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嘉穀과 園寢의 桑梓를 손상시키니 잡아서 驅浦에 던지라는 傳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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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벌레가 嘉穀과 園寢의 桑梓를 손상시키니 잡아서 驅浦에 던지라는 傳敎  
연월일정조 22년 1798년 04월25일(음)
傳曰, 蟲損嘉禾宰樹, 安得不捕而除之, 考之經史, 自昔伊然, 周官庶氏·剪氏之職皆爲是而設耳, 食苗 者螟, 食葉者螣, 食根者蟊, 食節者賊, 秉畀炎火, 祝于 田祖之神, 掘坑焚瘞始於唐時姚崇, 歷代因之, 遂爲 成憲, 皆用民力, 紫陽之訓有云, 豈能不役人徒, 而坐 致成功, 但有見識人, 見得利害之實, 知其勞我者, 乃 所以逸我, 自不怨耳, 近者園寢桑榟有蟲損之害, 使植木十邑守宰, 率官隷捕除之, 以寓暫勞永逸之 意, 而官隷亦民也, 念其烈陽使役, 殆忘寢食, 乃引歐 陽脩詩, 官錢二十買一斗, 頃刻露積如京坻之句, 特 創買蟲之式, 幸得事半而功倍, 於予心猶有不自安 者, 是蟲也, 雖蔑蜂蠶之功, 較甚蚊蝱之毒, 然且卽亦 蠢動之生物也, 遵聖人錄其功·明其毒之義, 固可捕 而除之, 除之之際, 亦應有方便之方, 宜令曰, 生之德 竝行於其間, 莫曰爲害, 隨其爲物, 而有巨細之各異, 驅而放菹, 勝於烈而焚之, 況秉畀之詠, 托辭也, 焚瘞 之擧, 實事也, 邃古·後世之別, 亦足可觀, 嘗聞蟲亂入 海, 化爲魚蝦, 伏波之治武陵, 明驗尙傳, 多日潛究, 決 意著令, 此後拾投鷗浦·海口浦之距植木所不遠, 而 近爲二十里, 買蟲省人力, 投海述故事, 於義有何悖 乎, 召見守臣面諭此意, 而又於驪江陵樹, 亦云蟲 損, 買蟲與投水, 一依華城新頒式令用之, 決知其毫 無不可, 續見道伯之狀語, 畢拾姑杳然, 此時役民有 妨農政, 不勝耿耿, 呼燭書下, 卽令廟堂星火知委該 道, 而今後餘皆以爲例事, 分付禮曹·漢城府。

기사제목벌레가 嘉穀과 園寢의 桑梓를 손상시키니 잡아서 驅浦에 던지라는 傳敎  
연월일정조 22년 1798년 04월25일(음)
전교하기를,
“벌레가 가곡(嘉穀)과 재수(宰樹 : 묘목(墓木))를 손상시키고 있는데 어떻게 잡아서 제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사(經史)를 상고하면 옛 부터 그러하였으니 주관(周官)001001 주관(周官) : 주례(周禮)를 일컬음. 주(周)나라 시대의 관제(官制)를 적은 책으로 주공단(周公旦)이 지었음.닫기의 서씨(庶氏)·전씨(剪氏)의 직은 다 이를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 곡식의 싹을 먹는 것은 명충(螟虫)이고 곡식의 잎을 먹는 것은 특충(螣虫)이며 곡식의 뿌리를 먹는 것은 모충(蟊虫)이고 곡식의 마디를 먹는 것은 적충(賊虫)인데 잡아서 불에 던져 달라고 전조(田祖)의 신(神)에게 빌었다. 구덩이를 파고 불을 놓아 파묻는 것은 당(唐)나라 때의 요숭(姚崇)002002 요숭(姚崇) : 당(唐) 나라 협주협석인(硤州硤石人) 자(字)는 원지(元之) 호학척당(好學倜儻)하고 기절(氣節)을 숭상했다. 현종이 정승이 되어 개원지치(開元)의 정치(政治)를 이루었다.〈唐書一百二十四.〉닫기에게서 시작되어 역대(歷代)에서 따라하여 마침내 성헌(成憲)이 되었으나 모두 민력(民力)을 이용하였다. 자양(紫陽 : 송나라 주희(朱熹)의 호)의 훈(訓)에 이르기를 ‘어찌 사람을 부리지 않고 앉아서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다만 식견있는 사람이 이해(利害)의 실상을 터득하여 나를 수고롭게 하는 것이 바로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면 자연히 원망하지 않게 된다’ 하였다. 근래에 원침(園寢)의 상재(桑梓)에 벌레가 손상을 입히는 피해를 당하여 나무를 심었던 10읍의 수재(守宰)로 하여금 관례(官隷)를 거느리고 벌레를 잡아서 잠깐의 수고로움으로써 영구히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뜻을 붙었으나 관례도 또한 백성이다. 그들이 뜨거운 뙤약볕에서 사역(使役)하는 것을 생각하면 자못 잠과 입맛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그래서 구양수(歐陽修)의 ‘관전 이십 냥으로 벌레 한 말을 샀더니 경각간에 풍년 들어 곳곳이 노적이네([官錢二十買一斗, 頃刻露積如京坻])’라는 시구를 인용하여 특별히 벌레를 사들이는 영을 처음으로 발하여 다행히 공력보다 성과가 갑절 많았으나 내 마음에는 오히려 스스로 편안하지 않은 바가 있다. 이 벌레가 비록 벌과 누에와 같은 공은 없고 모기와 등애의 독보다도 더 심하나 이것도 꾸물꾸물 준동하는 생물이다. 성인(聖人)의 ‘그 공은 기록하고 그 독은 밝힌다.’는 뜻에 따라 의당 잡아서 제거해야 하지만 제거할 즈음에도 필시 좋은 방도가 있을 것이니 마땅히 영하기를 ‘살리는 덕을 그 사이에 아울러 행하라’고 해야지 ‘해가 된다.’고만 말해서는 안되겠다. 그 생김생김에 따라 크고 작음이 각기 다르지만 몰아서 부서리에 내치는 것이 뜨거운 불에 태우는 것보다는 낫겠다. 더구나 ‘잡아서 불에 던진다[秉畀炎火 : 소아(小雅)대전(大田)]’는 시는 탁사(托辭 : 가탁하여 한 말)이고 불에 태워 파묻는 일은 실사(實事)이니 상고(上古)와 후세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일찍이 들으니 벌레들이 어지럽게 바다로 들어가 고기와 새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복파장군(伏波將軍 : 한나라 마원(馬援)을 말함)이 무릉(武陵)을 다스릴 때의 명험(明驗)으로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여러 날 잠심하고 생각하여 뜻을 굳히고 영으로 내리니 이 뒤로는 벌레를 잡아서 구포(鷗浦)에 던져라. 해구포(海口浦)는 나무를 심은 곳에서 거리가 멀지 않아 겨우 20리가 될 뿐이다.
돈으로 벌레를 사서 인력을 줄이고 벌레를 바다에 던진 고사(故事)를 말한 것이 의(義)에 무엇이 어긋나겠는가? 수신(守臣)을 불러보고 직접 이 뜻으로 타이르겠으나 또 여강(驪江)의 능수(陵樹)도 벌레에 손상을 입었다고 하니 돈으로 벌레를 사는 것과 물에 던지는 일을 모두 화성(華城)에서 새로 반포한 식령(式令)에 따라 해도 결코 털끝만큼도 안 될 것이 없겠다. 계속하여 도백(道伯)의 장계를 보니 ‘벌레를 다 잡기는 아직 아득하다’고 하였는데, 이때 백성을 사역시키는 것은 농정(農政)에 방해가 있을 것이므로 못내 걱정스러워 촛불을 밝히고 글을 써서 내리니 즉시 묘당으로 하여금 성화같이 해도(該道)에 알리게 하고 이 뒤로는 나머지도 모두 준례로 삼도록 예조와 한성부에 분부하라.”
하였다.

註 001
주관(周官) : 주례(周禮)를 일컬음. 주(周)나라 시대의 관제(官制)를 적은 책으로 주공단(周公旦)이 지었음.
註 002
요숭(姚崇) : 당(唐) 나라 협주협석인(硤州硤石人) 자(字)는 원지(元之) 호학척당(好學倜儻)하고 기절(氣節)을 숭상했다. 현종이 정승이 되어 개원지치(開元)의 정치(政治)를 이루었다.〈唐書一百二十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