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兵有弓箭刀矟. 俗重騎射, 兼愛墳史, 而秀異者頗解屬文,072072 頗解屬文 『周書』百濟傳에도 ‘其秀異者 頗解屬文’이라는 同一한 내용의 記事가 보인다.
<참조>
『周書』百濟傳 註 30)
頗解屬文
武寧王陵에서 出土된 買地券 銘文을 分析한 任昌渟은 文章이 極히 簡潔하고 健嚴한 漢文으로, 漢晋 以來의 中國文章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 廣開土王碑에서와 같은 俗氣나 新羅古金石과 같은 吏讀式 文體가 전혀 없어 百濟의 學問程度를 考究하는데 貴重한 資料가 된다고 하고, 本文의 ‘其秀異者 頗解屬文’은 『周書』의 筆者가 外國이라 하여 얕잡아보고 評한 것이라고 하였다.(「買地券銘文」p.64) 本文의 前後 기록과 관련하여 『宋書』 百濟傳에 ‘(元嘉) 二十二年 毗上書…求易林式占’이라한 기사가 보인다. 李丙燾는 經史·文學으로부터 陰陽五行·曆法·醫藥·卜筮·占相에 이르기까지 각 專門技術者가 있고, 또한 高句麗와 같이 文武兼重의 風이 있었음을 이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다. (「百濟學術 및 技術의 日本傳播」p.581)
이 밖에 百濟人에 의해 기록되어 지금가지 傳해져 내려오는 百濟文學資料를 分析하여 그 대부분이 駢儷文이었음을 밝힌 論文이 있다. (趙重業, 「百濟時代 漢文學의 경향에 대하여-特히 그 駢儷體를 中心으로-」)
≪參考文獻≫
『宋書』卷97「夷蠻列傳」百濟國條.
任昌淳, 「買地券銘文」『武寧王陵』1974.
李丙燾, 「百濟學術 및 技術의 日本傳播」『韓國古代史硏究』1976.
趙重業, 「百濟時代 漢文學의 경향에 대하여-特히 그 駢儷體를 中心으로-」『百濟硏究』6, 1975.
닫기
能吏事. 又知醫藥·蓍龜, 與相術·陰陽五行法. 有僧尼, 多寺塔, 而無道士. 有鼓角·箜篌·箏竽·箎笛之樂, 投壺·校勘 107107 『周書』·『隋書』「百濟傳」에는 ‘樗’으로 되어 있다.닫기蒲·弄珠·握槊等雜戲. 尤尙奕棊. 行宋 元嘉校勘 108108 「汲古閣本」에는 ‘歷’으로 잘못되어 있다.닫기, 以建寅月爲歲首. 賦稅以布·絹·絲·麻及米等, 量歲豐儉, 差等輸之. 其刑罰, 反叛·退軍及殺人者, 斬, 盜者, 流, 其贓兩倍徵之, 婦犯姦, 沒入夫家爲婢.

校勘 107
『周書』·『隋書』「百濟傳」에는 ‘樗’으로 되어 있다.
校勘 108
「汲古閣本」에는 ‘歷’으로 잘못되어 있다.
註 072
頗解屬文 : 『周書』百濟傳에도 ‘其秀異者 頗解屬文’이라는 同一한 내용의 記事가 보인다.
<참조>
『周書』百濟傳 註 30)
頗解屬文
武寧王陵에서 出土된 買地券 銘文을 分析한 任昌渟은 文章이 極히 簡潔하고 健嚴한 漢文으로, 漢晋 以來의 中國文章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 廣開土王碑에서와 같은 俗氣나 新羅古金石과 같은 吏讀式 文體가 전혀 없어 百濟의 學問程度를 考究하는데 貴重한 資料가 된다고 하고, 本文의 ‘其秀異者 頗解屬文’은 『周書』의 筆者가 外國이라 하여 얕잡아보고 評한 것이라고 하였다.(「買地券銘文」p.64) 本文의 前後 기록과 관련하여 『宋書』 百濟傳에 ‘(元嘉) 二十二年 毗上書…求易林式占’이라한 기사가 보인다. 李丙燾는 經史·文學으로부터 陰陽五行·曆法·醫藥·卜筮·占相에 이르기까지 각 專門技術者가 있고, 또한 高句麗와 같이 文武兼重의 風이 있었음을 이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다. (「百濟學術 및 技術의 日本傳播」p.581)
이 밖에 百濟人에 의해 기록되어 지금가지 傳해져 내려오는 百濟文學資料를 分析하여 그 대부분이 駢儷文이었음을 밝힌 論文이 있다. (趙重業, 「百濟時代 漢文學의 경향에 대하여-特히 그 駢儷體를 中心으로-」)
≪參考文獻≫
『宋書』卷97「夷蠻列傳」百濟國條.
任昌淳, 「買地券銘文」『武寧王陵』1974.
李丙燾, 「百濟學術 및 技術의 日本傳播」『韓國古代史硏究』1976.
趙重業, 「百濟時代 漢文學의 경향에 대하여-特히 그 駢儷體를 中心으로-」『百濟硏究』6,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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