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제목(31) 兪吉濬의 음모에 관한 건  
문서번호機密送第37號  
발신일1902년 5월 13일 ( 1902년 05월 13일 )  
발신자 外務大臣 男爵 小村壽太郞  
수신자 在韓 特命全權公使 林權助  
(31) 兪吉濬의 음모에 관한 건
機密送第37號
兪吉濬 음모사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왕래한 전보의 뜻에 따라 이곳에서도 엄밀한 단속을 하였고, 또 警視廳에서 그를 소환 訊問한 결과 처음에는 은폐하다가 마침내 자백하였습니다. 그 조서는 別紙 사본과 같사오니 자세한 것은 미루어 알아주시기 바라며, 다만 연판장이라는 것은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는 한국에 송부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금일까지 정탐한 결과에 의하면 다른 일본인과 한국 망명자 중에는 이 음모에 가담한 형적이 없었습니다. 또 유길준은 小笠原島에 송치하기로 내정하고 있습니다만 다음 달 상순까지는 배편이 없으므로 당분간 비밀로 해두시기를 바라며 이 점 말씀드립니다. 敬具.
1902년 5월 13일
外務大臣 男爵 小村壽太郞
在韓 特命全權公使 林權助 殿

[別紙 1]
문서제목[兪吉濬 訊問調書 寫本]  
[兪吉濬 訊問調書 寫本]
1902년 5월 2일(오전 8시 35분~오전 9시)
한국 망명자 兪吉濬 46세
警視官房 主事 管井誠美 問, 兪吉濬 答
처음에 서로 명함을 교환함

귀하는 한국에서의 신분은 무엇인가.

별로 말할 정도의 신분은 아니고 오늘은 망명자이다.

현재 주소는

本鄕區 團子坂에 지난달 29일인가 30일경부터 기숙하고 있다.

일본에 머문 세월은

7년에 이르렀다. 그간 한번도 귀국한 일이 없고 처음에는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왔었는데 그 후 2,3인은 귀국하였다.

평생 교제하던 사람은

친구로는 다수 있다. 모두가 간절한 뜻을 가진 자들로서 일일이 성명을 말할 수도 없고 또 여가도 없으니

동거인은 누구인가.

李斗璜과 동거 중이며 그는 나보다 조금 앞서 일본에 온 자로서 이전부터 친구이고 그리고 그는 망명자가 아니다.

요사이 일본인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자는 누구인가.

다수이지만 별로 친하고 친하지 않은 구별도 없다. 일일이 말할 수 없다.

귀하께서는 요사이 본국의 일에 대하여 무엇인가 기획하고 있는 일은 없는가

신문지상에서 보고 인정하겠지만 다시는 관계한 일이 없을 것이다. 獨立協會에도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본국에 대해서 귀하의 의도하는 바가 없는지.

그래, 평생 본국의 이익을 꾀해 보려는 의견은 지니고 있다.

현재 무엇인가 착수 중에 있는 일이 없는가.

가령 착수 중에 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지금은 비밀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언명할 수 없다.

小官이 묻는 것은 보통사람과 다르다. 귀하가 구술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사정에 따라 귀하 등을 보호하게 될 것이므로 그렇게 이해하기 바란다.

나는 평소 본국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착수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그리고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는 한에서는 이것을 언명하지 않을 것이며, 귀관이 무엇인가 얻어들은 것이 있으면 그 점에 대해서는 심문하면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귀하는 본국에 대하여 무엇인가 일을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연판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가.

별로 그런 것은 없다. 가령 있다고 하여도 그 실물을 제시하지 않은 이상은 이야기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귀하들은 과거 본국을 위하여 일을 기도하다가 성사되지 못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정부에서는 후의로 지금까지 망명자를 보호하지 않아도 됨에도 이를 묵인하는 것은 귀하가 아는 바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연판장이라는 것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을 심문하여도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실물을 보게 되면 말하지만 없는 이상은 말 할 수 없다.

만일 연판장이 발견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령 연판장이 있다고 해도 결코 일본의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것으로 믿는다.

가령 일본 법률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본 경찰에서 이것을 탐지하여 심문하는 이상은 상세하게 대답하여 주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말 할 수 없다.

귀하들에게 후의를 표한 일본정부가 귀하들이 기도하는 일의 일부분을 알고서 심문하는 이상은 憂國者로 자처하는 귀하는 이것을 감추지 말 것을 바란다.

내가 기획하는 일에서는 귀국 사람과 관계가 없고 전적으로 나 한 사람 뿐이다. 가령 기획하는 바가 있다 해도 그것을 귀국인과 공모하여 운동한 일이 없다.

상담한 일이 있는가.

2, 3인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 한 사람이 한 일이므로 그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뜻을 말했다.

그 사항은 무엇인가.

본국을 위하여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미루어 살펴주기를 바란다.

연판장은 귀하가 소지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어떠한가.

갖고 있지 않다.

동지에게 연판장을 제시하거나 또는 교부한 일은 없는가.

본국에 송부하여 지금 이 땅에는 없다.

위의 사본이나 또는 부본, 備置分 같은 것은 없는가.

없다.

귀하의 주의와 획책은 어떤 것인가.

나의 주의는
    1. 왕실에 忠義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을 하는데도 어디까지나 폐하를 받들고 개혁을 할 것
    2. 왕위승계는 皇室典範에 규정된 바이므로 人臣으로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것이 아님
    3. 과거의 讐敵을 잊고서 장래의 협동을 꾀할 것
    4. 정부조직은 일본에 있는 망명자와 본국에 있는 동지와 함께 조직할 것. 단 이 개혁에 참여하는 자는 3년 동안 내각에 입각하지 말 것
    5. 이 약속은 비밀에 붙여 타인에게 누설하지 말 것
이와 같은 의견을 본국에 보낸 것은 금년 1월말인가 2월말인가로 기억하고 있다.

본국에서 회답하여 왔는지.

확답이 없었다. 본국에서 온 자가 있었으므로 그와 공모하였다.

위 기획모의에는 일본인들도 참여하였는가.

일본인은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나 한 사람이 인수할 예정이므로 타인이 있다 하여도 이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또 동지가 있다 해도 모두 본국에 있고 일본에는 머물고 있지 않다.

귀하는 하물을 가지고 있는가.

가방 1개와 보따리 1개뿐이다.

또 잘 생각하기 바란다. 이상에서 말한 것 외에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되는 점은 후에 이야기하기 바란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는지. 나는 결코 도주를 계획하고 있는 자가 아니다. 물론 일신을 걸고서 기획하였기 때문이다. 본인의 동생은 본국에서 체포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는 전에 일본에 있다가 망명한 이래 자신의 가사도 곤란해졌기 때문에 그가 귀국할 때 나는 어디까지나 국가를 위하여 신명을 다하고자 하기 때문에 동생은 가사를 돌보라고 약속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일에도 관계하지 않고 귀국 후 4년째인데도 한 번 정도 글로 연락이 있었다. 또 李斗璜과는 이야기 한 일이 없다. 이 일은 나 혼자하기로 결심한 것이므로 결코 상담한 일이 없다.

[別紙 2]
문서제목兪吉濬 진술의 요점(5월 2일 오후 2시 30분~5월 2일 오후 3시 40분)  
兪吉濬 진술의 요점(5월 2일 오후 2시 30분~5월 2일 오후 3시 40분)
목적 및 기획
나는 본국에서도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불이익이 되므로 이것을 개혁하는 데는 미리 폐하의 간신들을 소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폐하의 간신들은 항상 聖明을 흐리게 하여 왕실을 인민들의 怨府로 만들어서 왕실의 威德을 손상시켰다. 우리들은 결코 왕명에 대해서는 음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왕실을 받들고 충성을 다한다는 정신뿐이다. 그리고 폐하의 간신을 제거하는데 대해서 본국에서도 동지가 있어서 지난번에 시급하게 거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뜻을 본국에서 통지하여 왔지만, 나로서는 일본 정부의 동의를 도저히 얻기 어렵고 일본국민을 일시 고용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인 것도 아니므로 100명 정도를 고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적이 있다.
또 거사하는데 첫째 비용이 소요되는데 그 비용이 부족하므로 정부의 백동화를 위조하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하여 오는 자가 있었지만, 나는 이 일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말하였다. 그 이유는 화폐를 위조하는 것은 국법에 허용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국가를 위함에 정의로운 행동에서 행해야 하는데 도리어 국법을 어길 경우 후일 성사한 때에도 그 죄를 면할 수 없으며, 국가를 위해서 신명을 걸어 놓은 이상 각각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포기해야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국법을 위반해야 할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화폐를 위조하여 비용을 충당하려는 계책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진술하였다.
계획이 실패한 전말
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백동화 위조에 반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본국에 있는 동지 중에 현재 仁川監理인 河相驥와 함께 백동화를 위조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이들은 나의 의견과 달리 위조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나의 일이 성취될 때에는 도리어 불이익의 결과를 볼 것을 염려하여 우리들의 기획을 하상기에게 비밀리에 말하였다. 비밀리에 말한 요체는 우리들은 외국의 공사관, 영사관에 방화하여 그 형세를 틈타 궁중으로 난입하여 국왕을 시해하고 측근의 신하들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말이었다. 이때 하상기는 이 일을 왕에게 密奏하여 성사하지 못한 원인이 된 것이다.
우리들은 금일 본국이 쇠퇴해 가는 것은 결단코 국왕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측근에 있는 간신 2, 3명의 행실에 있는 것이니 이들 2, 3명을 제거하면 다른 곳에는 다시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즉 李容翊, 姜錫鎬가 가장 으뜸가는 간신으로 생각된다.
일본인 深川 某를 본국에 使者로 파견한 일이 있지만 某는 약간의 의협심에서 출발한 사람이므로 만일 죄가 있다고 하면 그 죄는 내가 받아야 할 것이며, 그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別紙 3]
문서제목[兪吉濬의 무혐의 주장 請願書]  
[兪吉濬의 무혐의 주장 請願書]
사실은 이 몸이 금년 음력 4월 3일 警部에 체포되었다가 5월 13일 겨우 석방되었으나 그간 40일 동안 해를 보지 못하고 물샐틈없이 차단당해 원통함을 풀어버릴 방도가 없어 슬프고 박절한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몸이 무죄인데도 가두어 둔 사정과 警務使 및 訊問課長의 관계관들이 法을 왜곡한 안건을 재판하고자하므로 전후의 사실을 조목조목 진술하며, 이에 청원하오니 살펴보신 후에 警務使 李容翊과 訊問課長 安桓을 함께 대질 재판하여 법을 공명정대하게 적용하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1. 작년 음력 11월 15일경에 나는 仁川에 있었는데, 일본인 深川淳一이 와서 말하기를, 吉濬의 서찰이 있으니 내일이나 그 후일 사이에 가지고 오겠다고 하므로 내 생각으로는 반드시 먼 자손이 있을 것이니 감히 사사로이 받을 수 없다고 여겨져서 즉시 관에 고하니 좋은 일로 보인다고 하면서 곧 上奏한다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과연 가져온 서찰을 펴보니 나에게 말하기를, “어찌 되었기에 건너오지 않고 고초에 시달리고 있는가. 지금 황인종이 백인종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으니 이때에 개혁하기 위하여 동지들도 많고 자금 수십만 원을 마련하였으나 부족금이 약 30만元 가량이다. 深川淳一을 대표로 보내니 상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서찰을 본 후에 深川에게 되돌려 주면서 사양의 뜻으로 말하기를 “말의 뜻을 알았으니 도로 가져가라.” 하였더니, 진담으로 듣고 즉시 찢기에 부득이 불에 태워 버리라하고 관에 고하여 轉奏하게 하였더니 잘 유인하여 정탐하라는 처분을 받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深川淳一과 마음을 통하는 교제를 하여 자연히 이야기를 숨기는 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吉濬으로부터 말이 전해오기를 한 번 상면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長崎나 中津으로 함께 건너오라고 하였다 말하므로, 대답하기를 말은 좋으나 면직 전에는 건너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의 유인을 뒤로 미루고 河相驥에게 알려 奏達하기를 신임하시는 사람을 조처하시면 대신 보내겠다고 하였더니 徐相奎를 명하여 보내셨습니다. 深川을 권유하여 건너보낼 때 저들 千章郁과 3명이 동반하여 어느 곳으로 가서 吉濬과 荒井德一과 만나서 謀逆黨案과 이를 시행하는 예산서를 받고 천장욱은 길준과 東京으로 함께 가려하다가 뒤쫓아 되돌아 왔습니다. 서상규와 深川淳一이 나에게 전해 준 길준의 서찰과 逆徒䅁과 謀行事約條 및 豫算記를 보니 예산조로 20만元을 나에게 마련하라 하였기에, 深川에게 책망하기를 과거 20만元 준비금은 어디에 쓰고 지금 나에게 전담시키는 것은 무슨 의도냐고 하였습니다. 피차가 다년간의 경영이 이와 같으므로 深川이 말하기를 지난날 20만元을 송금하려던 上遠野栗이 北海道에서 오다가 병이 들어 아직 아무 준비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서적을 모두 불태우겠다고 하여 그 곡절을 물은 즉, 길준의 단속이 이와 같으므로 이들 서신을 이 대문 안에서 서상규에게 주면서 당신에게 보여주노라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 동지 몇 사람에게 보인 후에 불태우자고 하여 다행히 그 서찰이 남은 것입니다. 다음 날 서상규, 하상기 두 사람에게 보내 살피게 한 후 어떤 것도 빼앗기지 말라는 처분을 받들어 끝까지 보존하였으나 그간 곤란을 당한 것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 豫算記 중에 병원을 설립하고 총포점을 설립하여 양국의 동지가 회의할 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할 수 있도록 총포점을 일을 거행하는데 사용하라고 하였는데, 병원을 추가로 설립하자고 하고 우선 한 坐市를 개설하고 회동하는 장소를 마련하고, 총포점은 官許를 얻은 후에 하자고 하고, 銅峴 길가에 開市할 內下錢으로 먼저 착수하였습니다. 深川이 나에게 동지들을 상면하자고 재촉하면서 上遠野栗과 荒井德一이 머지않아 여기에 도착하게 되면 상면할 것이라 하기에, 이것을 奏達하였더니 洪正燮, 柳東根 두 사람을 처분하셨습니다. 그 후에 深川과 상종하였더니 3월 10일경에 荒井德一이 과연 도착하여 저의 집에서 서상규, 류동근, 홍정섭과 저들 荒井德一, 深川淳一, 守永新三, 遠藤眞吉, 천장욱 등이 회동하였습니다. 들으니 北海道 捕魚를 관장하는 郡司忠成이라는 자가 같은 마음이 되어 捕魚事를 한 후에 올 것이라 하였으며, 며칠이 되지 않아 柳東根이 누설하였기 때문에 그 즉시 고발하였던 것이니, 이 몸은 처음부터 거행한 증거가 있으며
    2. 이른바 백동화 私鑄에 관련되는 일은 이 역시 자의로 행한 것이 아니고 작년 12월초에 천장욱이 江景浦에서 올라왔다고 하기에 가서 보니, 千哥 외에 또 한 명의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深川이 아는 사람이라 하면서 이들 모두가 우리들의 동지라 하기에 통성명하니 일본인은 守永新三였습니다. 매일 상종하였는데 서상규가 강을 건너기 위해 들렀을 때 深川이 말하기를 守永新三이 자기 집에서 鑄錢하는데 기계가 작아 이익이 미미하고 지금 우리들의 경비는 허다하므로 자본 3천元만 가지면 기계도 받고 이것을 바다 위에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역시 동지들과 상의하여 회답하겠다고 하고 하상기로 하여금 奏達하게 하였던 바 그 말에 따라 어떤 돈이든 선급하라는 처분을 받들라고 하였고 나에게 먼저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宋貨 2,130元과 식품 등을 구입하고 선박까지 차입하여 준비하여 넘겨주면서 差人 張仁順을 월급으로 붙여주고, 장인순과 뱃사공을 단속하면서 그 자가 주전한 숫자를 상세하게 살피고 혹 외국인이 남몰래 주전하는 것도 정탐하라고 하였고, 守永이 모르게 仁川 警務署가 발행한 문서를 받아 장인순에게 비밀리에 주었습니다. 2, 3차 주전한 돈을 물자로 무역하기 위하여 왕래하였으나 나는 한 푼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장인순의 보고서를 보았는데, 2월 중에 守永新三이 돌아와서 그들의 영사가 엄히 금지시키고 있으니 기계공을 다른 배에 옮겨 타게 하여 洪州 등지로 이송하라고 하였으며, 이미 주전한 것은 처음 것과 두 번째 것은 모두 물건으로 매입하였고, 이번에 주전한 6,290元 정도를 그의 兄으로 하여금 長淵에 보내서 무역해 오라고 했습니다. 소위 회계한 숫자만큼 거래하였는데 잠시 살펴보니 즉, 다른 사람에게 지급한 보수 항목이 3백여元이고 기계 放賣 전에는 이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곡물을 무역해온 것이 도착한 후에 이것을 힐문할 예정이었는데, 일이 누설되어서 長淵으로 전보하여 發船을 정지시켰습니다. 그 후 守永 등 3명이 長淵으로 내려갔다는 말을 듣고는 監理署에 말하여 공문을 받아 4명에게 위임하면서 단속하기를, 일본인들이 發船하려고 하면 사공을 붙잡아서 배가 떠나지 못하게 하라 하고 뒤따라갔더니 일본인들이 과연 회합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내가 私鑄하였다 하면서 엄히 물어볼 때에, 이것은 자의가 아니라고 하니 증거를 제시하라 하면서 칼을 뽑아들면서 위협하므로 부득이 啓字 문서가 있다는 말을 하여 나의 집에 사람을 보내서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또 長淵 땅에 내려간 사람과 그곳 主人의 성명을 묻기에 하나하나 알려주고 다시 자청하기를, 만일 여러 사람들을 불러올 것이면 내가 먼저 글로 진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의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쓰고 여러 사람의 진술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하였더니 과연 여러 사람들이 진술한 것과 틀린 것이 없으므로 다시는 訊問하지 않았습니다. 장인순을 잡아오는지 여부를 모르고 있었는데, 5월초에 이들과 함께 갇혀 수일 후에 장인순을 나와 상면하도록 허락하기에 비로소 물었습니다. 長淵에서 守永에게 곤란을 받고 있던 중 갑자기 京城 순검 5명, 海州 순검 18명, 長淵 순교 9명, 도합 32명에게 붙들릴 때 밧줄로 묶이고 구타당하여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전후사실을 말하고 공문까지 내어보여도 일체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숨이라도 보존하고자, 해주 순검에게 趙俊和의 어음으로 돈 1백72元을 주고 경성 순검에게 京換으로 3백元을 주고 그 외의 숙박비 등은 계산하지 못한 채 주인에게 담보하고 왔으며, 供招 후 다른 일은 부합한다 하고 守永의 기계가 있는 곳을 말하라 하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형만 당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순검을 보내어 그 곡물을 麻浦에 부려놓았다고 하고, 守永이 주전한 액수가 첫 번째가 2천여元으로 白銅과 極印 등을 사들였고, 두 번째 주전한 것 역시 6천여元으로 또 白銅과 極印 등을 사들였으며, 세 번째 6천여元을 주전한 후에는 정지하였는데, 먼저 주전한 것은 모두 물자를 매입하였고 나머지 6천여元은 앞서 준비한 돈과 선박의 임대료, 월급 등을 계산한 후에 부족하지 않은지 살펴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 차례 주전한 돈이 1만 5천여元인데 곡물매입에 들어간 6천여元은 제외하고 그 나머지 9천여元을 守永에게 전달하든지 徐相潗에게 전달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해주 순검에게 장연주인 趙準和 어음을 써서 준 돈 172元을 조준화에게 억지로 받아 송금하고, 경성 순검에게 지급한 300元도 역시 벌써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역시 관리들의 계산이 불분명하여 이와 같으니 내가 당연히 대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석방될 때 과연 이 9천元을 말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이것은 상세하게 찾아보지 못한 것으로서 商路의 속담이 ‘松都 먹이 든 자가 差人에게 本錢 5푼을 주어 첫 번에 1푼의 이자이므로 6푼이 되고 두 번에 7푼이 되고 세 번에 8푼이 되고 연초를 매입한 本錢이 1錢 5푼인데 7푼이 간 곳을 묻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나왔습니다. 대저 먼저 주전한 것은 이미 賣物에 들어갔으니 남아있는 것만 보아야 할 것이고 내가 진술한 것과 장인순이 진술한 것이 부합되고 문서까지 참고하였으니, 나로 하여금 守永가 私鑄한 돈을 사용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사리를 따지지 않고 돈을 억지로 내놓으라고 하는 일에 해당되는 일일 것이며
    3. 내가 처음부터 실행한 행적은 啓字 문서의 글에서 ‘臣이 逆黨의 일을 정탐하는 일로 逆黨의 徒䅁錄에 들어가고 私鑄錢에 관계하는 것은 모두 다 勅敎를 받들어 거행하는 일로서 다음 문서에 의거하여 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辛丑 12월 일’이라 하였는데 警務廳에서 거두어 간 것이며
    4. 4월 2일 仁川에서 일본인이 李容翊과 유유상종하며, 逆徒士官들을 구출할 계획이라고 하므로, 혹 일본 公· 領事와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이용익과 연결된 것을 정탐하기 위해 하상기와 더불어 상경하다가 마침 일본 영사가 이용익의 집 쪽으로 향하여 가는 것을 보고 하상기에게 권하여 갔습니다. 과연 조용히 말하는 것을 목격하고 되돌아왔다고 하였는데 저희 두 사람의 생각에는 반드시 흉계가 있을 것이라 하였더니, 다음 날에 내가 京城에서 불려간 뒤에도 일본 總巡과 비밀스러운 말이 있었던지 갑자기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공갈시위하고는 嚴囚되었습니다. 경무사가 獄事를 일으키고 일본 영사를 私室로 인도하여 총순을 관청에서 私談하였으며, 하물며 이번 옥사가 일본인이 많이 관련된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 같이 되었으니 확실하게 조사하여 적발할 것이며
    5. 지금 출옥하여 듣건대 일본공사의 말이 서상집만 붙잡아 가둘 것이 아니라 하상기도 붙잡아 가두라고 奏達하였고 하상기에게도 말하였다고 하였으니, 어찌 일본공사가 옥사에 대해 발언하며, 또 이 일본인들과 공모한 것인데 이때에 그들과 상종하겠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며
    6. 저들 逆徒들이 모의하던 문서를 살펴보면 황송하고 흉패한 말이 끝이 없으며 차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두말할 것도 없이 일시에 처분해야 하는데도 상세하게 살펴보는 것을 간과한 듯하니 그 정상을 조사할 일이며
    7. 逆徒 金永淑은 訊問課 근방에 두어 다른 사람의 심문 진술을 듣게 하고 내가 그 사이에서 嚴囚당하고 있었다 하오니 그들의 奸計를 조사할 일이며
    8. 守永新三이 私鑄하던 기계를 찾아왔는데 장인환이 기계가 있는 곳을 모른다고 발명한 것이 드러났으니 석방해야 할 것이며, 長淵에서 가져온 곡물을 내주며, 이 일의 유무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할 것이며
    9. 長淵에서 붙잡아 온 조준화에게 해주 순검이 어음 72元을 강제로 받고 석방하였으니 순검에게 討索錢을 환수하여 본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을 것이며, 사리 밖의 재물을 받았으니 이 조치는 法을 구부린 것이며
    10. 내가 받아 가지고 있는 啓字 문서를 가져가고도 줄곧 私鑄罪人이라 하며 長淵에서 체포할 때의 공문에 ‘私鑄罪人 서상집에 同謀者 某某 등’이라 하면서 내외국인들이 알도록 조장하였는데, 이것은 啓字 문서에 적힌 일이 광고되도록 하는 음모이며, 설령 啓字 문서를 내려 보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私鑄하여 능히 체포할 수 있을 경우면 행할 터인데, 하물며 이번 일이야 大火를 滅하고 도당을 체포할 뿐더러 당당하게 啓字가 찍힌 문서가 있으니 무슨 범법행위가 있어서 이와 같이 날조한 것인지 기어이 해치고자 하는 간교한 뜻을 조사해야 할 것이며
    11. 나를 문초할 때 安桓의 말에 忠則盡命이라 하였으니 이 같은 관리는 命을 위하여 忠을 하지 않을 자이므로 그 忠則盡命이란 말이 어떻게 해서 한 말인지 살펴볼 일이며
    12. 대체로 적당들의 흉악한 계책에 심지어는 폭약을 매장하여 행행할 때 터뜨리며 閔泳翊 氏의 서신으로 폭약 상자를 至尊에게 올리려는 말이 있었으므로 개국 이래로 이 같은 일들은 없었는바 이 일로 인하여 上意를 받들어 거행하고 흉변을 예방하려고 하였는데, 제가 도리어 경계를 받는 처지가 되어 이같이 날조하면 지금부터 비록 이러한 흉악한 일이 있다고 해도 어찌 이것을 고발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이 몸을 옥에서 내보내고도 부족하여 동생을 또 옥에 가두었으니 이 일을 뒤집어야 할 터인즉, 아무런 심사와 판결이 없기를 엎드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