이라고도 한다. 김씨로서 왕위에 오른 두 번째 임금으로, 재위 기간은 356∼402년이다. ≪삼국사기≫에서는 나물을 ‘이사금’이라 하였으나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는 이 왕대부터 마립간이라 칭하였다. 나물왕 이후에는 종전과 같은 3성 교립이 없어지고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377년과 382년 두 차례에 걸쳐 전진에 사신을 파견한 점으로 보아 신라가 이때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 36년 경인(庚寅)에 왕이 사신을 보내 와서 이르기를 “우리 임금이 대왕께서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신 등을 시켜 백제가 지은 죄를 대왕에게 아뢰게 하는 것이오니,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왕자 한 분을 보내어 우리 임금에게 성심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이에 왕은 셋째 아들 미해(美海) 미토희(未吐喜)라고도 한다.511511 미토희(未吐喜)·미흔(未欣)(≪삼국유사≫ 왕력 자비마립간)이나 미사흔(未斯欣)(≪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실성이사금 원년 3월)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미해는 나물이사금의 아들로 눌지마립간 2년(418)에 왜로부터 돌아왔다. 그는 눌지마립간 17년(433)에 죽었으며, 서불감(舒弗邯)으로 추증되었다.닫기왜국에 보냈는데 이때 미해의 나이가 열 살이었다. 말과 행동이 아직 익숙지 않았으므로 내신(內臣) 박사람(朴娑覽)512512 고유명사가 아닌 신라 사람의 뜻인 사의 음을 한자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박→(光明)→시→서라벌→신라, 사람→사람(人)으로 풀이한다(양주동, ≪증정판 고가연구≫, 일조각, 1969).닫기을 부사로 삼아 왜국에 보냈다. 왜왕이 이들을 억류하여 30년 동안이나 보내지 아니하였다.

註 510
신라의 제17대 왕으로 나물(奈勿) 혹은 나밀(奈密)이라고도 한다. 김씨로서 왕위에 오른 두 번째 임금으로, 재위 기간은 356∼402년이다. ≪삼국사기≫에서는 나물을 ‘이사금’이라 하였으나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는 이 왕대부터 마립간이라 칭하였다. 나물왕 이후에는 종전과 같은 3성 교립이 없어지고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377년과 382년 두 차례에 걸쳐 전진에 사신을 파견한 점으로 보아 신라가 이때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註 511
미토희(未吐喜)·미흔(未欣)(≪삼국유사≫ 왕력 자비마립간)이나 미사흔(未斯欣)(≪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실성이사금 원년 3월)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미해는 나물이사금의 아들로 눌지마립간 2년(418)에 왜로부터 돌아왔다. 그는 눌지마립간 17년(433)에 죽었으며, 서불감(舒弗邯)으로 추증되었다.
註 512
고유명사가 아닌 신라 사람의 뜻인 사의 음을 한자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박→(光明)→시→서라벌→신라, 사람→사람(人)으로 풀이한다(양주동, ≪증정판 고가연구≫, 일조각, 1969).
주제분류
정치>왕실>왕족>왕자·공주·왕제·왕손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