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두지를 우보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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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두지를 우보로 삼다 ( 25년 02월(음) )

八年, 春二月, 拜乙豆智爲右輔, 委以軍國之事.

주제분류
정치>행정>관인>인사·제도
색인어
이름 : 乙豆智

을두지를 우보로 삼다 ( 25년 02월(음) )

8년(25) 봄 2월에 을두지(乙豆智)001001 을두지(乙豆智) : 대무신왕 시기의 관인. 본문에 보이듯 이때 우보(右輔)가 되었고, 2년 뒤 좌보(左輔)에 임명되었다. 대무신왕 11년(28) 7월 후한의 요동태수(遼東太守)가 침입해오자 지구전으로 맞설 것을 주장하였으며, 계책을 마련하여 그들을 물러나게 하였다.닫기를 우보(右輔)002002 우보(右輔) :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 2년 뒤에는 좌보(左輔)가 두어졌는데, 본문에서 우보에 임명된 을두지가 이때 좌보가 되고, 빈 우보의 자리에 송옥구(松屋句)를 임명하는 것을 볼 때 좌보가 우보보다 상위 관직임을 알 수 있다. 유리명왕 22(3) 12월에 나타나는 대보(大輔)라는 관직이 좌보와 우보로 분화되어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좌·우보는 신대왕 2년(166) 정월 국상(國相)이 두어질 때까지 존속하였다. 참고로 고대 중국에서도 우보가 존재하였는데, 이는 경기(京畿) 일대를 관리하는 우내사(右內史)의 별칭이었다.
좌·우보에 대한 이해는 이 무렵 고구려의 중앙 집권화 정도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다. 왕권 행사에 제약이 있었고 부(部) 등 여타 세력 집단의 자치권이 상당하였다고 보는 경우, 연맹체적 정치 형태 속에서 족적(族的) 기반이 강한 세력자가 임명되었다는 설(盧重國, 29쪽), 왕을 보좌하는 직임으로 왕의 측근이 기용되었다는 설(노태돈, 150~151쪽), 제가회의(諸加會議)의 주재자로서 주요 정책 결정을 자문하였으며 왕실인 계루부와 다른 부의 대표자가 각기 1인씩 선임되었을 것이라는 설(김현숙, 88~90쪽), 국정 전반을 관할하였으며 계루부와 비류나부·연나부 출신 인물들이 임명되어 2나부 연합 체제를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했다는 설(임기환, 86~93쪽), 처음에는 왕을 보좌하는 일을 주로 하여 왕과 친밀한 계루부 출신 인물들이 기용되었으나, 차대왕 시기 이후 일상 실무를 총괄하는 관직으로 변모함과 함께 다른 부 출신 인물들도 선임되었다는 설(여호규, 300~308쪽), 왕권을 보좌하고 수도권의 경영과 관리를 당당하였으며, 왕권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인물들이 선택되었을 것이라는 설(조영광, 47쪽) 등이 제기되었다. 반면 초기부터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어 중앙 집권이 궤도에 올랐다고 보는 경우, 군신회의(君臣會議)의 대표자로서 당시 활발한 정복 사업으로 인해 업무가 증가되어 신설되었다고 보거나(李鍾旭, 493~494쪽), 왕권을 지지하는 기구(琴京淑, 40~45쪽) 등으로 파악하였다. 또 나부의 세력자(諸加)들이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왕권의 공간적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보기도 한다(양인호, 21~23쪽). 어떻게 보든 왕권을 보좌하는 관직으로 보는 데 큰 이견은 없다.
참고로 백제에서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좌·우보가 존재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온조왕 2년(B.C. 17) 왕의 족부(族父) 을음(乙音), 같은 왕 41년(23) 북부 해루(解婁), 다루왕 7년(34) 및 10년(37) 동부 흘우(屹于), 같은 해 북부 진회(眞會), 고이왕 9년(242) 왕의 숙부 질(質), 같은 왕 14년(247) 진충(眞忠) 등이 좌보 또는 우보로 임명되었다. 다루왕 시기 흘우가 우보였다가 3년 뒤 좌보에 임명된 것을 보면, 백제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우보보다 좌보가 상위 관직이었다.
〈참고문헌〉
盧重國, 1979, 「高句麗國相考(上)-初期의 政治體制와 關聯하여-」, 『韓國學報』 5-3, 一志社
李鍾旭, 1979, 「高句麗初期의 左・右輔와國相」,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一潮閣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琴京淑, 2004, 『高句麗 前期 政治史 硏究』,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임기환, 2004,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김현숙, 2005,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모시는사람들
여호규, 2014,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 신서원
조영광, 2016, 「高句麗 左, 右輔의 起源과 性格」, 『先史와 古代』 50
양인호, 2018, 「고구려 前期 정치제제와 執權勢力-최고관직의 변화를 중심으로-」, 『韓國史學報』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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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군무와 국정[軍國]의 일을 맡겼다.

註 001
을두지(乙豆智) : 대무신왕 시기의 관인. 본문에 보이듯 이때 우보(右輔)가 되었고, 2년 뒤 좌보(左輔)에 임명되었다. 대무신왕 11년(28) 7월 후한의 요동태수(遼東太守)가 침입해오자 지구전으로 맞설 것을 주장하였으며, 계책을 마련하여 그들을 물러나게 하였다.
註 002
우보(右輔) :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 2년 뒤에는 좌보(左輔)가 두어졌는데, 본문에서 우보에 임명된 을두지가 이때 좌보가 되고, 빈 우보의 자리에 송옥구(松屋句)를 임명하는 것을 볼 때 좌보가 우보보다 상위 관직임을 알 수 있다. 유리명왕 22(3) 12월에 나타나는 대보(大輔)라는 관직이 좌보와 우보로 분화되어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좌·우보는 신대왕 2년(166) 정월 국상(國相)이 두어질 때까지 존속하였다. 참고로 고대 중국에서도 우보가 존재하였는데, 이는 경기(京畿) 일대를 관리하는 우내사(右內史)의 별칭이었다.
좌·우보에 대한 이해는 이 무렵 고구려의 중앙 집권화 정도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다. 왕권 행사에 제약이 있었고 부(部) 등 여타 세력 집단의 자치권이 상당하였다고 보는 경우, 연맹체적 정치 형태 속에서 족적(族的) 기반이 강한 세력자가 임명되었다는 설(盧重國, 29쪽), 왕을 보좌하는 직임으로 왕의 측근이 기용되었다는 설(노태돈, 150~151쪽), 제가회의(諸加會議)의 주재자로서 주요 정책 결정을 자문하였으며 왕실인 계루부와 다른 부의 대표자가 각기 1인씩 선임되었을 것이라는 설(김현숙, 88~90쪽), 국정 전반을 관할하였으며 계루부와 비류나부·연나부 출신 인물들이 임명되어 2나부 연합 체제를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했다는 설(임기환, 86~93쪽), 처음에는 왕을 보좌하는 일을 주로 하여 왕과 친밀한 계루부 출신 인물들이 기용되었으나, 차대왕 시기 이후 일상 실무를 총괄하는 관직으로 변모함과 함께 다른 부 출신 인물들도 선임되었다는 설(여호규, 300~308쪽), 왕권을 보좌하고 수도권의 경영과 관리를 당당하였으며, 왕권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인물들이 선택되었을 것이라는 설(조영광, 47쪽) 등이 제기되었다. 반면 초기부터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어 중앙 집권이 궤도에 올랐다고 보는 경우, 군신회의(君臣會議)의 대표자로서 당시 활발한 정복 사업으로 인해 업무가 증가되어 신설되었다고 보거나(李鍾旭, 493~494쪽), 왕권을 지지하는 기구(琴京淑, 40~45쪽) 등으로 파악하였다. 또 나부의 세력자(諸加)들이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왕권의 공간적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보기도 한다(양인호, 21~23쪽). 어떻게 보든 왕권을 보좌하는 관직으로 보는 데 큰 이견은 없다.
참고로 백제에서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좌·우보가 존재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온조왕 2년(B.C. 17) 왕의 족부(族父) 을음(乙音), 같은 왕 41년(23) 북부 해루(解婁), 다루왕 7년(34) 및 10년(37) 동부 흘우(屹于), 같은 해 북부 진회(眞會), 고이왕 9년(242) 왕의 숙부 질(質), 같은 왕 14년(247) 진충(眞忠) 등이 좌보 또는 우보로 임명되었다. 다루왕 시기 흘우가 우보였다가 3년 뒤 좌보에 임명된 것을 보면, 백제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우보보다 좌보가 상위 관직이었다.
〈참고문헌〉
盧重國, 1979, 「高句麗國相考(上)-初期의 政治體制와 關聯하여-」, 『韓國學報』 5-3, 一志社
李鍾旭, 1979, 「高句麗初期의 左・右輔와國相」,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一潮閣
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琴京淑, 2004, 『高句麗 前期 政治史 硏究』,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임기환, 2004,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김현숙, 2005,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모시는사람들
여호규, 2014,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 신서원
조영광, 2016, 「高句麗 左, 右輔의 起源과 性格」, 『先史와 古代』 50
양인호, 2018, 「고구려 前期 정치제제와 執權勢力-최고관직의 변화를 중심으로-」, 『韓國史學報』 72
주제분류
정치>행정>관인>인사·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