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제상을 가두어 두고 묻기를 “너는 어찌하여 너희 나라 왕자를 몰래 보내었느냐?” 하자 [제상이] 대답하기를 “나는 오로지 계림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오. 나는 단지 우리 임금의 소원을 이루게 했던 것뿐이오. 어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겠소.”라고 하였다. 왕은 노하여 이르기를 “이미 너는 나의 신하가 되었는데도 감히 계림의 신하라고 말하느냐. 그렇다면 반드시 오형(五刑)527527 중국 고대의 5가지 형벌로 ≪書經≫ 舜典에는 묵(피부에 먹물로 刺字하는것), 의(코를 베는 일), 비( 발뒤꿈치를 베는 일), 궁(성기를 절단하는 일), 대벽(목을 베어 죽이는 일)을 5형이라 하였다.닫기을 모두 쓸 것이나 만약 왜국의 신하라고 말을 한다면 필히 후한 녹을 상으로 줄 것이다.” [제상이] 대답하기를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차라리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겠다.” 하였다. [왜]왕이 노하여 제상의 발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베어 그 위를 걷게 하였다 지금 갈대의 붉은 빛깔이 나는 것은 제상의 피라고 한다. [왜왕이] 다시 물어 이르기를 “너는 어느 나라 신하인가?”라고 하자, [제상이] “나는 계림의 신하다.”라고 하였다. [왜왕은] 쇠를 달구어 그 위에 제상을 세워 놓고 묻기를 “너는 어느 나라 신하인가?”라고 하자, [제상이] “나는 계림의 신하다.” 왜왕은 제상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목도(木島)528528 일본학계에서는 박제상의 처형 장소를 대마도의 북안 ‘악포(鰐浦)’로 비정하고 있는데, 대마의 중심부인 지금의 미진도(美津島) ‘선월(船越)’ 부근으로 추정하기도 한다(김사엽, 「고대 한일문학의 비교연구」, ≪계간경향 사상과 정책≫ 5, 1984, 98쪽).닫기라는 섬에서 불 태워 죽였다. 미해는 바다를 건너와서 강구려를 시켜 먼저 나라 안에 사실을 알렸다. 눌지왕은 놀라고 기뻐서 백관들에게 명하여 굴헐역(屈歇驛)529529 지금의 울산 지역에 설치된 신라시대의 역참으로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신라는 전국의 관도(官道)에 역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는데, 굴헐역은 아마도 이 지역의 육로와 해로의 요충지에 설치되었을 것이다.닫기에서 맞이하게 하였고 왕은 아우 보해와 더불어 남교(南郊)에서 맞이하였다. 대궐로 맞아 들여 잔치를 베풀고 국내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제상의 아내를 국대부인(國大夫人)530530 부인(夫人)은 고려시대의 봉작으로 문무관 3품의 처에게 내려진 것이다. 신라에서도 이러한 봉작이 존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닫기으로 봉하고 그의 딸을 미해공(美海公)의 부인으로 삼았다. 의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옛날 (漢)나라 신하인 주가(周苛)531531 한나라 패땅 사람으로 고조(劉邦) 때 (기원전204) 어사대부가 되어 형양을 지키다가 항우가 형양을 함락시켜 그의 포로가 되었다. 항우는 주가에게 “네가 내 장수가 되면 상장군으로 삼고 만호후로 봉해주겠다”고 하였으나 그는 꾸짖으면서 끝내 굴복하지 않고 항우에게 살해되었다(≪사기≫ 장승상열전≪한서≫ 장주조임신도전).닫기가 영양(榮陽)532532 지금의 하남성 북부 황하의 남쪽에 있는 현이다.닫기 땅에 있다가 나라 군사에게 잡힌 일이 있습니다. 이때 항우(項羽)가 주가를 보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내 신하 노릇을 한다면 만록후(萬祿侯)에 봉해 주겠다.’ 하니 주가는 꾸짖으며 굴복치 않고 초왕 항우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번 제상의 충정과 죽음은 주가에 못지않습니다.”라고 하였다.

註 527
중국 고대의 5가지 형벌로 ≪書經≫ 舜典에는 묵(피부에 먹물로 刺字하는것), 의(코를 베는 일), 비( 발뒤꿈치를 베는 일), 궁(성기를 절단하는 일), 대벽(목을 베어 죽이는 일)을 5형이라 하였다.
註 528
일본학계에서는 박제상의 처형 장소를 대마도의 북안 ‘악포(鰐浦)’로 비정하고 있는데, 대마의 중심부인 지금의 미진도(美津島) ‘선월(船越)’ 부근으로 추정하기도 한다(김사엽, 「고대 한일문학의 비교연구」, ≪계간경향 사상과 정책≫ 5, 1984, 98쪽).
註 529
지금의 울산 지역에 설치된 신라시대의 역참으로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신라는 전국의 관도(官道)에 역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는데, 굴헐역은 아마도 이 지역의 육로와 해로의 요충지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註 530
부인(夫人)은 고려시대의 봉작으로 문무관 3품의 처에게 내려진 것이다. 신라에서도 이러한 봉작이 존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註 531
한나라 패땅 사람으로 고조(劉邦) 때 (기원전204) 어사대부가 되어 형양을 지키다가 항우가 형양을 함락시켜 그의 포로가 되었다. 항우는 주가에게 “네가 내 장수가 되면 상장군으로 삼고 만호후로 봉해주겠다”고 하였으나 그는 꾸짖으면서 끝내 굴복하지 않고 항우에게 살해되었다(≪사기≫ 장승상열전≪한서≫ 장주조임신도전).
註 532
지금의 하남성 북부 황하의 남쪽에 있는 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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