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승만, 민족통전,38선,신탁문제 등에 관해 기자회견  
연월일1945년 10월 22일  
출전자유신문 1945년 10월 23일  
이승만, 민족통전,38선,신탁문제 등에 관해 기자회견
李承晩은 22日 오후 1시 반부터 재경신문기자단과 정식으로 조선호텔에서 회견을 하였다.
아직도 안정되지 못하여 시간도 없으며 따라서 준비가 없음으로 그 점은 미리 양해해 달라고 전제한 후 기자단의 질문에 대답하였는데(略) 그 대답의 요지는
◊ 통일촉진을 위해서 정당의견 종합
(問) 귀환하신 후 민족단일전선에 대한 것도 많이 들으셨을 터인데 그 통합의 구체안은 여하합니까?
(答) 나는 1904년 즉 40년전 일·노전쟁 당시 고향을 떠났다가 6年만인 1910年 10月에 1차 귀국했었고 다시 1912年 4月에 다시 미주로 갔던 관계로 국내의 제 형편과 정황을 잘 알지 못하고 있으나 각 정당과 언론관계 제씨 그리고 각 지방 인사들로부터 합동통일의 기운을 보여 주었고 나 자신도 이 점을 다행히 알고 있으며 만일 내가 지도자로 나서게 된다면 여러분의 협조와 원조를 힘 입어 조국의 건국대업을 위해서 나설 자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부의 책임자로나 혹은 높은 지위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전부터 누언한 바이어니와 다만 여러분과 합작해서 조직적인 행동을 해야만 연합 각국이 조선에 대한 신뢰를 가질 것이요 우리의 실력을 인정할 것이다. 그 간 해외에서 들을 때 일본인의 간악한 선전이 조선은 자치해 나갈만한 자주적 실력이 없다는 것과 일본의 손으로부터 떠나면 무정부상태가 되고 또한 동양의 평화를 파괴한다고 악선전을 해 왔다.
더욱이 1942年 진주만사건이 있자 곧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미국이 원조를 안할 것은 소련관계와 일본의 악선전 또 불령한 한인들의 모략의 관계로 조선에 새로운 정부를 줄 수 없다는 인상을 받은 까닭이다. 그러나 다행히 대통령이 그러한 사실을 부인했으며 국무총리도 조선의 실정을 잘 양해하였고 태평양방면 최고지휘관 맥아더장군도 조선인의 분열 자주실력이 없다는 것은 허위선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조선에 있는 지휘관 하지중장과 아놀드군정장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각 정당이 상호 협력하여 합동통일하면 훌륭히 자주독립할 수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군측에서는 우리의 실력을 잘 알고 있음으로 우리 자신들이 시급히 한 덩어리가 되어 과장적인 정당의 큰 슬로건보다도 규모가 적더라도 단심 합력하여 그 실력을 여실이 인정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타국은 절대로 우리 국토에 대하여 야심을 갖지 않으며 특히 미국과 그 국민 역시 그러한 야심을 갖지 않았으리라. 만일 미국의 국무총리이라든지 대통령이 이러한 야심을 가졌다면 미국 백성들은 이를 인정치 않으리라.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만 완전한 민주주의적인 합동통일된 독립국가로서 태평양방면의 평화를 위하여 지혜롭게 재질있게 자치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합동하는 것 이것만을 나는 원할 뿐이다.
우리는 말할 시대가 아니라는 것과 먼저 실행하고 책임을 이행해야 할 시대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자주독립의 길이 속히 열리리라는 것을 거듭 말하고 싶다. 내일(23日) 이 석상에서 각 정당대표들과 회동할 터인데 그들의 제안을 들어 종합적으로 이를 검토한 후 구체적인 방책을 강구해 낼 작정이다.
◊ 38도 문제와 미국민의 여론
(問) 북위 38도 문제는 이것이 또한 정치적 문제이다. 따라서 국제적 성질을 떠날 수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 나는 미주에 있을 때에 모스크바에서 전한 소식을 들으면 나는 반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지칭을 받았으나 나 자신은 소련에 대하여 하등의 감정이 없다.
얼마전 워싱턴에 있는 소련대사에게 경성주재소련영사의 보고에 의하면 조선을 소련통치하에 두리라고 할듯 한데 귀하의 의견을 들려 달라고 한 일이 있다. 소련과 조선과는 1896年 통상협정을 한 일이 있어 실제적 우의가 좋았고 또 1895年 명성황후께서 일인에게 모해를 당하였을 때 고종께서 俄館으로 옮겨 계신 일이라던지 한인이 일인의 압정을 피하여 시베리아로 유랑의 길을 떠난 사람에게 대해서 후히 지도보호해준 사실과 교통외교가 전부터 특수하다는 것을 나는 주미소대사에게 역설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상에 비추어 국제적 우의도 좋으나 우리 나라의 생명 주권도 이 국제적 우의보다 선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나는 또한 주장하고 싶다.
이 38도 문제의 진상을 그에게도 물었으나 급기야에 반분이 분할점령을 당하고 말았음으로 특히 미국인이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므로 피차의 해결점을 발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키는 미대통령 트루만 역시 이 분할점령에 대하여 동의치 않았을 것이며 외무총장도 찬성치 않았으리라. 그러나 연합군측의 하나가 미국이오 소련임에 공식으로 이번 종전을 위하여 협력한 까닭에 이 사실은 공평치 않게 생각을 하더라도 연합군과 분립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全 미국의 국민이 여론을 환기한다면 미국무성 책임자들은 이 해결방침을 소련에 제의하리라. 그러므로 미·소 양국은 물론하고 우리 나라의 자주독립을 방해하면 우리는 이와 싸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問) 8月 15日 이후 우리들의 해외정책이 환국하지 않은 것은 국제적 협정이 있는 까닭인가? 또 38도 이북에서는 모든 권리가 인민의 수중으로 들어 갔는데 38도 이남은 그렇치 않으니 여하합니까?
(答) 북위 38도 이북에 대한 비난과 여러 가지 사실을 다루고 있음으로 종합적인 해답도 들어 갈 것이나 여하간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남북의 우리 강토를 회복해야 함으로 북방에서 어떠한 복리를 그 곳 주민에게 주든 혹은 남방 미군이 어떠한 복리를 주든 이러한 분할적 복리로서 만족한 것이 아니므로 爲先 강토환원의 장애는 제거해야 할 것이다.
(問) 트루만미대통령의 극동정책 중 조선의 자주독립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신탁통치를 한다고 전해진 것 같은데 사실일까?
(答) 전연 알수 없으나 桑港에 있을 때부터 이러한 신탁통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영토는 그렇게는 안될 것이다. 신탁통치라는 것은 자주독립의 실력이 없을 때에 있을 수 있음으로 우리는 이러한 것을 들을수록 시급히 우리의 실력을 갖추고 우리의 자주독립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問) 해외에서의 한국임시정부 인정문제는 여하합니까. 임시정부의 법적 승인은 없다.
(答) 한국임시정부에 대해서는 미주에 있는 親友會 즉 조선에 계시던 오월에비슨박사와 미주대학총장이신 풀다그라스氏가 회장을 보시며 또 한국인들끼리 韓國親友會를 조직하고 있음으로 이러한 기관을 통하여 어느 정도 시인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金九氏께서 극력 애를 써서 蔣介石氏도 이를 시인하시며 특히 한인들이 재정을 갹출하고 세납을 바치므로 운영되어 가고 있으며 광복군에 대해서는 중국서 각별한 보조가 있어 왔다. 이렇듯 사실적 시인을 받고 있으나 법적으로 제 외국과의 관계가 확인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프랑스에서는 드골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중경의 프랑스대사에게 훈령을 발하여 이를 인정한 일도 있다.
(問) 인민공화국의 주석취임 간청에 호의를 보였다는데?
(答) 들으니까 주석으로 추천되었다고도 하니 전연 알지 못하는 일이며 취임하겠다고 호의를 표한 일도 없다.

자유신문 1945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