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병을 낫게 하다

해동고승전 > 卷第二 流通一之二 > 釋圓光 > 국왕의 병을 낫게 하다

국왕의 병을 낫게 하다

後國王染患醫治不□校勘 140140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천견윤태랑본, 최남선본,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은 損으로 되어 있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제50권, ≪대일본불교전서유방총서(大日本佛敎全書遊方叢書)≫제2에는 註曰空字據遺事四及續僧十三宜作損으로 되어 있다. 닫기說法. 入宮安置或講或說王誠心信奉. 初夜見首領金色如日輪, 宮人共覩. 王疾立効. 法臘旣高乘輿入內, 衣服藥石竝校勘 141141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최남선본에는 竝은 幷으로 되어 있다.
천견윤태랑본에는 竝은 並으로 되어 있다.
닫기
是王手自營用希專福, 襯施之資捨充營寺惟校勘 142142 최남선본에는惟는 唯로 되어 있다. 닫기餘衣鉢, 以此盛宣正法誘掖道俗.

校勘 140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천견윤태랑본, 최남선본,소화2년 불교사간 대동선교고 합간본에는 □은 損으로 되어 있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제50권, ≪대일본불교전서유방총서(大日本佛敎全書遊方叢書)≫제2에는 註曰空字據遺事四及續僧十三宜作損으로 되어 있다.
校勘 141
규장각본, 조선총독부 중추원 필사본, 최남선본에는 竝은 幷으로 되어 있다.
천견윤태랑본에는 竝은 並으로 되어 있다.
校勘 142
최남선본에는惟는 唯로 되어 있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사회>인구>생로병사>질병·의료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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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병을 낫게 하다

후에 국왕이 병환이 나서053053 본문은 ≪속고승전≫ 권13 釋圓光傳에 첨부된 釋圓安傳 중의 “安嘗敘光云 本國王染患 醫治不損 請光入宮 別省安置 夜別二時為說深法 受戒懺悔 王大信奉 一時初夜王見光首 金色晃然有象日輪隨身而至 王后宮女同共睹之 由是重發勝心 克留疾所 不久遂差”(大正 50, 524上~中)에 의한 듯하다. 한편 ≪삼국유사≫ 권4 義解5 圓光西學조에도 위의 ≪속고승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민족사, 1991, 200쪽).닫기 의원들이 치료해도 낫지 않으므로 스님에게 설법을 청했다. 스님을 궁중에 맞아들여 모셔 놓고 경전을 강의하게 하기도 하고 법을 설하게 하기도 하면서 왕은 성심으로 믿고 받들었다. 초저녁에 왕은 스님의 머리에 금빛이 둥근 해와 같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으며 궁인들도 모두 함께 보았다. 왕의 병환은 곧 나았다.
스님은 법랍(法臘)054054 臘은 12월에 신에게 제사하는 이름으로서 歲末을 일컫는 것인데, 비구는 세속과 달라 安居의 제도에 의하여 음력 7월 15일을 연말로 하고, 안거를 마친 횟수에 의하여 나이를 세게 된다. 坐臘·戒臘·夏臘·法歲라고도 한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3~104쪽).
僧侶가 된 뒤의 나이를 말한다(김달진 역, ≪한국의 사상대전집≫ 2, 동화출판공사, 1972, 405쪽).
닫기
이 이미 높았으므로 가마를 타고 궁중에 드나들었으며, 의복과 약석(藥石)은 모두 왕이 손수 마련하여 드렸으나055055 본문은 ≪속고승전≫ 권13 釋圓光傳의 “年齒既高乘輿入內 衣服藥食並王手自營不許佐助 用希專福 其感敬為此類也 將終之前 王親執慰 囑累遺法 兼濟民斯為說 徵祥被于海曲 以彼建福五十八年 少覺不悆 經于七日 遺誡清切 端坐終于所住皇隆寺中 春秋九十有九 即唐貞觀四年也 當終之時 寺東北虛中音樂滿空異香充院 道俗悲慶知其靈感 遂葬于郊外 國給羽儀 葬具同於王禮”(大正 50, 524上)에 의한 듯하다. 한편 ≪삼국유사≫ 권4 義解5 圓光西學조에도 위의 ≪속고승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민족사, 1991, 201쪽).닫기 오로지 스님은 왕이 친히 보시056056 齋를 지낸 뒤에 하는 설법을 法施라 하는데, 이에 대하여 貨錢이나 물건을 布施하는 것을 일컫는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4쪽).닫기한 재물을 희사하여 절을 운영하는 데 충당하였으므로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가사와 발우 뿐이었으며, 이것으로 널리 정법을 펴고 출가자와 재가자057057 出家한 사람을 道, 집에 있는 사람을 俗이라 하는데, 승려와 세속인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4쪽).닫기를 이끌어 도와주었다.

註 053
본문은 ≪속고승전≫ 권13 釋圓光傳에 첨부된 釋圓安傳 중의 “安嘗敘光云 本國王染患 醫治不損 請光入宮 別省安置 夜別二時為說深法 受戒懺悔 王大信奉 一時初夜王見光首 金色晃然有象日輪隨身而至 王后宮女同共睹之 由是重發勝心 克留疾所 不久遂差”(大正 50, 524上~中)에 의한 듯하다. 한편 ≪삼국유사≫ 권4 義解5 圓光西學조에도 위의 ≪속고승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민족사, 1991, 200쪽).
註 054
臘은 12월에 신에게 제사하는 이름으로서 歲末을 일컫는 것인데, 비구는 세속과 달라 安居의 제도에 의하여 음력 7월 15일을 연말로 하고, 안거를 마친 횟수에 의하여 나이를 세게 된다. 坐臘·戒臘·夏臘·法歲라고도 한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3~104쪽).
僧侶가 된 뒤의 나이를 말한다(김달진 역, ≪한국의 사상대전집≫ 2, 동화출판공사, 1972, 405쪽).
註 055
본문은 ≪속고승전≫ 권13 釋圓光傳의 “年齒既高乘輿入內 衣服藥食並王手自營不許佐助 用希專福 其感敬為此類也 將終之前 王親執慰 囑累遺法 兼濟民斯為說 徵祥被于海曲 以彼建福五十八年 少覺不悆 經于七日 遺誡清切 端坐終于所住皇隆寺中 春秋九十有九 即唐貞觀四年也 當終之時 寺東北虛中音樂滿空異香充院 道俗悲慶知其靈感 遂葬于郊外 國給羽儀 葬具同於王禮”(大正 50, 524上)에 의한 듯하다. 한편 ≪삼국유사≫ 권4 義解5 圓光西學조에도 위의 ≪속고승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민족사, 1991, 201쪽).
註 056
齋를 지낸 뒤에 하는 설법을 法施라 하는데, 이에 대하여 貨錢이나 물건을 布施하는 것을 일컫는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4쪽).
註 057
出家한 사람을 道, 집에 있는 사람을 俗이라 하는데, 승려와 세속인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각훈, 이병훈 역, ≪해동고승전≫, 을유문화사, 1975,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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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사회>인구>생로병사>질병·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