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부례랑의 두 분 부모님이 백율사의 대비상 앞에 나아가서 여러 날 저녁 천제에게 기도를 드렸더니, 갑자기 향탁(香卓) 위에 거문고와 피리 두 보물이 놓여져 있고 부례랑안상 두 사람도 불상 뒤에 도착해 있었다. [낭의] 두 부모님은 너무나 기뻐서 돌아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물으니, 부례랑은 말하길 “저는 붙잡혀 간 뒤부터 그 나라 대도구라(大都仇羅)의 집에 목동이 되어서 대오라니(大烏羅尼)의 들판에서 방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책에는 도구(都仇)의 집 종이 되어 대마(大磨)의 들판에서 방목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홀연히 모습과 용모와 뜻이 단정한 한 스님이 있었는데, 손에 거문고와 피리를 들고 와서 위로하면서 말하기를, ‘고향생각을 하느냐?’고 하기에, 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임금과 부모님을 그리워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스님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를 따라오라’고 하고는 저를 데리고 해변가에 이르렀는데, 또한 안상도 만났습니다. 이에 피리를 두 쪽으로 나누어 두 사람에게 주면서 각기 한쪽씩 타게 하고 자신은 그 거문고를 타고 둥둥 떠서 돌아왔는데 잠깐 사이에 이곳까지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모든 일을 급히 알렸더니, 왕은 크게 놀라며 사람을 보내어 낭을 맞아들이고, 거문고와 피리도 대궐 안으로 옮기게 하였다. [왕은] 무게 50량으로 된 금과 은으로 만든 다섯 개의 그릇 두 벌과 마납가사(摩衲袈裟)302302 가사의 이름. 당 중종(中宗)은 705년 육조(六祖) 혜능(慧能)에게 비단으로 짠 가사와 수정구슬을 공양하였다고 한다(김관응대종사 감수, ≪불교학대사전≫, 홍법원, 1988).닫기 다섯 필과, 대초(大綃)303303 비단의 한 종류.닫기 3천 필, 밭 1만 경(頃)을 절에 시주하여 대비의 은덕에 보답하였다. 국내에 크게 사면을 내리고 사람들에게는 관작 3급을 올려 주고, 백성들에게는 3년간의 조세를 면제해주었다. [그] 절의 주지를 봉성사[奉聖]에 옮겨 살게 하였다. [또한] 부례랑을 봉하여 대각간(大角干)304304 신라 17관등 중 제1관등인 각간보다도 위에 두어졌던 관위로 백제를 멸망시킨 후 김유신에게 처음으로 제수되었다.닫기 신라 재상의 관작명으로 삼고, [그의] 아버지 대현(大玄) 아찬(阿喰)을 태대각간(太大角干)305305 비상설의 신라 최고 관계이다. 신라 17등 관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은 각간(角干:伊伐飡)이나 660년(무열왕 7) 백제를 멸하는 데 공을 세운 김유신에게 기존 위계(位階) 위에 대각간의 벼슬을 주었고, 668년(문무왕 8)에는 고구려를 멸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해서 더 높여 태대각간의 벼슬을 내렸다.닫기으로 삼았다. 어머니 용보부인(龍寶夫人)은 사량부(沙梁部)306306 신라시대 6부 중의 하나이다. 급량부와 더불어 6부 중 가장 우세한 집단으로, 남천(南川) 이북, 서천(西川) 이동, 북천(北川) 이남 일대를 포함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김씨 출신이 중심이 된 조직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이종욱, 「신라 상고시대의 육촌과 육부」, ≪진단학보≫ 49, 1980).닫기경정궁주(鏡井宮主)로 삼고 안상법사를 대통(大統)307307 국통 다음의 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승관이다.닫기으로 삼았으며, 창고 관리 다섯 명은 모두 석방하여 관작을 각기 5급씩 올려주었다.

註 302
가사의 이름. 당 중종(中宗)은 705년 육조(六祖) 혜능(慧能)에게 비단으로 짠 가사와 수정구슬을 공양하였다고 한다(김관응대종사 감수, ≪불교학대사전≫, 홍법원, 1988).
註 303
비단의 한 종류.
註 304
신라 17관등 중 제1관등인 각간보다도 위에 두어졌던 관위로 백제를 멸망시킨 후 김유신에게 처음으로 제수되었다.
註 305
비상설의 신라 최고 관계이다. 신라 17등 관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은 각간(角干:伊伐飡)이나 660년(무열왕 7) 백제를 멸하는 데 공을 세운 김유신에게 기존 위계(位階) 위에 대각간의 벼슬을 주었고, 668년(문무왕 8)에는 고구려를 멸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해서 더 높여 태대각간의 벼슬을 내렸다.
註 306
신라시대 6부 중의 하나이다. 급량부와 더불어 6부 중 가장 우세한 집단으로, 남천(南川) 이북, 서천(西川) 이동, 북천(北川) 이남 일대를 포함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김씨 출신이 중심이 된 조직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이종욱, 「신라 상고시대의 육촌과 육부」, ≪진단학보≫ 49, 1980).
註 307
국통 다음의 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승관이다.
주제분류
사회>사회조직>화랑도>화랑
문화>사상>불교사상>불보살상·불사리
경제>경제정책>조세·공역>조세
정치>행정>관인>포상·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