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승만, 인공주석 수락거부 성명 발표  
연월일1945년 11월 07일  
출전자유신문 1945년 11월 08일  
이승만, 인공주석 수락거부 성명 발표
7일 오전 8시반 중앙방송국을 통하여 행한 李承晩의 其 방송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비상한 기회에 당면하였다. 한편 좋기도 하고 한편 까닥 잘못하면 위험도 한 기회다.
3천만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3천리 강토를 회복하여야 하겠다. 그렇지 못하면 어떤 구렁텅이로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귀국하는 길에 동경을 들려보니 橫濱은 쑥밭이다. 우리 손으로 우리 원수를 잡지 못한 것이 한이나 일인의 소행을 생각하면 아직도 시원치 않다. 우리나라가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도 국권을 회복치 못한 것은 전혀 일본의 악선전에 의하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구속해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해 놓고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다스렸다고 선전을 하였다.
이 악선전은 국제신탁론까지 나오게 되었다. 40년동안 남의 노예가 된 것도 우리가 원한 바가 아닌데 이제 다시 여러 상전을 모시게 되면 큰 일이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자주독립의 국가를 만들어야 하겠다. 각정당이 한 단체를 이루어 자치의 능력이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만든 것이 獨立促成中央協議會고 이미 여기서 결정된 결의문까지 냈다. 이 협동에 있어서 모든 정당은 공산당까지도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한 데 뭉치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고국에 돌아와 보니 인민공화국이 조직되어 있고 나를 주석으로 선정하였다 하니 나를 이만치 생각해준 것은 감사하나 나는 그것을 정식으로나 비공식으로나 수락치 않았다. 나는 중경임시정부의 한 사람이다. 임시정부가 들어와서 정식타협이 있기 전에는 아무런 데도 관계할 수가 없다. 군정청에서는 인민공화정당은 허락하되 공화국정부는 허락하지 않는다. 중앙협의회는 정부가 아니며 정부의 대표도 아니며 임시정부가 승인을 받고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국권회복을 위하여 각정당이 대동단결하여 한 데 뭉친 단체다. 이와 같이하여 나가면 국권회복도 곧 될 것이다.
金九씨 이하 임시정부 각요인이 상해에 도착되었다는 전보를 받았다. 며칠 안에 그들이 귀국하게 되면 전국민이 대환영으로 맞을 줄 안다.”

자유신문 1945년 11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