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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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오계

沙梁部貴山· 箒頂校勘 129129 최남선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頂은 項으로 되어 있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제50권, ≪대일본불교전서유방총서(大日本佛敎全書遊方叢書)≫제2에는 註曰頂遺事四作項貴山箒頂二賢士之名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45 열전5 귀산(貴山),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에 의하면 箒項이 맞다.
닫기
詣門摳衣吿曰, “俗士顓蒙無所知識, 願賜一言爲終身之誡.” 曰 “有菩薩戒其別有十. 若等校勘 130130 천견윤태랑본에는 等은 䓁으로 되어 있다. 닫기爲人臣子恐不能行. 今有世俗五戒, 一曰事君以忠, 二曰奉校勘 131131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에는 奉은 事로 되어 있다. 닫기親以孝, 三曰交友以校勘 132132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에는 以는 爲로 되어 있다. 닫기信, 四曰臨戰不校勘 133133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에는 不은 無로 되어 있다. 닫기退, 五曰殺生有擇. 若等校勘 134134 천견윤태랑본에는 等은 䓁으로 되어 있다. 닫기行之無校勘 135135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최남선본에는 無는 毋로 되어 있다. 닫기忽.” 貴山曰 “他則旣受命矣, 但不曉殺生有擇.” 曰 “春夏月及六齋日不殺是擇時也, 不殺使畜謂牛馬鷄犬, 不殺細物謂肉不足一臠, 是擇物也. 過此雖校勘 136136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에는 雖는 椎로 되어 있다.
최남선본에는 雖는 惟로 되어 있다.
천견윤태랑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雖를 惟로 교정하였다.
닫기
校勘 137137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천견윤태랑본, 최남선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는 其로 되어 있다. 닫기所□校勘 138138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천견윤태랑본, 최남선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는 用으로 되어 있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제50권, ≪대일본불교전서유방총서(大日本佛敎全書遊方叢書)≫제2에는 註曰二空字宜作有用二字遺事作唯其所用으로 되어 있다. 닫기但不求多殺, 此可謂世俗之善戒.” 貴山校勘 139139 천견윤태랑본에는 等은 䓁으로 되어 있다. 닫기守而勿墮.

校勘 129
최남선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頂은 項으로 되어 있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제50권, ≪대일본불교전서유방총서(大日本佛敎全書遊方叢書)≫제2에는 註曰頂遺事四作項貴山箒頂二賢士之名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45 열전5 귀산(貴山),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에 의하면 箒項이 맞다.
校勘 130
천견윤태랑본에는 等은 䓁으로 되어 있다.
校勘 131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에는 奉은 事로 되어 있다.
校勘 132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에는 以는 爲로 되어 있다.
校勘 133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에는 不은 無로 되어 있다.
校勘 134
천견윤태랑본에는 等은 䓁으로 되어 있다.
校勘 135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최남선본에는 無는 毋로 되어 있다.
校勘 136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에는 雖는 椎로 되어 있다.
최남선본에는 雖는 惟로 되어 있다.
천견윤태랑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雖를 惟로 교정하였다.
校勘 137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천견윤태랑본, 최남선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는 其로 되어 있다.
校勘 138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천견윤태랑본, 최남선본, 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는 用으로 되어 있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제50권, ≪대일본불교전서유방총서(大日本佛敎全書遊方叢書)≫제2에는 註曰二空字宜作有用二字遺事作唯其所用으로 되어 있다.
校勘 139
천견윤태랑본에는 等은 䓁으로 되어 있다.
주제분류
사회>사회조직>화랑도>화랑
사회>교육>교육활동>학습활동

세속오계

사량부(沙梁部: 경주시내)의 귀산(貴山)050050 신라 화랑의 한 사람. 箒項과 함께 원광법사 밑에서 世俗五戒를 배웠다. 진평왕 24년(602)에 백제와 阿莫山城에서 싸울 때 少監으로 출전해서 臨戰無退의 교훈을 받들어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었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3쪽).닫기추항(箒項)051051 본문은 ≪삼국사기≫ 권45 열전5 貴山조의 “貴山 沙梁部人也 父武殷阿干 貴山少與部人箒項爲友 二人相謂曰 我等期與士君子遊 而不先正心修身 則恐不免於招辱 盍聞道於賢者之側乎 時圓光法師 入隋遊學 還居加悉寺 爲時人所尊禮 貴山等詣門 摳衣進告曰 俗士顓蒙 無所知識 願賜一言 以爲終身之誡 法師曰 佛戒有菩薩戒 其別有十 若等爲人臣子 恐不能堪 今有世俗五戒 一曰事君以忠 二曰事親以孝 三曰交友以信 四曰臨戰無退 五曰殺生有擇 若等 行之無忽 貴山等曰 他則旣受命矣 所謂殺生有擇 獨未曉也 師曰 六齋日春夏月不殺 是擇時也 不殺使畜 謂馬牛雞犬 不殺細物 謂肉不足一臠 是擇物也 如此 唯其所用 不求多殺 此可謂世俗之善戒也 貴山等曰 自今已後 奉以周旋 不敢失墜”에 의한 듯하다. 한편 ≪삼국유사≫ 권4 義解5 圓光西學조에도 위의 ≪삼국사기≫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민족사, 1991, 199쪽).닫기은 스님의 문하에 나아가 공손한 태도로 말하기를 “세속의 선비가 어리석어 아는 바가 없사오니 원하옵건대 한 말씀 가르쳐 주시면 일생의 교훈으로 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말하기를 “보살계052052 대승보살들이 받아 지니는 계율이다(김달진 역, ≪한국의 사상대전집≫ 2, 동화출판공사, 1972, 405쪽).닫기가 있으니 그 종류는 열 가지가 있다. 그대들은 남의 신하이고 자식이어서 아마도 능히 행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세속에 알맞은 5계(戒)가 있으니, 첫째는 임금을 섬기되 충(忠)으로써 함이요, 둘째는 보모를 섬기되 효(孝)로써 함이요, 셋째는 벗을 사귀되 신(信)으로써 함이요, 넷째는 전장에 나가서는 물러나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생물을 죽이되 가려서 함이다. 그대들은 이것을 실행함에 있어서 소홀히 하지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귀산은 “다른 것은 다 가르쳐 주신 대로 하겠습니다만, 생물을 죽이되 가려서 하라는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이르기를 “봄과 여름철 및 육재일(六齋日)에는 산 것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때를 가리는 것이요, 부리는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소·말·닭·개 등을 말하는 것이고, 세물(細物)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고기가 한 입도 안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생물을 가리는 것이다. 이외에는 비록 쓸데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만 많이 죽여서는 안되는 것이니, 이것은 가히 세속의 좋은 계율이라고 할 만하다”하였다. 귀산 등은 그것을 지켜 깨뜨리지 않았다.

註 050
신라 화랑의 한 사람. 箒項과 함께 원광법사 밑에서 世俗五戒를 배웠다. 진평왕 24년(602)에 백제와 阿莫山城에서 싸울 때 少監으로 출전해서 臨戰無退의 교훈을 받들어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었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3쪽).
註 051
본문은 ≪삼국사기≫ 권45 열전5 貴山조의 “貴山 沙梁部人也 父武殷阿干 貴山少與部人箒項爲友 二人相謂曰 我等期與士君子遊 而不先正心修身 則恐不免於招辱 盍聞道於賢者之側乎 時圓光法師 入隋遊學 還居加悉寺 爲時人所尊禮 貴山等詣門 摳衣進告曰 俗士顓蒙 無所知識 願賜一言 以爲終身之誡 法師曰 佛戒有菩薩戒 其別有十 若等爲人臣子 恐不能堪 今有世俗五戒 一曰事君以忠 二曰事親以孝 三曰交友以信 四曰臨戰無退 五曰殺生有擇 若等 行之無忽 貴山等曰 他則旣受命矣 所謂殺生有擇 獨未曉也 師曰 六齋日春夏月不殺 是擇時也 不殺使畜 謂馬牛雞犬 不殺細物 謂肉不足一臠 是擇物也 如此 唯其所用 不求多殺 此可謂世俗之善戒也 貴山等曰 自今已後 奉以周旋 不敢失墜”에 의한 듯하다. 한편 ≪삼국유사≫ 권4 義解5 圓光西學조에도 위의 ≪삼국사기≫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민족사, 1991, 199쪽).
註 052
대승보살들이 받아 지니는 계율이다(김달진 역, ≪한국의 사상대전집≫ 2, 동화출판공사, 1972, 405쪽).
주제분류
사회>사회조직>화랑도>화랑
사회>교육>교육활동>학습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