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서자 고안승이 신라에 투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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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서자 고안승이 신라에 투항하다 ( 669년 02월(음) )

二年己巳, 二月, 王之庶子安勝, 率四千餘戸, 投新羅.

주제분류
정치>외교>인적교류>망명
색인어
이름 : 安勝

왕의 서자 고안승이 신라에 투항하다 ( 669년 02월(음) )

2년(669) 기사(己巳) 2월에 왕의 서자(庶子121121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 이하를 일컫는 말이다.닫기) 안승(安勝)122122 안승(安勝)은 安舜이라고도 쓴다(《자치통감(資治通鑑)》). 이 부분의 기사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기록을 발췌한 것이면서도 이 부분은 ‘安勝’이라고 하였다. 뒤의 《자치통감(資治通鑑)》 咸亨 원년조 기사에서는 다시 ‘安舜’이라고 하였다. 본문과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01, 《신당서》 권220 고구려전 등에서는 安舜(勝)이 보장왕의 外孫이라고 하였는데, 이와 달리 淵淨土의 아들이라고 한 곳(《삼국사기》 권6 문무왕 10년 6월조)도 있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에 투항하여 신라 문무왕 14년(674)에는 報德國王으로 봉해졌으며, 다시 신문왕 3년(683)에는 慶州로 옮겨 살게 하였고 이때 蘇判의 관등을 주고 金姓을 하사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이 4천여 호를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하였다.

註 121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 이하를 일컫는 말이다.
註 122
안승(安勝)은 安舜이라고도 쓴다(《자치통감(資治通鑑)》). 이 부분의 기사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기록을 발췌한 것이면서도 이 부분은 ‘安勝’이라고 하였다. 뒤의 《자치통감(資治通鑑)》 咸亨 원년조 기사에서는 다시 ‘安舜’이라고 하였다. 본문과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01, 《신당서》 권220 고구려전 등에서는 安舜(勝)이 보장왕의 外孫이라고 하였는데, 이와 달리 淵淨土의 아들이라고 한 곳(《삼국사기》 권6 문무왕 10년 6월조)도 있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에 투항하여 신라 문무왕 14년(674)에는 報德國王으로 봉해졌으며, 다시 신문왕 3년(683)에는 慶州로 옮겨 살게 하였고 이때 蘇判의 관등을 주고 金姓을 하사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제분류
정치>외교>인적교류>망명
색인어
이름 : 안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