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다

입당구법순례행기 > 卷 第二 > 개성사년(開成四年) > 팔월(八月) > 절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다

절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다 (十五日)

十五日. 寺家設餺飩校勘 079079 飩은 飥의 오기이다.닫기餅食㝳作八月十五日之節. 斯節諸國未有, 唯新羅國獨有此節. 老僧㝳語云, “新羅國昔与渤海相戰之時以是日淂勝矣, 仍作節樂而喜儛. 永代相續不息.” 設百種飮食歌儛管絃以晝續夜三箇日便休. 今此山院追慕郷國今日作節. 其渤海爲新羅罸纔有一千人向北逃去, 向後却來依舊為國. 今喚渤海國之者是也.

校勘 079
飩은 飥의 오기이다.
주제분류
문화>풍속·놀이>풍속

절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다 (十五日)

[8월] 15일
절에서 박탁(餺飩)186186 초본(抄本)에는 鈍으로 잘못 되어 있는데, 飥이 맞다. 박탁(鑮飥)이라고도 쓰는데, 䬪飥·餢飳 등이라고도 한다. 밀가루로 만든 떡의 일종이다. ≪입당구법순례행기≫ 권1 개성(開成) 4년 4월 6일조 참조(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쪽).닫기과 병식(餠食)187187 병식은 쌀가루나 보리 가루를 이겨서 찌거나 굽은 과자류를 餠이라 한다.닫기188188 쌀·보리·조 등의 가루를 반죽하여 이것을 찌거나 굽거나 한 것을 餠이라 한다. 8월 15일(중추절)에 먹는 떡은 월병(月餠)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깨(胡麻)와 서과(西瓜) 등을 떡에 넣어 기름에 볶은 과자를 말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쪽).닫기 등을 마련하여 8월 보름189189 8월 15일을 명절로 했던 것은 수(隋)의 최식(崔寔)의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월절(月節)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당(唐)대에 일년 중 일어나는 일과 관계되는 저작에는 아직 현저하게 없다. 다만 현종은 8월 5일이 탄생일이었기 때문에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였고, 또 8월 15일과 관련해서 시문 등에 자주 표현되고 있다. 중추절이 성대하게 된 것은 북송 이후였다고 생각되는데(≪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권8), 근세에 이르러 더욱더 일반화되고,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에까지 미쳤다(小野勝年, ≪北京年中行事記≫) 그런데 신라에서는 중추절을 특히 중시했던 것 같은데, 당나라 사람도 이것을 주의하고 있다. ≪구당서≫ 권199 동이전 신라조에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한다. 게다가≪동환록(東寰錄)≫은 가배(嘉俳)를 언급하고 있는데, “신라는 8월을 기다리는데 가배라고 한다. 지금 배우자 풍속은 가배가 변한 것이다”라고 한다. 배(俳)는 배우(俳優)인데, 배(徘)와도 통한다. 그렇다면 달 아래에서 춤을 추고 배회하였는데, 결국 오로지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즐기는 것에 중점이 두어져, 가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96쪽).닫기 명절190190 엔닌은 적산원 노승들의 말을 듣고 여기서 8월 보름의 기원을 적고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 중추의 명절을 즐기는 행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며〔≪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 신라는 이 중추절을 특히 중히 여겨왔다. 당에서도 신라의 이 행사에 주목하여 그들의 사서에 기록하고 있다.〔≪구당서≫ 권199 열전 149상 동이전 신라〕 엔닌 일기에 기록된 이 내용은 혹시 성덕왕(聖德王) 32년(733, 당 개원 21년)에 발해가 등주를 침공했을 때 당을 도우러 갔던 신라와 발해와의 전투 이야기가 등주 일원에 퍼졌고, 그 싸움에 이겼던 날이 중추절과 겹쳤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김문경,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중심, 2001, 194~195쪽).닫기을 지냈다. 이 명절은 여러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신라국에만 유독 이 명절이 있다. 노승 등이 말하기를 “신라국이 발해국191191 고구려 멸망은 보장왕 27년(668) 9월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원인이 말하는 발해는 실제로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이고, 시조 대조영은 고구려 사람이다. ≪속일본기≫ 권10에도 “발해군은 옛 고구려국”이라고 명기되어 있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96쪽).닫기과 서로 싸웠을 때 이날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 날을 명절로 삼아192192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儒理王 때 6부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 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때 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배'라 불렀다. 이것이 8월 보름 추석의 유래이다, 그런데 적산 법화원의 노승은 8월 보름의 명절은 신라가 발해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여 차이를 보인다.닫기193193 여기에서 발해는 고구려를 가리킨다. 고구려 멸망을 중추절과 결부시켜 축하하는 것은 신라이지만, 8월 15일을 즐기는 행사 또한 옛 우리나라 민속적 행사로 마침 서로 겹쳤던 것으로 생각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96쪽).닫기 음악과 춤을 추며 즐겼다. 이 행사는 오래도록 이어져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음식을 마련하고 가무와 음악을 연주하며 밤낮으로 이어져 3일 만에 끝이 난다. 지금 이 산원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늘 명절을 지냈다. 그 발해는 신라에 토벌되어 겨우 1천명이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후에 되돌아와 옛날대로 나라를 세웠다.194194 이 문장으로 보면, 신라에 토벌되었다는 발해는 곧 고구려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도망하여 세웠다고 하는 발해는 대조영이 세운 발해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자 圓仁은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고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발해는 서기 698년에 고구려 유장인 大祚榮이 만주 길림성의 돈화현 동모산을 중심으로 지배계층을 형성한 고구려인과 피지배층의 말갈인을 모아 건국한 나라로 처음에는 국호를 震으로 했다가 뒤에 발해로 고쳐 강국이 되었으나 926년에 거란에게 망하였다.닫기 지금 발해국이라 부르는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註 186
초본(抄本)에는 鈍으로 잘못 되어 있는데, 飥이 맞다. 박탁(鑮飥)이라고도 쓰는데, 䬪飥·餢飳 등이라고도 한다. 밀가루로 만든 떡의 일종이다. ≪입당구법순례행기≫ 권1 개성(開成) 4년 4월 6일조 참조(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쪽).
註 187
병식은 쌀가루나 보리 가루를 이겨서 찌거나 굽은 과자류를 餠이라 한다.
註 188
쌀·보리·조 등의 가루를 반죽하여 이것을 찌거나 굽거나 한 것을 餠이라 한다. 8월 15일(중추절)에 먹는 떡은 월병(月餠)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깨(胡麻)와 서과(西瓜) 등을 떡에 넣어 기름에 볶은 과자를 말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쪽).
註 189
8월 15일을 명절로 했던 것은 수(隋)의 최식(崔寔)의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월절(月節)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당(唐)대에 일년 중 일어나는 일과 관계되는 저작에는 아직 현저하게 없다. 다만 현종은 8월 5일이 탄생일이었기 때문에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였고, 또 8월 15일과 관련해서 시문 등에 자주 표현되고 있다. 중추절이 성대하게 된 것은 북송 이후였다고 생각되는데(≪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권8), 근세에 이르러 더욱더 일반화되고,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에까지 미쳤다(小野勝年, ≪北京年中行事記≫) 그런데 신라에서는 중추절을 특히 중시했던 것 같은데, 당나라 사람도 이것을 주의하고 있다. ≪구당서≫ 권199 동이전 신라조에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한다. 게다가≪동환록(東寰錄)≫은 가배(嘉俳)를 언급하고 있는데, “신라는 8월을 기다리는데 가배라고 한다. 지금 배우자 풍속은 가배가 변한 것이다”라고 한다. 배(俳)는 배우(俳優)인데, 배(徘)와도 통한다. 그렇다면 달 아래에서 춤을 추고 배회하였는데, 결국 오로지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즐기는 것에 중점이 두어져, 가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96쪽).
註 190
엔닌은 적산원 노승들의 말을 듣고 여기서 8월 보름의 기원을 적고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 중추의 명절을 즐기는 행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며〔≪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 신라는 이 중추절을 특히 중히 여겨왔다. 당에서도 신라의 이 행사에 주목하여 그들의 사서에 기록하고 있다.〔≪구당서≫ 권199 열전 149상 동이전 신라〕 엔닌 일기에 기록된 이 내용은 혹시 성덕왕(聖德王) 32년(733, 당 개원 21년)에 발해가 등주를 침공했을 때 당을 도우러 갔던 신라와 발해와의 전투 이야기가 등주 일원에 퍼졌고, 그 싸움에 이겼던 날이 중추절과 겹쳤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김문경,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중심, 2001, 194~195쪽).
註 191
고구려 멸망은 보장왕 27년(668) 9월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원인이 말하는 발해는 실제로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이고, 시조 대조영은 고구려 사람이다. ≪속일본기≫ 권10에도 “발해군은 옛 고구려국”이라고 명기되어 있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96쪽).
註 192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儒理王 때 6부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 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때 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배'라 불렀다. 이것이 8월 보름 추석의 유래이다, 그런데 적산 법화원의 노승은 8월 보름의 명절은 신라가 발해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여 차이를 보인다.
註 193
여기에서 발해는 고구려를 가리킨다. 고구려 멸망을 중추절과 결부시켜 축하하는 것은 신라이지만, 8월 15일을 즐기는 행사 또한 옛 우리나라 민속적 행사로 마침 서로 겹쳤던 것으로 생각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2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96쪽).
註 194
이 문장으로 보면, 신라에 토벌되었다는 발해는 곧 고구려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도망하여 세웠다고 하는 발해는 대조영이 세운 발해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자 圓仁은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고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발해는 서기 698년에 고구려 유장인 大祚榮이 만주 길림성의 돈화현 동모산을 중심으로 지배계층을 형성한 고구려인과 피지배층의 말갈인을 모아 건국한 나라로 처음에는 국호를 震으로 했다가 뒤에 발해로 고쳐 강국이 되었으나 926년에 거란에게 망하였다.
주제분류
문화>풍속·놀이>풍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