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감시대상인물신상카드

일제감시대상인물신상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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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국사편찬위원회에는 일제 시기 작성된 4,858명에 대한 인물 신상 카드 6,264건이 소장되어 있다. 이 카드는 일제 경찰에서 제작한 카드들로 일제가 감시 대상으로 삼은 인물들의 신상 카드이다. 카드에는 사진과 아울러 출생일, 출생지, 주소지, 신장 등의 기본 신상 정보와 각종 활동 기록 그리고 검거 기록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한용운, 유관순 등 일제에 항거한 민족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에 이 카드들은 민족운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일차 자료이다. 비록 일제의 입장에서 작성되어서 왜곡된 정보도 포함되어 있지만 민족운동가를 비롯하여 일제의 감시 대상 인물에 대한 생생한 신상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에 연구자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이 자료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일러두기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데이터베이스는 일제 경찰이 작성한 인물 카드의 정보를 원자료 그대로 전산화하여 인물별, 카드별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이다.

  • 대상 카드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으며 수량은 6,264건이다. 카드의 제작시기는 1920~1940년대이며 조선총독부 경기도 경찰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카드에 수록된 정보는 모두 텍스트로 제작하여 검색·열람이 가능하게 하였다. 카드에 수록된 정보는 모두 원문 그대로 표기하였다. 단, 마멸 등으로 판독이 어려운 경우에는 ‘■’ 기호를 글자수만큼 표시하였다.

  • 각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을 모두 선별하여 인물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수는 4,858명이다. 인물 단위로 카드들을 열람할 수 있는데 인물별로 카드가 여러 장인 경우 등은 다음과 같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1)동일 인물에 대한 카드가 여러 장 있는 경우 각 카드별로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되 해당 인물별로 묶어서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경우 카드의 순서는 제작 시기 순서로 하였다.
    • 2)드물지만 한 장의 카드 사진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해당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각각을 인물 정보에서는 별도로 취급하였다.
  • 현장감 있는 열람을 위하여 카드 정보를 원본과 유사한 형태로 디자인하여 제공하고 있으나 해당 화면은 원본 그대로는 아니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단, 카드 원본 자체도 이미지 파일 형태로 제공하고 있으므로 원본 자체도 확인할 수 있다.

  • 카드에 수록된 정보 모두 검색할 수 있다. 화면 우측 상단의 ‘자료상세검색’을 이용하면 지역별, 출생연도별, 적용죄목별 등 다양한 조건으로 자료를 찾을 수 있다.

해제이애숙(중앙대학교 강사)

1. 자료의 제작 시기
이 자료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인물들의 사진과 인적정보, 수형사실을 한 장의 카드 앞, 뒷면에 담아낸 일종의 개인별 신상카드이다. 1980년대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치안본부로부터 인수받은 자료로서, 카드의 수량은 총 6,264매이다.

가로 15㎝, 세로 10㎝ 크기의 인쇄된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재되는 항목은 카드 양식에 따라 정형화되어 있다. 카드양식은 다이쇼(大正) 연호가 인쇄된 카드 2종과 쇼와(昭和) 연호가 인쇄된 카드 2종으로 구분된다. 서술 편의상 다이쇼 연호가 인쇄된 카드를 A형B형으로, 쇼와 연호가 인쇄된 카드를 C형D형으로 구분하기로 한다.

이 카드들은 1991~1993년에 걸쳐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총 9권)이라는 제목으로 영인 간행된 바 있다. 편철된 문서가 아니라 낱장의 카드들로 구성된 자료묶음이므로 제목은 붙어 있지 않다. 어느 기관에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어떤 기준에 의해 수록 대상자를 선정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고 알려진 정보도 없다.

이 때문에 위 자료집을 간행할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일제 당국자에 의해 검거 투옥된 인사들의 신상기록카드”라는 간단한 설명에 덧붙여 “독립운동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인사들의 자료도 일부 포함”(「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간행사 및 범례)되었음을 밝히는 데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자료에 수록된 인물 중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법한 저명한 독립운동가나 사회주의자들, 예를 들자면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김마리아, 유관순, 여운형, 박헌영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 때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으나 일제 말기에 적극적으로 친일활동에 나서는 이광수, 최린, 주요한 등의 카드도 있다.

어쨌튼 이 자료에는 일제 강점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꽤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카드 앞 면에 부착된 인물들의 사진은 대부분 체포 혹은 수감 직후에 경찰서나 형무소에서 촬영된 것이다. 특히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이 많다.

이런 사유로 인해 이 자료는 ‘독립운동가 신상기록카드’ ‘일제시대 수형자 사진자료’ ‘수형기록카드’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하지만 카드 기재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명칭과 부합하지 않은 사실들이 발견되곤 한다. 이 문제는 다음 절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각 카드의 앞 면에는 카드에 등재된 인물의 사진이 부착되어 있다. 사진 하단에는 촬영일, 촬영기관, 사진의 크기, 보존원판 번호를 적었다. 인쇄된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재방식은 일정하다. 다만 최초로 제작된 카드에는 사진정보란이 없기 때문에 사진 옆이나 빈 공간에 촬영일, 보존원판 번호를 적기도 하였다.

카드를 제작할 때 사진을 부착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일 혹은 복사일은 카드 제작시점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사진정보가 기재된 카드의 촬영/복사시기를 카드 유형별, 연도별로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1> 카드 유형별, 연도별 촬영/복사 시기
연도 A형 B형 C형 D형 소계
1913 2       2
1918 1       1
1919       25 25
1920 12     19 31
1921 1       1
1922 1       1
1923 2 8   2 12
1924   8     8
1925   20   1 21
1926   56   2 58
1927   27   1 28
1928   196   20 216
1929   42 51 23 116
1930   17 447 122 586
1931   1 51 735 787
1932       356 356
1933       343 343
1934       366 366
1935       230 230
1936       224 224
1937       172 172
1938       99 99
1939       140 140
1940       178 178
1941       256 256
1942       521 521
1943       122 122
1944       111 111
소계 19 375 549 4,068 5,011
해방후         2
미상 1035 4 56 156 1,251
합계 1054 379 605 4,224 6,264
사진 촬영일자를 알 수 있는 5천여매의 카드 중 1919년 이전에 촬영된 사진을 부착한 카드는 단 세장 뿐이다. 그 외에는 전부 1919년 삼일운동 이후에 촬영된 사진을 부착하였다. 삼일운동이 사진카드를 제작하게 된 동기였음을 알 수 있다.

D형 카드는 쇼와 연호가 인쇄된 카드이다. 따라서 쇼와 연호를 쓰지 않던 시기, 즉 1919~1926년에 촬영된 사진을 부착한 D형 카드 49매의 제작 시점은 1927년 이후가 된다. 이 카드를 제작, 관리하던 기관에서는 계속 새로운 인물의 카드를 추가했을 뿐 아니라 과거에 제작한 카드를 검토하여 정리하였다. 이런 정황은 박장록(朴章祿)의 카드에 잘 드러낸다.

박장록은 천도교도로서 1919년 4월 강원도 화천군 삼일운동을 계획했다가 검거된 인물이다. 일제당국에 체포된 박장록은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지만 1919년 7월 9일 경성복심법원, 1919년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형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탄압과정에서 박장록에 대한 두 장의 카드가 만들어졌다. 각기 다른 건물 벽을 배경으로 촬영된 사진 속의 박장록은 보존원판 번호 614번이 적힌 길쭉한 천(혹은 종이)을 옷깃에 붙이고 있다. 각기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사진을 촬영하더라도 동일사건의 동일인에게는 하나의 사진원판 번호를 부여했던 것이다.

사진을 더 들여다보면 두 장의 박장록 사진에는 또 다른 숫자가 적혀 있다. 사진의 왼쪽 중간 쯤에 “1”과 “289”라는 숫자가 한자로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이 숫자들은 좌우가 뒤집힌 상태이다. 보존원판을 촬영할 당시가 아니라 훗날 사진원판에 추가로 기재한 다음 사진을 뽑았기 때문에 좌우가 바뀌어 나온 것이다. 사진의 보존원판에 추가로 기입할만한 숫자는 보존원판 번호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번호 289번이 부여된 사진 옆에는 “중복”이라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사진에는 붉은 색 펜으로 가위표를 큼지막하게 그어놓았다(부록의 박장록 카드 참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박장록의 사진카드 1장은 폐기될 운명에 처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전해졌다. 또 그에게 부여되었던 614번, 289번, 1번 세 가지의 보존원판 번호는 1번만 남게 되고, 나머지 두 번호는 다른 인물에게 부여될 터였다.

다이쇼 연간에 사용된 A형 카드의 경우 사진정보가 적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사진 촬영시점이 1920년에 집중된 점으로 볼 때 이 무렵부터 사진을 부착한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추정해본다.

앞의 <표 1>에 보이는 1913년판 사진의 주인공은 독립의군부 활동을 벌인 이정로(李鼎魯, 징역 6월)와 이일영(李一榮)이다. 이일영은 1919년 11월 전협(全協) 등의 대동단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체포되었다. 이 자료에 포함된 이일영 카드는 대동단사건을 계기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촬영된 사진이 첨부된 카드는 두 장이 확인된다. 그 가운데 1매는 1962년 8월 29일 서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이 붙어 있는 카드인데 상용수단개요란에 “폐기”라고 적어 놓았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판결문을 검색해본 결과 1962년 서울지방법원에서 횡령으로 처벌받은 사람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드 양식은 일제당국의 D형 카드와 똑 같다. 일제의 쇼와 연호를 서기(西紀)로 바꾸었을 뿐이다. 일제 경찰의 국민에 대한 감시와 사찰의 악습이 해방 후까지 강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해방 후 촬영된 사진이 첨부된 나머지 한 장은 일제 강점기~1950년대에 활동한 공산주의자 박헌영(朴憲永)의 것이다. 박헌영 카드는 총 3매가 남아 있는데 그 중 하나에 “1946년도경 촬영”이라는 설명이 첨부된 사진이 붙어 있다. 이 사진은 기존에 사용된 카드가 아닌, 일반용지에 첨부되어 있다.

박헌영의 나머지 카드 중 하나에는 1933년 9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이 사진은 1933년 7월 상하이일본총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다음 경기도경찰부에서 취조를 받고 예심에 넘겨진 후 촬영된 것이다. 박헌영의 또 다른 카드는 1941년에 제작된 수배용 카드이다. 여기에는 1941년 7월 1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복사한, 젊은 시절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2. 자료의 생산ㆍ관리기관과 제작 목적
앞 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자료는 ‘독립운동가 신상기록카드’ ‘일제시대 수형자 사진자료’ ‘수형기록카드’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자료의 명칭은 그 자료가 담고 있는 내용, 자료 생산기관 등을 고려하여 붙여야 마땅하다.

오래 전부터 지적된 사실이지만 이 자료에는 독립운동과 무관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가총동원법에 저촉되어 체포, 수감된 사람들이 그러하다. 1940년대에 국가총동원법위반으로 체포되었거나 처벌받은 인원은 5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모두 독립운동가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된다. 가격통제정책, 물자통제정책 등을 어긴 단순 경제사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70여명으로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사기, 절도, 횡령 등으로 체포, 처벌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립운동과 무관할 것이다. 정치범을 처벌하던 치안유지법이나 보안법 등과 함께 적용된 것이 아나라 사기, 절도, 횡령 등의 죄목만 적용된 경우는 독립운동과 무관한, 사회적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뜬금없는 사진카드도 있다. 김옥균(金玉均) 카드가 대표적이다. 사진도 아닌, 초상화를 턱하니 붙여놓고 제1443번이라는 보존원판 번호까지 부여하였다. 초상화 옆에는 “不用. 일찍이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그후 조선인 자객에게 암살당한 자. Case of Corea에서 복사한 것”이라는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수형자 사진자료’ ‘수형기록카드’라는 명칭은 더욱 면밀한 재검토가 요청된다. ‘수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카드의 생산 및 관리 주체가 형무소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수형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대상자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카드의 생산 및 관리 주체를 형무소(혹은 서대문형무소)나 사법기관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개인별 카드에는 사진을 붙이는 면 아래 쪽에 사진을 촬영한 일자와 촬영기관을 기재하는 칸과 그 옆에 보존원판의 크기와 번호를 적는 칸이 있다(후술할 A형 카드 제외). 이들 칸에 기재된 내용을 살펴보면 사진을 촬영한 기관은 다양하지만 보존원판의 번호가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보존원판의 일련번호가 겹치는 카드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 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카드자료를 제작, 관리한 주체가 단일 관서라는 점이다. 사진의 보존원판 출처는 경기도경찰부(소속 과 포함) 및 경성 시내 각급 경찰서,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경성감옥) 등, 각급 경찰관서와 형무소이다.

카드자료를 생산 관리하던 특정 관서에서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경기도경찰부 고등과 및 형사과, 경찰서 등에서 대상자의 사진을 수집하여 이 카드식 사진자료를 제작하였음이 분명하다.

둘째, 수록 인물들이 수감된 감옥 및 형무소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카드에는 대상자가 수감된 형무소명과 입소 일자를 기재하는 칸이 설정되어 있다(후술할 B형 카드 제외). 이 칸에는 판결이 확정되어 수록 인물이 기결수로서 수감될 형무소 명칭과 입소 일자를 적는 것이 원칙이었다.

형무소 명칭이 기재된 카드는 총 3,253매인데 등장하는 형무소는 26개소에 달한다. 그 가운데 서대문형무소(서대문감옥 포함)가 2,535건으로 80%를 점하지만 나머지 7백여 매의 카드에는 다른 형무소 명칭이 기재되어 있다.

해당 형무소(감옥)에 수감된 수형인 관리를 주된 업무로 삼는 형무소에서 다른 형무소에 수감된(혹은 수감될) 인물, 형이 확정되기 전의 미결수들에 대해 다른 관서로부터 사진자료까지 구하는 수고를 할 이유도, 인력도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어떤 기관에서 이러한 자료를 제작하였을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카드자료 원본의 소장처가 치안본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삼일운동 직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고 여겨지는 이 자료들을 꾸준히 관리하다가 해방 후 치안기관/경찰관서로 이관했음직한 관서는 역시 일제 강점기의 경찰당국일 가능성이 높다.

일제 강점기에 존재한 관서 가운데 치안본부급 기관을 찾는다면 아무래도 조선총독부 경무국(1910년대에는 경무총감부)을 꼽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카드자료에 수록된 인물의 출신지와 거주지, 사진 촬영기관, 검거관서, 수감기관이 경성 및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는 자료의 지역적 ‘편중성’은 전국적 범위에서 치안과 경무 일반을 책임지고 있던 경무국의 위상과 맞지 않는다.

더욱이 카드 제작, 관리와 같은 실무 차원의 작업을 경무국 보안과나 고등과의 ‘고급 인력’이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카드를 최초 제작한 이후 수록 인물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었다거나 다른 형무소로의 이감 혹은 출감 등 신상에 변화가 생겼을 때, 그 사실을 추가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간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앞 면에 사진을 부착하고 남은 공간에는 "キ"(기결수), "ミ"(미결수), “◌◌刑務所ヘ”(이감사실), “釋放”, “執猶”(집행유예) “起猶”(起訴猶豫) 등 다양한 정보들이 추가로 기입되어 있다.

이러한 정황은 업무상 이 사진카드 자료를 늘상 옆에 끼고 뒤적이던 현장 실무기관에서 제작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1929년 8월 3일자 「중외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경무국에서는 경성에 있는 요시찰인의 사진을 수집하여 사진첩을 만들고, 그것을 각 경찰서에 비치토록 하라는 지시를 경기도경찰부 고등과에 내렸다고 한다.

이에 앞서 1928년 10월 도쿄경시청에서는 일본에 있는 조선인 요시찰인 천여 명의 사진을 복사하여 경무국으로 송부하였다. 이 자료를 접수한 경무국 보안과에서는 그 사진을 다시 복사하여 이동경찰에게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동아일보」 1928년 10월 11일자).

이와 같이 경무국은 발로 뛰는 현장 실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현장 업무의 방향을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보고받았다. 직접 상하관계에 있지 않은 도쿄경시청에서도 치안과 관련된 중요 자료는 경무국으로 보내왔다.

이 카드자료의 경우에도 일선 경찰관서에서 제작하여 일정 기간마다 경무국으로 올려 보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카드 제작을 담당한 부서에서는 최고 상급기관인 경무국으로 올려 보낼 카드이므로 기재내용을 또박또박 정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드를 채워간 글씨체는 기록자의 갖가지 개성이 그대로 노출된 필기체가 태반이다. 오자가 생겼을 때는 벅벅 줄을 긋고 다시 적는, 다소 ‘예의 없는’ 실용적인 방식으로 수정하였다.

이런 점들 때문에 필자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이 카드자료를 생산ㆍ관리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자료군에는 경찰당국에서 수배용으로 제작한 카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수배용이라는 사실이 카드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배용 카드를 가려낼 수 있다. 부록에 첨부한 강원호(姜元昊) 카드③이 바로 수배용 카드이다.

수배용 카드는 대체로 “고등과 수배용”으로 제작되었지만 강지섭(姜志燮) 카드에 보이듯이 “형사과 수배용”이라고 기재된 카드도 눈에 띈다.

고등과의 정식 명칭은 고등경찰과로서, 조선총독부 경무국(경무총감부)과 각 도 경찰부에 같은 이름의 부서가 공존하였다. 고등경찰의 업무는 통감부 시기부터 시작되었지만 고등경찰 관련 조직이 ‘과’ 단위로 정식 편성된 것은 한일합병 이후였다.

1910년 10월 1일 공포된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사무분장규정」(조선총독부훈령 제4호)에 의하면, 경무총감부에 신설된 고등경찰과는 산하에 기밀계와 도서계를 두었는데 기밀계에서는 사찰에 관한 사항, 집회 다중운동 및 결사에 관한 사항, 외국인에 관한 사항, 암호에 관한 사항, 종교 단속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였다.

삼일운동 이후 이른바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개편하면서 일제는 중앙의 경무총감부를 경무국으로 개편하고, 지방에는 지방장관의 지휘를 받는 제3부(1921. 2. 경찰부로 개칭)를 설치하였다. 중앙의 경무국과 지방의 제3부(도경찰부)에는 고등경찰과를 두었다. 경무국 고등경찰과는 고등경찰에 관한 사항과 출판물 단속 업무를 담당하였고, 지방의 고등경찰과는 앞의 두 가지 업무 외에 외국여권에 관한 사항까지 담당하였다.

경무국 고등경찰과는 1926년 4월 경무국의 조직 개편에 따라 폐지되고, 담당 업무는 성격에 따라 보안과와 도서과로 이관되었다. 지방의 도경찰부 산하 고등경찰과는 계속 유지되었다.

이와 같이 ‘고등경찰과’라는 부서는 중앙의 경무국과 각 지방의 도경찰부에 각각 설치되었다. 반면에 ‘형사과’라는 부서는 경기도경찰부에만 존재하였다. 1922년 12월 9일 경기도경찰부에 신설된 형사과에서는 범인 수사에 관한 사무 일반과 그에 대한 연구업무를 분장하였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수배용 카드에 등장하는 고등경찰과와 형사과를 동시에 거느리고 있는 관서는 경기도경찰부 뿐이었다. 또한 경무국의 고등경찰과는 1926년 4월 이후 존속하지 않지만 고등과의 수배용 카드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더욱이 소속한 도경찰부 명칭을 생략하고 단지 고등과, 형사과 등의 과명(課名)만 기재한 점으로 볼 때 이 카드자료를 생산하고 관리한 기관은 경기도경찰부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경기도경찰부에서 이 자료를 생산, 관리하였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서에서 카드 제작과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초창기에 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카드 몇 장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사진카드에는 몇 가지 항목에서 날짜를 기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치/검거일자, 언도일자, 입소일자, 사진 촬영일자 등이 그것이다. 이들 항목 중 빠른 날짜가 적혀 있는 카드를 뽑아 기재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2> 초기 제작 카드의 날짜 정보
수록 인물
(카드유형)
날짜 정보 비고
李一榮
(A형)
1913. 6 촬영 獨立義軍(*독립의군부) 참가자
李鼎魯
(A형)
1913. 6 촬영 獨立義軍(*독립의군부) 참가자
金郁濟
(A형)
1918. 5. 18 경무총감부 촬영 고등경찰과에서 취조하고 1918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검사국으로 압송한 자 *청림교도
申相冕
(A형)
1919. 3. 23 징역 1년 6월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언도, 경성감옥 수감, 사진원판은 경성감옥에 있음
朴採煥
(A형)
1919. 5. 21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 대구복심법원 판결, 경성감옥 수감, 사진원판은 경성감옥에 있음, 보존원판 번호 제4번(원번호 1973)
朴章祿
(A형)
1919. 9. 13 징역 8월, 1920. 4. 28 사면 경성복심법원(*고등법원의 오기), 보존원판 번호 제1번(원번호 614). *강원도 화천군 삼일운동 주도
吉浩順
(A형)
1919. 7. 9 징역 8월, 1920. 4. 28 사면 경성복심법원 판결, 보존원판 번호 제2번(원번호 648?), *강원도 화천군 삼일운동 주도
金允圭
(D형)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0월
1919. 8. 11 서대문형무소 촬영
경성복심법원 판결, 1919. 8. 11(*고등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판결 확정된 날짜와 동일) 서대문형무소 입소. 보존원판 번호 제35번(원번호 판독 불능) *경기도 부천군 거주
金云植
(D형)
1919. 8. 20 서대문형무소 촬영 경성복심법원 판결, *1919. 8. 21 고등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판결, .보존원판 번호 제96번(원번호 260?) *경기도 용인군 거주
明濟世
(A형)
1920. 9. 22 공갈 및 보안법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 검사에게 송치 *전협 등 대동단사건 관련, 위 이일영 연루
비고 : *로 표시된 부분은 필자가 추가한 내용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드 앞면에 첨부하는 사진의 보존원판에는 일련번호를 매겼다. 보존원판 번호 1번과 2번은 강원도 화천군의 삼일운동(계획)을 주도한 박장록과 길호순의 사진에 부여되었다. 두 사람이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을 당시 촬영한 사진의 보존원판 번호는 1번, 2번이 아니었다. 길호순이 이 번호는 최초 촬영일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지난 다음 부여되었다. 박채환, 김운식, 김윤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종래 피체자의 상반신 사진을 촬영하여 관리하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진카드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종래의 보존원판에 새로운 번호를 부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초창기 카드에 수록된 인물들은 대부분 삼일운동 관련자들이었다. 그리고 김욱제처럼 유사종교 관련자들도 포함되었다. 이 시기에 독립운동 및 유사종교에 대한 사찰, 단속, 탄압을 담당하던 부서는 고등경찰과였다. 1919년 8월 보통경찰제로의 전환을 계기로 경기도 제3부에 고등경찰과가 설치된 점을 감안하면 사진카드 제작을 시작한 관서는 경기도경찰부(당시는 제3부) 고등경찰과였다고 추정된다.

예를 들어 최영해(崔暎海, 이재유그룹 관련자) 카드에는 검거관서를 기록하는 칸에 경기도경찰부 도장이 찍혀 있고, 그 옆에 “高等”이라고 적혀 있다. 즉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에서 검거하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촬영 일자와 촬영기관을 기재하는 칸에는 “소화 10년 6월 7일 당과(當課)에서 촬영”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當課’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최영해의 사진을 촬영한 기관에서 최영해 카드를 작성하였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서에서 피체자(被逮者)의 사진을 촬영한 경우가 많았던 사실을 고려하면 최영해를 검거한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에서 사진을 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최영해 사진을 촬영하고 카드를 작성한 ‘當課’를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사진카드를 만들고 있다는 또 다른 자료가 있기 때문에 사진카드의 제작 관리를 담당한 부서가 줄곧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였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1922년 12월 형사사건 일반을 담당하는 형사과가 경기도경찰부 안에 신설되기 때문이다.

삼일운동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이후 국내외에서는 각종 비밀결사와 사회단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국내운동의 중심지인 경성을 관할하던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의 업무가 크게 늘어났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경기도경찰부에 특별히 형사과를 신설한 이유 중에는 고등경찰과의 일부 업무를 형사과로 이관함으로써 고등경찰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는 일찍부터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수집하여 모아놓은 이른바 ‘고등과 사진첩(사진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진카드 자료 속에는 고등과 사진첩의 보존원판을 복사하여 사용한 카드가 종종 눈에 띈다. 고등과 사진첩 원판을 사용한 사실이 기재된 카드는 총 20매인데, 대부분 1920년대 초 노령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카드이다.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의 사진원판을 사용한 카드는 그보다 훨씬 많다. 형사과 사진원판을 활용한 카드는 1924년 5월경부터 등장하는데 총 577매에 달한다. 이 외에 경기경찰부에서 촬영/복사했다고 기재된 카드가 121매, “경기도경찰부 當課”로 기재된 카드가 7매 더 있다.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와 형사과 모두 치안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위험분자’들의 사진을 각각 수집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경찰부 형사과는 고등경찰과보다 설치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사진자료 수집활동도 더 늦게 시작하였다. 출발은 늦었지만 형사과에서 수집한 사진자료의 범위와 분량은 급속도로 확대되어 1920년대 중후반에는 고등경찰과에서 보유한 자료를 훨씬 능가하는 방대한 규모에 도달하였다. 그것은 사진카드 제작시 활용된 사진 원판의 출처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고등경찰에 관한 사항, 외국여권에 관한 사항, 신문 잡지 출판물 및 저작물에 관한 사항을 고유업무로 삼는 고등경찰과에 비해 형사 일반에 관한 업무를 폭넓게 담당하는 형사과이기에 수집하는 사진자료의 범위와 분량이 훨씬 풍부한 때문으로 판단된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는 수집한 사진을 활용하여 “범죄수사상 가장 유효한 자료인 사진카드”를 제작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7일자 조선일보는 「고등요시찰인 사진표 5천여장, 한 시간에 1백여장 구어 내는 정교한 사진기계 놓고 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전문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는 벌써부터 수집하던 지문이 완성되었으므로 금번은 이것을 더욱 밀접한 관계로 범죄수사상 가장 유효한 자료인 사진카드와 씨명표 제작에 착수하여 사진카드는 벌써 5천 2백 수십매에 달하며, 씨명표는 육만 이천여매에 달한다는데 사진카드 중에 고등요시찰의 것도 2천여매나 수집되어 범죄 발생과 동시에 씨명표와 사진카드로써 촌시를 어기지 아니하고 전국에 일제히 수배를 하게 되었으며, 또는 2천여원을 들여서 구입한 사진기, 소부기(燒付機), 확대기 등은 놀랄만하게 정묘한 기계로서 소부(燒付)는 한 시간에 150매의 사진을 구어 낼 수가 있으며, 사진을 찍어서 구어가지고 확대하는 데 까지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아니한다는 바 이로써 전조선의 경찰망은 더욱 더욱 민속하게 되리라더라.
위 기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사진카드’를 제작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 기사는 1927년경부터 비로소 사진카드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사실과 다르다. 후술하겠지만 일제당국은 삼일운동 주모자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며, 보통경찰제로 전환한 이후 본격적으로 사진카드 제작에 이미 착수하였기 때문이다.

앞의 보도에 따르면 1927년 5월경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제작한 사진카드가 5,200여매에 달한다고 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사진카드 가운데 보존원판 번호가 5200번대인 카드는 두 장이다. 제5287번과 제5289번 원판인데 두 장 모두 1926년 10월 26일 본정경찰서에서 촬영한 것이다. 제5287번 원판의 주인공은 이정우(李晶雨)이고, 제5289번은 김명복(金明福)이다. 두 사람은 한건단(韓建團) 명의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시국을 표방한 강도죄”로 1926년 10월 18일에 경성 본정경찰서에 검거되었다. 1926년 10월과 1927년 5월 사이에 7개월의 시차가 있지만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제작했다는 사진카드와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된 사진카드가 동일한 자료일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하겠다.

더욱이 카드에 등재된 인물들에게 적용된 법률이나 죄목 중에는 고등경찰과가 아니라 형사과에서 담당함직한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사기, 절도, 횡령 등의 단일 범죄가 특히 그러하다.

이상 사진카드의 생산기관에 대한 검토 결과를 종합해본다면 경기도경찰부에 형사과가 신설된 후 어느 시점에서부터 형사과에서 사진 수집과 사진카드 제작 배포 관리 업무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형사과에서 전담하기 전에는 고등경찰과에서 담당했을 것이다.

사진카드 제작 관리 업무가 형사과로 이관된 시점은 새롭게 B형 카드를 제작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된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는 1922년 12월 형사과가 신설된 후 B형 카드가 등장하는 1923년 하반기 무렵이 아닐까 조심스럼게 추정해본다.

경기도경찰부에서 요시찰인이나 중요 인물의 지문과 사진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식은 그 후로도 간간히 언론에 보도되었다. 각 경찰서와 도경찰부, 심지어 사법당국에서까지 이른바 요시찰인명부를 작성하여 활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사진카드를 작성한 까닭은 무엇일까?

앞에서 소개한 조선일보 기사 속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카드의 제작은 “범죄수사상 가장 유효한 자료”를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용의인물을 확인, 검거하기 위한 조치였다. 탄압 대상자의 지문, 용모, 신체 특징 등을 기재한 사진카드를 휴대하고 현장에 출동하면 사진카드와 용의자를 대조하여 보다 더 신속 정확하게 ‘혐의자’를 확인, 체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들어 일제 경찰은 수사상 기초자료들을 카드 형식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32년 4월 27일자 「중앙일보」에는 1932년 5월부터 “행위 불명 신요시찰인과 미체포 범인카드를 작성”하는 수배카드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일제의 검열에 의해 이 기사가 실린 지면이 통째로 삭제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수배카드제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1920년대 초부터 현장에서 활용하기 시작한 사진카드의 유효성을 확인한 일제당국에서 요시찰인 등의 사찰에도 사진카드 방식을 적용 확대시킨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3. 보존 수량과 수록 인원
앞의 <표 1>에 드러나듯이 일제경찰은 그들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사진카드를 신규 제작하였다. 앞에서 인용한 1927년 5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당시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제작 완료한 사진카드는 5천매를 상회하였다. 이런 추세로 누적되었다면 아마도 사진카드 수량은 수만매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언급한 사진카드가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6천여매의 사진카드와 동일한 출처를 지닌 것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제가 20여년간 꾸준히 제작 관리해오던 카드가 현재 남아있는 6천여매 뿐이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실제 일제 당국에서 제작한 사진카드는 최소한 7만 5천매 이상이었다고 판단된다. 사진의 보존원판에 순차적으로 부여된 번호를 보면 소형 원판은 65,195번, 중형 원판은 10,346번까지 이어진다. 이 두 가지 최종 원판번호를 합산한 수치 75,541이 사진카드의 최소 규모이다.

중형 원판은 1929년 5월에 제작된 장증봉(일명 張志運, 코민테른 파견원) 카드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았다. 소형 원판을 이용한 사진이 부착된 카드의 마지막 주인공은 한금돌(韓今乭, 창씨명 淸水今乭, 1926년 5월생)이다. 그는 1944년 10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국가총동원법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10월 말부터 1945년 8월 해방이 될 때까지 사진카드 제작 업무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사진카드의 실제 수량은 8만매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카드 1매에는 원칙적으로 1명의 상반신 사진과 신상정보를 수록하였다. 사진카드를 제작할 때는 경찰서나 형무소에 보관 중인 사진 원판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처음 카드를 작성할 당시 대상자가 체포된 적이 없는 경우에는 일상적인 감시, 사찰과정에서 확보한 사진을 이용하였다.

이 때문에 이 자료에는 두 명 이상이 함께 찍은 사진을 첨부한 카드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강원호의 경우를 보자. 1927년 2월 경기도경찰부에서는 난징(南京) 동명학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원호(20세)에 대하여 고등과 수배용으로 3장의 사진카드를 만들었다. 사진은 모두 1927년 2월 3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 보관 중인 사진원판을 복사하여 활용하였다. 두 장의 카드에는 각기 다른 강원호의 단독사진이, 나머지 한 장의 카드에는 8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부록의 강원호 사진카드 참조).

함께 찍힌 인물 가운데 선우혁(鮮宇爀)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차장을 지낸 사람으로 1927년 당시에는 동명학원 교장을 맡고 있었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경기도경찰부에서는 강원호, 선우혁과 교우관계 혹은 친인척 관계에 있던 선우균(鮮于均), 선우섭(鮮于燮), 선우훈(鮮于燻)에 대해서도 고등과 수배용 사진카드를 만들었다. 이들의 카드에 붙인 사진 역시 1927년 2월 3일 동경찰부 형사과에 보관중인 사진원판을 복사한 것이었다. 선우균 카드에는 강원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선우선의 카드에는 선우선, 선우균을 포함한 선우혁 가족사진이 붙어 있다.

강원호를 비롯한 해외 거주 청년들에 대해 수배용 사진카드를 작성한 이유는 1927년 2월 7일로 예정된 일본천황의 장례식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일운동과 6ㆍ10만세운동이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의 장례식을 기해 일어났고, 당시 청년 학생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벌였던 것을 경험한 일제경찰은 청년 학생들의 활동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수배용 사진카드를 대거 작성,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저명한 사회주의자 인정식(印貞植)과 애국단원 정희동(鄭喜童, 鄭熙東)의 카드에는 그들이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이들 카드 역시 고등과 수배용으로 작성되었다. 정희동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를 졸업한 후 1937년 8월 국내로 잠입했다가 같은 달 25일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는데, 1938년 3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정희동에 대한 수배용 카드에는 1936년 6월 1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복사한 사진이, 검거 후에 작성된 카드에는 1937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한 원판에서 뽑은 사진이 붙어 있다(부록의 정희동 카드 참조).

강원호, 정희동의 예에서 보이듯이 한 사람에 대해 여러 장의 카드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수배용 카드와 체포 후 관리용 카드가 모두 있는 경우, 동일인이 여러 번 체포 수감된 경우, 동일인에 대해 각기 다른 이름으로 작성된 경우 등이 그러하였다.

상해파 공산주의자인 오성세(吳祘世)의 카드는 오성세, 김성칠(金成七), 박윤수(朴允洙), 이기만(李基萬), 이상계(李相桂), 이정재(李貞在), 조동빈(趙東斌)의 이름으로 각 1매씩 총 7매가 만들어졌다. 이름을 제외한 기재내용은 거의 동일하며, 사진은 본명인 오성세(吳祘世) 명의의 카드에만 붙어 있다. 오성세 이름으로 만들어진 카드를 제외한 다른 6매의 카드에는 사진란에 “오성세를 보라”는 설명만 기재되어 있고 사진은 첨부되지 않았다.

공원회(孔元檜, 적위대사건 관련자), 권태산(權泰山, 간도공산당사건 관련자), 김길우(金吉友, 국내공작위원회사건 관련자), 김진호(金振浩, 국내공작위원회사건 관련자), 이영호(李永浩, 국내공작위원회사건), 장회건(張會建,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사건 관련자)의 카드는 각 6매씩 제작되었다. 이들이 사회주의계열의 비밀운동에 종사하면서 여러 가지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명(異名)의 카드가 여러 장 작성되었던 것이다.

5매의 카드가 작성된 인물은 24명인데 이 속에는 이재유(李載裕)그룹의 일원으로 비밀지하운동에 종사했던 여성활동가 박진홍(朴鎭洪), 이순금(李順今)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외에 2매 이상의 카드가 만들어졌던 인물은 4매 47명, 3매 166명, 2매 835명으로 확인된다.

여기에는 여성 179명에 대한 238매의 카드가 포함되어 있다. 카드의 기재사항에 성별 구분은 없지만 사진이 첨부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이 자료의 원본은 6,264매이지만 6,264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으로 작성된 카드를 추려내고 동명이인을 구분해보면 아래 표와 같이 수록인원은 총 4,823명으로 집계된다.
<표 3> 카드 매수별 인원 수
구분 인원수 內 여성 비고
7매 1   오성세(吳祘世, 金成七, 朴允洙, 李基萬, 李相桂, 李貞在, 趙東斌 각 1매)
6매 6   공원회(孔元檜 5매, 孔泳一 1매), 권태산(權一致, 權一治, 金一治, 李慶山, 李吉福, 李泰德), 김길우(金吉友 2매, 金島城, 金都成, 金成春, 金春植 각 1매 ), 김진호(金振浩, 金根浩, 金波, 金亨律, 金浩哲, 金化龍 각 1매), 이영호(李永浩 2매, 朴春, 任興善, 李秉善, 李容振 각 1매), 장회건(張會建 2매, 張會健, 圃平會建, 張白雲, 張朴洙 각 1매)
5매 24 2 이순금(李順今 5매), 박진홍(朴鎭洪 4매, 朴昭永 1매) 등
4매 47 2 최복순(崔福順 3매, 崔世必 1매), 許蓮竹(許蓮竹, 許蓮俊, 岩村蓮俊, 岩村蓮竹 각 1매 ) 등
3매 166 7  
2매 836 31  
1매 3,743 137  
인원 총수 4,823명 內 179명  
카드 총수 6,264매 內 238매  
이 자료에 수록된 4,823명 속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포함되어 있다. 수록 인원을 민족별(국적별), 성별로 나누어 보면 아래 <표 4>와 같다.
<표 4> 민족별ㆍ성별 수록 인원 (단위 : 명)
구분 남성 여성 합계
한국인 4,601 178 4,779
일본인 30 1 31
중국인 13 0 13
총 인원 4,644 179 4,823
총 매수 6,026 238 6,264
일본인 가운데 주소지가 기재된 인원은 26명이다. 그 가운데 25명은 주소지를 한국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고용인, 직공 등 노동자가 11명으로 가장 많고, 고원(雇員) 3명, 회사원 2명, 교수ㆍ기자ㆍ조수 각 1명, 대학생 2명, 광업ㆍ상업ㆍ농업 종사자 각 1명, 무직 2명, 미상 5명 등이다.

카드에 등재된 1명의 교수는 미야케(三宅鹿之助) 경성제국대학 교수이다. 그는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경찰서를 탈출한 이재유(李載裕)를 숨겨준 장본인으로,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이 자료에는 미야케 교수 외에 한국인들과 함께 혹은 일본인들끼리 비밀결사 활동을 벌였던 사람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다른 문헌자료를 통해 비밀결사활동이 확인되는 일본인은 아래 표와 같다.
<표 5> 카드에 수록된 일본인의 비밀결사활동
활동/사건명 카드 수록 당사자 촬영/복사 시기 촬영기관 한국인 관련자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사건 磯谷季次 1931 서대문형무소 張會建, 朴世榮 등
비밀결사 목요회사건 木村亮, 井出允, 澤田秀雄, 市川重保, 伊藤政雄 1931 본정경찰서, 서대문형무소 鄭乭萬, 元世萬 등
비밀결사 일상투쟁동맹사건 岡泉, 緖方彌, 矢野工, 村井直彦 1931 본정경찰서  
경성제국대학 중심의 조선반제동맹사건 本田親男, 和田獻仁, 橫山禮太, 松浦良行, 岩崎富士男 1931/1933 본정경찰서, 서대문형무소 趙正來, 李舜根 등
교육노동자조합사건 菊池輝郞 1931 서대문형무소 趙判出
적위대사건 大場景美 1932 동대문경찰서 孔元檜,異晚圭, 文泰和등
비밀결사 사회주의청년동맹 경성지구위원회 결성준비회사건 穗坂壽惠, 宇都宮太郞, 執行裕 1932 동대문경찰서 兪順姬 등
격문 살포 上野平雄 1933 서대문형무소  
城大敎授 三宅鹿之助를 중심으로 한 鮮內 적화공작사건 三宅鹿之助 1934 서대문형무소 李載裕, 鄭泰植 등
위 표에 보이듯이 비밀결사 활동을 벌였던 일본인의 카드는 1931~1934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치안유지법에 저촉되어 탄압을 받았고, 그 가운데 4명은 치안유지법과 출판법을 적용받았다.

한편 중국인들의 카드는 1936년에 집중적으로 작성되었다. 이 사실은 사진 촬영/복사 시기를 민족별로 정리한 아래 표에 잘 드러나고 있다.
<표 6> 외국인의 카드 작성 시기
사진 촬영/복사 시기 일본인 중국인 소계
1931 13   14
1932 4   5
1933 5   5
1934 1   1
1936 1 8 8
1940 4   3
1941 1 1 2
1942   3 3
1944 1 1 2
미기재(1933년 추정) 1   1
총계 31 13 44
1936년에 작성된 8명의 중국인 카드에 첨부된 사진은 1936년 9월 10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 보관 중인 사진원판을 복사하여 제작하였다. 이들의 카드에 기재된 신상 내력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7> 중국인 카드의 기재 내용
이름 異名 나이 출신지 경력
賈景德 煜如 1881年生 山西省 沁水縣人 太原綏靖公署 秘書長
南桂馨 佩蘭 1883年生 山東省 寧武縣人 元 天津特別市長
傅作義 宜生 1893年生 山西省 孝義縣人 綏遠省 政府委員兼主席
閻錫山 佰川 1883年生 山西省 五傳縣人 太原綏靖公署 主任, 國民政府 軍事委員會委員, 國民黨 中央執行委員會 委員, 山西省 主領
李服膺 慕顔 1890年生 山西省 崞縣人 陸軍 第68師長
李生達 李潤發 1887年生 山西省人 陸軍 第72師長
趙承綬 印甫 1889年生 山西省 五台縣人 山西軍 騎兵司令
朱綬光 蘭孫 1886年生 湖北省 襄陽縣人 太原綏靖公署 參謀長(閻錫山系)
<표 7>에 보이듯이 1936년에 작성된 중국인 카드의 주인공들은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 쑤이위안성(綏遠省)의 중국국민당 정부ㆍ군의 중요 인사들이었다. 중일전쟁을 도발하기 전부터 일제가 중국측 주요 인사들의 동정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일제 경찰당국은 일제의 통치에 반대, 반항하는 행동을 취했거나 취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들에 대해 ‘요시찰인’ ‘주의인물’이라는 낙인을 찍고 명부를 만들어 그들의 일상을 추적 감시하였다. 이에 더하여 그들이 반대 행동을 개시하였을 때 신속하게 체포함으로써 통치의 위험요소를 사회로부터 차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다. 여기서 소개하는 사진카드는 그러한 인물들에 대한 ‘범죄’ 수사와 체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초자료로 고안되어 일제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4. 카드양식과 기재사항
여기서 소개하는 사진카드는 인쇄 제작된 것으로, 총 4종류로 구분된다. 새로운 카드가 제작될 때마다 카드양식과 기재항목은 조금씩 변해갔다. 세부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지된 원칙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앞면에 사진을 붙이고 여러 가지 기재사항은 뒷면에 기록한다는 원칙이다. 말하자면 사진이 주연이고 인적 정보, 수형사실 등의 기재사항은 조연인 셈이었다.

D형 카드는 앞면에 오롯이 사진 관련 정보만 담았다. 반면에 A형, B형, C형 카드는 앞면에 사진과 함께 몇 가지 사항을 기재하도록 설계되었다. 유형별로 항목의 드나듦은 있지만 앞면에 기재되는 사항은 이름, 별명, 연령, 신장, 신체적 특징, 지문번호, 사진 촬영 일자와 촬영장소(관서) 등이었다.

카드에 기재하도록 인쇄된 항목은 사진카드 제작 의도와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유형별 각 카드의 기재항목을 원문 그대로, 앞면과 뒷면으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부록에 제시된 유형별 카드 참조).
<표 8> 카드 유형별 기재 항목 ①
유형
(항목 수)
앞면 뒷면
A형(19) 氏名, 年齡, 身長, 特徵, 指紋番號[좌, 우] 本籍, 出生地, 住所, 身分, 職業 // <受刑事項> 罪名, 刑名刑期(禁錮 懲役 年月) 言渡年月日, 刑ノ時期, 言渡裁判所, 執行監獄 出監年月日及其事由(滿期 假出獄), 前科, 備考
B형(29) 氏名, 異名, 身長, 特徵, 指紋番號[좌, 우] // 撮影[일자, 장소] 保存原板[크기, 번호] 本籍, 生地, 住所, 年齡, 身分, 職業, 戶主ノ氏名, 戶主トノ續柄, 父母ノ氏名 // 引致年月日, 引致官署, 引致事由 // <處分結果> 釋放[일자, 사유], 罪名, 刑名刑期(金額), 言渡年月日, 言渡官署 // <備考> 前科種別及犯數, 犯罪常用手段, 共犯者氏名, 出獄後ノ歸住地, 其他
C형(25) 氏名, 異名, 指紋番號[좌, 우] // 撮影[일자, 장소] 保存原板[크기, 번호] 本籍, 生地, 住所, 年齡, 職業, 身分, 身長 // 最近刑/其他前科, 罪名, 刑名刑期, 言渡官廳, [언도]年月日, 入所年月日, 出所年月日, 刑務所, 檢擧官署 // 手口原紙番號, 手口, 徘徊地, 特徵
D형(25) 撮影[일자, 장소] 保存原板[크기, 번호] 氏名, 異名, 指紋番號[좌, 우] // 年齡, 身分, 職業, 身長 // 手口番號, 特徵番號 // 本籍, 生地, 住居 // <最近刑> 罪名, 刑名刑期, 言渡官廳, 言渡年月日, 入所年月日, 出所年月日, 刑務所名 // 檢擧官署 // 其他前科, 檢擧 // 常用手口槪要
비고
1. 카드 유형 아래 괄호안의 숫자는 기재항목의 개수이다.
2. [ ] 안의 내용은 미리 인쇄되어 있는 기재 항목을 필자가 풀어 적은 것이다.
3. 각 카드에서 연관 항목을 묶어 칸으로 구분해 놓은 경우 ‘//’로, 구분명은 <>로 묶어 표시하였다.
카드 양식과 기재항목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한 눈에 살피기 위하여 기재항목을 유형별로 재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9> 카드 유형별 기재 항목 ②
구분 카드유형 A형 B형 C형 D형
기재항목 앞면 뒷면 앞면 뒷면 앞면 뒷면 앞면 뒷면
기본정보 (1) 성명 Ο   Ο   Ο     Ο
이명     Ο   Ο     Ο
연령 Ο     Ο   Ο   Ο
신장 Ο   Ο     Ο   Ο
특징 Ο   Ο     Ο   Ο
지문번호 Ο   Ο   Ο     Ο
사진정보 촬영일자, 장소     Ο   Ο   Ο  
보존원판크기, 번호     Ο   Ο   Ο  
기본정보 (1) 본적   Ο   Ο   Ο   Ο
출생지   Ο   Ο   Ο   Ο
주소   Ο   Ο   Ο   Ο
신분   Ο   Ο   Ο    
직업   Ο   Ο   Ο   Ο
가족관계 호주성명 및 관계, 부모성명       Ο        
수형사항 전과   Ο   Ο   Ο   Ο
죄명                
형명, 형기   Ο   Ο   Ο   Ο
언도관청, 일자   Ο   Ο   Ο   Ο
수감사항 형무소명   Ο       Ο   Ο
입소일자   Ο       Ο   Ο
출소일자, 사유   Ο       Ο   Ο
수사사항 검거관서(일자,사유)       Ο   Ο   Ο
전과   Ο   Ο   Ο   Ο
범죄수법       Ο   Ο   Ο
공범자 성명       Ο        
배회지           Ο    
사후관리 귀주지       Ο        
기타 비고/기타   Ο   Ο        
앞면과 뒷면의 기재항목을 살펴보면 카드양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되어 가는지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앞면의 기재항목이 점차 축소되어 종국에는 사진정보만 남았다는 점이다. 앞면에서 삭제된 항목은 그대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뒷면으로 옮겨졌다.

A형의 경우 카드를 휴대하고 수사에 나선 경찰들이 용의자를 찾아 단숨에 대조할 수 있도록 연령, 키, 신체상의 특징 등을 사진과 함께 앞 면에 배치하였다. 현장에서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기재항목을 앞 뒤로 구분하여 적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항목의 이동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A형 카드에는 이명과 사진정보 항목이 설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정보들은 완전히 누락시킨 것은 아니었다. 성명란이 두 칸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윗칸에는 본명을, 아래 칸에는 이명을 적을 수 있었다.

한편 피체자의 사진을 촬영할 때는 원판번호를 적은 종이를 옷깃 또는 가슴팍에 붙인 후 찍었기 때문에 구태어 사진정보란을 설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을 출력했을 때 원판번호가 흐릿하여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후에 원판 자체에 번호를 추가로 적어 넣었다. 이렇게 조처를 한 경우에는 사진에 나온 원판번호의 좌우가 뒤집혀 있다. A형 카드는 피체자 상반신의 전면과 측면 두 종류의 사진을 붙였는데, 그 사이 빈 공간에 사진원판 번호를 적은 경우가 많다.

대단히 수고로운 작업일 테지만 A형 카드를 한 장 한 장 살피면 보존원판 번호를 복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카드 작성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비고란에 촬영일과 촬영장소를 기재한 카드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본정보 (1)과 (2)의 세부 기재항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D형에 이르러 신분항목이 빠졌을 뿐이다. 1894년 신분제도가 공식 폐지된 후 신분에 의한 구분은 점차 사회적 의미를 상실해갔다. 이런 실태를 반영하여 카드에서도 신분란이 사라졌다.

호주의 성명, 호주와의 관계, 부모의 성명을 기재하는 가족관계 항목은 B형 카드에 추가되었다가 C형 카드를 만들 때부터 다시 삭제되었다.

죄명, 형명(징역, 금고, 벌금, 노역 등), 형기, 언도관청과 언도일자 등을 기재하는 수형사항은 네 종류의 카드에 모두 설정되었다. 하지만 기재상태는 가장 부실하다. 카드 작성 당시 혐의사실과의 관련성도 불분명하다. 수사가 끝난 후 사건을 검사국으로 넘기는 순간 피체자는 경찰의 손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 후 예심을 거쳐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몇 년씩 소요되는 상황에서 피체자를 일일이 추적 관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출감한 피체자가 다시 사회에 나왔을 때 비로소 경찰의 관심은 되살아난다. 이 때 다시 카드를 꺼내들고 살피며 필요에 따라 기재사항을 추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사건 발생 당시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해당사건의 미래 수형사항을 제대로 기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D형 카드에서는 수형사항에 “最近刑”을 적도록 못박았다. 전과 유무를 밝혀 그와 관련된 수형사실을 적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지켜진 것 같지는 않다. 죄명란에 피체 당시의 죄명을 적은 경우는 아주 많다. A형, B형, C형 카드는 “최근형“이라는 기재원칙을 양식에 못박지 않았기 때문에 카드 작성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피체 당시의 죄명과 경찰의 처분 결과를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수형사항과 관련된 항목은 자료를 이용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해당 항목에 기재된 내용이 피체 당시의 상황인지, 과거에 검거되었을 때의 상황인지를 먼저 판별한 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수감사항도 수형사항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最近刑”을 적도록 양식에 못박은 D형의 경우 과거 사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 기결수로 수감된 형무소의 명칭과 입소일, 출소일을 기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카드를 작성하던 실무자(혹은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가 피의자의 수년 전 사건에 대한 행형자료를 찾아 입소일, 출소일을 정확하게 기재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리라 예상된다. 최종 판결 언도일을 감안해서 입소일에 적고, 형기를 단순 환산해서 출소일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았으리라고 여겨진다.

수사사항으로 분류한 항목 가운데 ‘전과’는 네 카드 모두 기재항목으로 설정되었다. 전과가 없을 때는 빈 칸으로 남기거나 ‘초범’ ‘無’ ‘ナシ’ 등을 기재하였다. 네가지 카드 모두 ‘전과’ 항목을 설정한 이유는 초범이나 재범이냐에 따라 양형에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즉 피체자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과 사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범죄수법과 관련해서 B형은 ‘범죄상용수단’ 항목을, C형은 수구원지번호(手口原紙番號)와 수구(手口) 항목을, D형은 ‘常用手口槪要’ 항목을 설정하였다. 이른바 ‘手口(수법)’ 관련 항목은 경찰에서 작성 관리한 자료로서의 특성을 반영한 항목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항목을 어느 정도 기재한 것은 D형 뿐이며, B형은 9건, C형은 4매에 불과하다. 경찰 수뇌부에서는 범죄수법을 조사 연구하여 재발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설정한 항목일 터였다. 하지만 현장 실무를 담당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보자면 책상에 앉아 이미 잡아놓은 사냥물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그저 번거로운 일로만 여겨진 것이 아닌가 싶다. B형에 들어간 ‘공범자 성명’ 항목과 C형에 들어간 ‘배회지’ 항목도 카드 작성자들이 외면한 항목으로, 다음 양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공범자 성명란이 기재된 경우는 10매에 불과하고, 배회지 항목을 채운 카드는 한 매도 없다.

출감 후 귀향지를 기재하는 ‘귀주지’ 항목은 B형 카드에 등장했다가 C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A형 카드에 귀주지 항목은 없지만 기타란에 적힌 내용은 대부분 귀주지 정보이다. 귀주지 항목은 ‘범죄자’의 사후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항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형, D형 카드에서 삭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서 관리하는 이른바 요시찰인 명부가 따로 있기 때문에 검거 및 수사자료로 제작한 이 자료에서는 그 항목을 뺀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각 유형별 사진카드 수량과 사용된 사진의 촬영 시기를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10> 카드의 유형별 보존 수량과 사용 시기(사진 촬영 시기)
카드 유형 보존 수량 사진의 촬영/복사 시기
A형 1,055매 1913년 ~ 1923년
B형 379매 1923년 ~ 1931년
C형 605매 1929년 ~ 1931년
D형 4,224매 1919년 ~ 1944년
합계 6,264매  
부록 1 : 수록 인물 관련 통계
  • 1) 본적지 : 본적지 정보가 있는 카드를 1인 1적(籍) 기준으로 집계
  • 본적지 : 본적지 정보가 있는 카드를 1인 1적(籍) 기준으로 집계
    본적지 인원수 비율
    강원도 402 9.0%
    경기도 1,140 25.4%
    경상남도 145 3.2%
    경상북도 292 6.5%
    전라남도 159 3.5%
    전라북도 173 3.9%
    충청남도 211 4.7%
    충청북도 102 2.3%
    평안남도 172 3.8%
    평안북도 107 2.4%
    함경남도 590 13.2%
    함경북도 801 17.9%
    황해도 180 4.0%
    간도 5 0.1%
    노령 3 0.1%
    무적(無籍) 2 0.0%
    조선인 합계 4,484 100.0%
    일본인 31  
    중국인 13  
    총인원수 4,528  


  • 2) 주소지 : 1인 1건 원칙. 다른 사건으로 검거된 사실이 분명할 경우만 별건 처리(판결 시기가 다를 때, 처리 경찰서가 다를 때, 촬영 시차가 수년간 벌어질 때 등)
  • 주소지 : 1인 1건 원칙. 다른 사건으로 검거된 사실이 분명할 경우만 별건 처리
    주소지 인원수 비율
    조선인 강원도 329 7.5%
    경기도 1,818 41.2%
    경상남도 74 1.7%
    경상북도 195 4.4%
    전라남도 85 1.9%
    전라북도 102 2.3%
    충청남도 91 2.1%
    충청북도 51 4.5%
    평안남도 150 3.4%
    평안북도 54 1.2%
    함경남도 416 9.4%
    함경북도 302 6.8%
    황해도 102 2.3%
    간도 560 12.7%
    중국 본토 42 1.0%
    노령 13 0.3%
    일본 23 0.5%
    하와이 2 0.0%
    조선인 합계 4,409 100.0%
    일본인 조선 25  
    일본 1  
    중국인 조선 45  
    중국 1  


  • 3) 연령 : 주소지 처리 원칙과 동일
  • 연령 : 주소지 처리 원칙과 동일
    연령 구분 인원수
    17~19세 23
    20~24세 82
    25~29세 45
    30~34세 20
    35~39세 12
    40~44세 9
    45~49세 8
    50대 2
    60대 1
    합계 202


    연령 : 주소지 처리 원칙과 동일
    출생연도 구분 인원수
    1840년대 23
    1850년대 17
    1860년대 52
    1870년대 116
    1880년대 280
    1890~1894년 287
    1895~1899년 437
    1900~1904년 664
    1905~1909년 951
    1910~1914년 980
    1915~1919년 358
    1920~1924년 153
    1925~1927년 27
    합계 1,940


  • 4) 적용 법률(죄명) : 주소지 처리 원칙과 동일. 1인의 죄명이 여럿일 경우 별건 처리
  • 적용 법률(죄명) : 주소지 처리 원칙과 동일. 1인의 죄명이 여럿일 경우 별건 처리
    구분 건수 관련 죄명
    감금, 체포, 약취 12 불법감금, 불법체포, 略取, 略取未遂, 營利誘拐
    강도,강도살인•상인•미수 135 강도, 강도교사, 강도미수, 강도살인, 강도살인미수, 强盜傷人, 강도치사, 강도방조
    경찰범처벌규칙위반 등 4 경무부령위반, 경찰범처벌규칙위반
    공갈, 협박 20 공갈, 공갈미수, 恐喝取財, 협박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21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국가총동원법위반 등 503 국가총동원법위반, 가격등통제령위반, 국민징용령위반, 수출입품등에 관한 임시조치에 관한 법률위반, 조선산금 및 외국위체위반, 가죽판매제한에 관한 건 위반
    軍機保護法違反 등 21 군기보호법위반, 국경취체법위반, 外患에 관한 죄
    범인은닉 방조 3 범인은닉 방조
    방화(미수) 등 65 방화, 방화미수, 방화교사, 방화예비, 방화방조
    보안법위반 1,260 보안법위반
    불경죄 14 불경죄
    사기,절도,횡령 등 77 사기, 절도, 절도방조, 횡령, 배임, 贓物故買, 贓物牙保
    살인(미수) 등 85 살인, 살인미수, 살인교사, 사체유기, 살인방조
    상해, 상해치사 28 상해, 상해치사
    소요 130 소요, 피구금자 탈취, 왕래방해
    육해군형법위반 53 육해군형법위반, 육군형법위반, 해군형법위반, 형법위반
    전신법위반 16 電信法違反
    제령제7호위반 18 대정8년제령제7호위반, 정치범처벌법위반
    조선임시보안령위반 19 조선임시보안령위반, 안녕질서에 관한 죄
    주거침입 51 주거침입, 가택침입
    총포•폭발물취체 위반 22 총포화약류취체령위반, 폭발물취체벌칙위반, 동 방조
    출판법위반 229 출판법위반
    치안유지법위반 2,808 치안유지법위반, 동 방조
    파괴(건조물,기물), 훼기 22 건조물손괴, 공문서훼기, 기물손괴, 기차파괴, 공문서훼기, 훼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폭동 35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폭동
    기타 23 강간, 교사, 도주, 무고, 예배소에 대한 죄, 문서위조행사, 법률사무취체의 건 위반, 삼림령위반, 의사규칙위반, 帝國外移送誘拐, 조선아편취체령위반, 造言飛語, 중의원의원선거법위반
    총합계 5,674  
부록 2 : 사진카드 예시
  • 1)  이인영 카드 앞면, 뒷면 (A형 카드)

    이일영의 카드는 이정로 카드와 함께 부착된 사진의 촬영일자가 가장 이르다.

  • 2)  박장록 카드①, ② (A형 카드)

    박장록의 카드는 두 장인데 각기 다른 건물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 붙어 있다. 두 장의 사진은 보존원판 번호 614번을 옷깃에 달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상단의 사진에는 1번, 하단의 사진에는 289번이라는 새로운 번호가 부여되었다. 그 후 카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두 장의 카드가 중복된 것을 발견하고 뒷 번호인 하단의 사진에 삭제 표시를 하였다.

  • 3-1)  강원호 카드① 앞면 (B형 카드)

     

  • 3-2)  강원호 카드② 앞면 (B형 카드)

     

  • 3-3)  강원호 카드③ 앞면과 뒷면 (B형 카드) : 다수인 사진 등재 사례, 고등과 수배용 카드

     

  • 4)  이리타 카드 (C형 카드)

    사회주의자 정재달의 부인인 이리타에 대한 수배용 카드

  • 5-1)  정희동 카드① 수배용, 앞면과 뒷면 (D형 카드)

     

  • 5-2)  정희동 카드② 앞면과 뒷면 (D형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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