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신라고전(新羅古傳)에 이르기를 “소정방이 이미 백제와 고구려를 토벌하고 또 은밀히 신라까지 토벌하려 계속 머물렀다. 이때 유신이 그 음모를 간파하고 나라 병사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독주를 먹여 모두 죽이고 그들을 구덩이에 묻었다.”고 하였다. 지금의 상주(尙州)705705 현재 경상북도 상주시 일대를 지칭하는데, 사벌국(沙伐國)이 신라에 복속된 뒤에 사벌주, 혹은 상주로 개편되었는데 소백산맥 이동 지역의 교통상의 요충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라의 대외적 팽창의 전진기지 혹은 배후기지 역할을 수행한 지역이다(이용현, 「삼국시대의 상주 -중고기 신라 경영의 시점에서」, ≪상주 영남 문물의 결절지≫, 국립대구박물관, 2003).닫기 외곽에 당교(唐橋)706706 경상북도 문경시 모전동과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의 경계인 모전천(茅田川)에는 있었다는 다리인데, 김유신이 소정방과 당의 군사를 죽여서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함창현 교량조에서도 당교와 관련하여 ≪삼국유사≫와 유사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닫기가 있는데 이곳이 그들을 묻은 땅이라 한다 당사(唐史)를 살펴보면 정방이 죽은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만 ‘죽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역시 [당나라에서] 꺼린 것일까? 향언(鄕言)이 근거가 없는 것일까? 만약 임술년(壬戌年)에 고구려의 토벌이 있었는데, [이때] 신라인들이 정방의 군사를 죽여 버렸다면 이후인 총장 무진년(戊辰年, 668)에 어떻게 [당나라에] 병사들을 청하여 고려를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이로서 향전이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무진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후 신하로서 섬기지 않고 고구려의 땅을 멋대로 점령하였을 뿐이지 소정방과 이적 두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註 705
현재 경상북도 상주시 일대를 지칭하는데, 사벌국(沙伐國)이 신라에 복속된 뒤에 사벌주, 혹은 상주로 개편되었는데 소백산맥 이동 지역의 교통상의 요충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라의 대외적 팽창의 전진기지 혹은 배후기지 역할을 수행한 지역이다(이용현, 「삼국시대의 상주 -중고기 신라 경영의 시점에서」, ≪상주 영남 문물의 결절지≫, 국립대구박물관, 2003).
註 706
경상북도 문경시 모전동과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의 경계인 모전천(茅田川)에는 있었다는 다리인데, 김유신이 소정방과 당의 군사를 죽여서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함창현 교량조에서도 당교와 관련하여 ≪삼국유사≫와 유사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색인어
이름 : 소정방,유신
지명 : 상주
국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