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사(有德寺)
신라의 태대각간(太大角干)579579 정덕본에는 大夫로 기재되어 있으나 신라 관직에 大夫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太大로 국역하였다.닫기최유덕(崔有德)이 자기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이름을 유덕(有德)이라고 하였다. [그의] 먼 후손인 삼한공신(三韓功臣) 최언위(崔彦撝)580580 신라말 고려초의 문신으로 최치원의 종제이며, 문하평장사 최항(崔沆)의 아버지이다. 885년(헌강왕 11년)에 당에 유학하여 그곳 문과에 급제하였고, 909년(효공왕 13년)에 귀국하여 집사성시랑서서원학사(執事省侍郞瑞西院學士)를 제수받았다. 935년(태조 18년)에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가서 태자사부(太子師傅)가 되고, 문한을 위임 받았다. 최치원·최승우와 함께 일대삼최(一代三崔)라 불렸다.닫기는 [유덕의] 진영을 걸어 모시고 이어 비를 세웠다고 한다.

註 579
정덕본에는 大夫로 기재되어 있으나 신라 관직에 大夫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太大로 국역하였다.
註 580
신라말 고려초의 문신으로 최치원의 종제이며, 문하평장사 최항(崔沆)의 아버지이다. 885년(헌강왕 11년)에 당에 유학하여 그곳 문과에 급제하였고, 909년(효공왕 13년)에 귀국하여 집사성시랑서서원학사(執事省侍郞瑞西院學士)를 제수받았다. 935년(태조 18년)에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가서 태자사부(太子師傅)가 되고, 문한을 위임 받았다. 최치원·최승우와 함께 일대삼최(一代三崔)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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