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人皆皮冠, 使人加揷鳥羽.061061 使人加揷鳥羽 이 구절의 使와 상응하는 내용이『周書』에서는 ‘其有官品者’로 되어 있으며,『北史』에서는 ‘士’로 되어 있다.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北史』卷94「列傳」高句麗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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貴者冠062062 冠 이에 상응하는 冠名이『周書』에서는 ‘骨蘇’로,『北史』에서는 ‘蘇骨’로되어 있다.
<참조>
『北史』高句麗傳 註 28)
蘇骨
『周書』高句麗傳에는 ‘骨蘇’로 되어 있다. 『北史』에서 전하는 貴人의 冠이라는 ‘蘇骨’을『三國志』및『梁書』高句麗傳에서 전하는 ‘折風’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兩者를 구분하여 蘇骨을『三國志』의 ‘幘而無後’한 冠冒로 보는 견해도 있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李龍範, 「高句麗人의 鳥羽揷冠에 대하여」『東國史學』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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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紫羅, 飾以金銀. 服大袖衫, 大口袴, 素皮帶校勘 010010 『周書』「高句麗傳」에는 ‘白韋帶’로 되어 있다.닫기, 黃革校勘 011011 「南本」및『周書』「高句麗傳」에는 ‘履’로 되어 있다.닫기. 婦人裙襦加襈.063063 人皆皮冠 …… 婦人裙襦加襈 이 기사는 다소 축약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周書』高句麗傳의 것과 同類이다.
<참조>
『周書』高句麗傳 註 34)
丈夫衣同袖衫 …… 裾袖皆爲襈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 『隋書』·『舊唐書』·『新唐書』高句麗傳을 참고할 수 있다.
≪參考文獻≫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條.
『舊唐書』卷199上「東夷列傳」高句麗條.
『新唐書』卷220「東夷列傳」高句麗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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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器與中國略同.064064 兵器與中國略同 『周書』高句麗傳에는 구체적인 兵器名이 나온다. 그리고 本傳 開皇 17년의 文帝의 璽書에 高句麗가 隋의 太府의 工人을 兵器修理의 목적으로 빼내갔다 함을 보면 양국의 武器體制나 수준이 거의 비슷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참조>
『周書』高句麗傳 註 36)
兵器有甲弩弓箭戟矟矛鋋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 『隋書』高句麗傳의 경우 兵器는 中國과 대략 같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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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春秋校獵, 王親臨之.065065 每春秋校獵 王親臨之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三國史記』「溫達列傳」3월 3일의 樂浪丘의 田獵에 관한 기사가 참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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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稅布五匹, 穀五石. 遊人066066 遊人 遊人의 의미는 분명치 않다. 다만 失業한 極貧者 또는 下級官人 신분층으로 보는 高麗期의 閑人과 같은 형태로 유추한 예가 있다(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p.191; 井上秀雄 他 譯注, 『東アジア民族史』p.171).
≪參考文獻≫
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1933, 改造社.
井上秀雄 他 譯注,『東アジア民族史』1,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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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三年一稅, 十人共細布一匹. 租戶一石, 次七斗,067067 人稅布五匹 …… 下五斗 高句麗의 賦稅기록은 이미『周書』高句麗傳에 보이나 이 기사가 좀더 상세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身庸·田租·戶調 등으로 구성된 감을 준다. 일반적으로 人頭稅의 성격이 강하다고 이해되고 있으며, 均等稅制의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혹종의 口分田制가 시행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白南雲, 『朝鮮社會經濟史』pp.171~172).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白南雲,『朝蘚社會經濟史』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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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五斗. 反逆者縛之於柱, 爇而斬之, 籍沒其家. 盜則償十倍校勘 012012 『周書』에는 ‘十餘倍’로, 『舊唐書』에는 ‘十二倍’로 되어 있다.닫기068068 十倍 『周書』高句麗傳에서는 ‘十餘倍’로 되어 있으며,『舊唐書』高句麗傳의 그에 상응되는 내용에서는 ‘十二倍’로 되어 있다.
<참조>
『舊唐書』高句麗傳 註 32)
盜物者 十二倍酬贓
『周書』高句麗傳에는 ‘十餘倍’로,『隋書』·『北史』·『新唐書』의 高句麗傳에는 모두 ‘十倍’로 되어 있는 바 여기의 12배 배상은 ‘十倍’의 오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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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用刑旣峻, 罕有犯者.069069 反逆者 …… 罕有犯者 이 기사는 다소 축약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周書』高句麗傳의 것과 同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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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有五絃·琴·箏·篳篥·橫吹·簫·鼓之屬, 吹蘆以和曲.070070 樂有五絃 …… 吹蘆以和曲 『隋書 』「音樂志」에서는 高句麗의 樂器가 총 14種이 있었음을 전한다.
≪參考文獻≫
『隋書』卷15「音樂志」第10下.
李惠求,「三國文化의 發展-音樂舞踊-」『韓國史』2,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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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年初, 聚戲於浿水之上, 王乘腰輿, 列羽儀以觀之. 事畢, 王以衣服入水, 分左右爲二部, 以水石相濺擲, 諠呼馳逐, 再三而止.071071 每年初 …… 再三而止 이에 관하여는 豊年을 기원하는 행사로 물의 呪術的인 효과를 높이는 목적이 있다는 이해가 있다(井上秀雄 他 譯註, 『東アジア民族史』p.172).
≪參考文獻≫
井上秀雄 他 譯注,『東アジア民族史』1,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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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好蹲踞, 潔淨自喜, 以趨走爲敬, 拜則曳一脚, 立各反拱, 行必搖手.072072 俗好蹲踞 …… 行必搖手 이 기사는『魏書』高句麗傳의 내용과 同類이나 좀 더 상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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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多詭伏. 父子校勘 013013 『周書』「高句麗傳」에는 ‘乃至’로 되어 있다.닫기同川而浴, 共室而寢. 婦人淫奔, 俗多遊女.073073 性多詭伏 …… 俗多遊女 이 기사와『周書』高句麗傳의 내용과 同類이나 다소 축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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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婚嫁者, 取男女相悅, 然卽爲之, 男家送猪酒而已, 無財校勘 014014 「汲古閣本」에는 ‘娉’으로 되어 있다.닫기之禮. 或有受財者, 人共恥之. 死者殯於屋內, 經三年, 擇吉日而葬.074074 死者殯於屋內 經三年 擇吉日而葬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 혹종의 二次葬 習俗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金廷鶴,「廣開土王碑文에 나타난 朝日關係」pp.11~13).
<참조>
『新唐書』高句麗傳 註 36)
服父母喪三年 兄弟踰月除(喪禮)
喪制에 있어서도『三國志』와『周書』이후의 기록 사이에 변화가 보이는데『三國志』高句麗傳에는 ‘男女已嫁娶 便稍作送終之衣 厚葬 金銀財幣 盡於送死 積石爲封 列種松柏’이라 하였으나, 『隋書』高句麗傳에는
死者殯於屋內 經三年 擇吉日而葬 居父母及夫之喪 服皆三年 兄弟三月 初終哭泣 葬則鼓儛作樂以送之 埋訖 悉取死者生時服玩車馬置於墓側 會葬者爭取而法
라 하였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條.
≪參考文獻≫
李杜鉉,『草墳』1973.
金廷鶴,「廣開土王碑文에 나타난 朝日關係」『日本學』1,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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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父母及夫之喪, 服皆三年, 兄弟三月. 初終哭泣, 葬則鼓儛作樂以送之. 埋訖, 悉取死者生時服玩車馬置於墓側, 會葬者爭取而去.075075 有婚嫁者 …… 會葬者爭取而去 이 기사는 기본적으로『周書』高句麗傳의 것과 同類이나 보다 상세하다.
<참조>
『新唐書』高句麗傳 註 35)
婚娶不用幣 有受者恥之
婚禮의 풍습은『三國志』의 기록과『周書』이후의 기록이 크게 달라져 일정한 社會 변화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三國志』高句麗傳에는
其俗作婚姻 言語已定 女家作小屋於大屋後 名壻屋 壻暮至女家戶外 自名跪拜 乞得就女宿 如是者再三 女父母乃聽使就小屋中宿 傍頓錢帛 至生子已長大 乃將婦歸家
라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周書』高句麗傳에서는 ‘婚娶之禮 畧無財弊 若受財者 謂之賣婢 俗甚恥之’라 하였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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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鬼神, 多淫校勘 015015 『周書』「高句麗傳」에는 ‘祀’로 되어 있다.닫기.076076 敬鬼神 多淫祠 이 기사는 歷代 中國正史 高句麗傳의 同類 기사 중 가장 소략하며, 他書의 경우는 諸神의 내용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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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勘 010
『周書』「高句麗傳」에는 ‘白韋帶’로 되어 있다.
校勘 011
「南本」및『周書』「高句麗傳」에는 ‘履’로 되어 있다.
校勘 012
『周書』에는 ‘十餘倍’로, 『舊唐書』에는 ‘十二倍’로 되어 있다.
校勘 013
『周書』「高句麗傳」에는 ‘乃至’로 되어 있다.
校勘 014
「汲古閣本」에는 ‘娉’으로 되어 있다.
校勘 015
『周書』「高句麗傳」에는 ‘祀’로 되어 있다.
註 061
使人加揷鳥羽 : 이 구절의 使와 상응하는 내용이『周書』에서는 ‘其有官品者’로 되어 있으며,『北史』에서는 ‘士’로 되어 있다.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北史』卷94「列傳」高句麗條.
註 062
冠 : 이에 상응하는 冠名이『周書』에서는 ‘骨蘇’로,『北史』에서는 ‘蘇骨’로되어 있다.
<참조>
『北史』高句麗傳 註 28)
蘇骨
『周書』高句麗傳에는 ‘骨蘇’로 되어 있다. 『北史』에서 전하는 貴人의 冠이라는 ‘蘇骨’을『三國志』및『梁書』高句麗傳에서 전하는 ‘折風’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兩者를 구분하여 蘇骨을『三國志』의 ‘幘而無後’한 冠冒로 보는 견해도 있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梁書』卷54「東夷列傳」高句驪條.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李龍範, 「高句麗人의 鳥羽揷冠에 대하여」『東國史學』4, 1956.
註 063
人皆皮冠 …… 婦人裙襦加襈 : 이 기사는 다소 축약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周書』高句麗傳의 것과 同類이다.
<참조>
『周書』高句麗傳 註 34)
丈夫衣同袖衫 …… 裾袖皆爲襈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 『隋書』·『舊唐書』·『新唐書』高句麗傳을 참고할 수 있다.
≪參考文獻≫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條.
『舊唐書』卷199上「東夷列傳」高句麗條.
『新唐書』卷220「東夷列傳」高句麗條.
註 064
兵器與中國略同 : 『周書』高句麗傳에는 구체적인 兵器名이 나온다. 그리고 本傳 開皇 17년의 文帝의 璽書에 高句麗가 隋의 太府의 工人을 兵器修理의 목적으로 빼내갔다 함을 보면 양국의 武器體制나 수준이 거의 비슷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참조>
『周書』高句麗傳 註 36)
兵器有甲弩弓箭戟矟矛鋋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 『隋書』高句麗傳의 경우 兵器는 中國과 대략 같다고 하고 있다.
註 065
每春秋校獵 王親臨之 :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三國史記』「溫達列傳」3월 3일의 樂浪丘의 田獵에 관한 기사가 참조된다.
註 066
遊人 : 遊人의 의미는 분명치 않다. 다만 失業한 極貧者 또는 下級官人 신분층으로 보는 高麗期의 閑人과 같은 형태로 유추한 예가 있다(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p.191; 井上秀雄 他 譯注, 『東アジア民族史』p.171).
≪參考文獻≫
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1933, 改造社.
井上秀雄 他 譯注,『東アジア民族史』1, 1974.
註 067
人稅布五匹 …… 下五斗 : 高句麗의 賦稅기록은 이미『周書』高句麗傳에 보이나 이 기사가 좀더 상세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身庸·田租·戶調 등으로 구성된 감을 준다. 일반적으로 人頭稅의 성격이 강하다고 이해되고 있으며, 均等稅制의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혹종의 口分田制가 시행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白南雲, 『朝鮮社會經濟史』pp.171~172).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白南雲,『朝蘚社會經濟史』1933.
註 068
十倍 : 『周書』高句麗傳에서는 ‘十餘倍’로 되어 있으며,『舊唐書』高句麗傳의 그에 상응되는 내용에서는 ‘十二倍’로 되어 있다.
<참조>
『舊唐書』高句麗傳 註 32)
盜物者 十二倍酬贓
『周書』高句麗傳에는 ‘十餘倍’로,『隋書』·『北史』·『新唐書』의 高句麗傳에는 모두 ‘十倍’로 되어 있는 바 여기의 12배 배상은 ‘十倍’의 오류인 듯 하다.
註 069
反逆者 …… 罕有犯者 : 이 기사는 다소 축약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周書』高句麗傳의 것과 同類이다.
註 070
樂有五絃 …… 吹蘆以和曲 : 『隋書 』「音樂志」에서는 高句麗의 樂器가 총 14種이 있었음을 전한다.
≪參考文獻≫
『隋書』卷15「音樂志」第10下.
李惠求,「三國文化의 發展-音樂舞踊-」『韓國史』2, 1978.
註 071
每年初 …… 再三而止 : 이에 관하여는 豊年을 기원하는 행사로 물의 呪術的인 효과를 높이는 목적이 있다는 이해가 있다(井上秀雄 他 譯註, 『東アジア民族史』p.172).
≪參考文獻≫
井上秀雄 他 譯注,『東アジア民族史』1, 1974.
註 072
俗好蹲踞 …… 行必搖手 : 이 기사는『魏書』高句麗傳의 내용과 同類이나 좀 더 상세하다.
註 073
性多詭伏 …… 俗多遊女 : 이 기사와『周書』高句麗傳의 내용과 同類이나 다소 축약되었다.
註 074
死者殯於屋內 經三年 擇吉日而葬 : 이 기사와 관련하여서는 혹종의 二次葬 習俗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金廷鶴,「廣開土王碑文에 나타난 朝日關係」pp.11~13).
<참조>
『新唐書』高句麗傳 註 36)
服父母喪三年 兄弟踰月除(喪禮)
喪制에 있어서도『三國志』와『周書』이후의 기록 사이에 변화가 보이는데『三國志』高句麗傳에는 ‘男女已嫁娶 便稍作送終之衣 厚葬 金銀財幣 盡於送死 積石爲封 列種松柏’이라 하였으나, 『隋書』高句麗傳에는
死者殯於屋內 經三年 擇吉日而葬 居父母及夫之喪 服皆三年 兄弟三月 初終哭泣 葬則鼓儛作樂以送之 埋訖 悉取死者生時服玩車馬置於墓側 會葬者爭取而法
라 하였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條.
≪參考文獻≫
李杜鉉,『草墳』1973.
金廷鶴,「廣開土王碑文에 나타난 朝日關係」『日本學』1, 1981.
註 075
有婚嫁者 …… 會葬者爭取而去 : 이 기사는 기본적으로『周書』高句麗傳의 것과 同類이나 보다 상세하다.
<참조>
『新唐書』高句麗傳 註 35)
婚娶不用幣 有受者恥之
婚禮의 풍습은『三國志』의 기록과『周書』이후의 기록이 크게 달라져 일정한 社會 변화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三國志』高句麗傳에는
其俗作婚姻 言語已定 女家作小屋於大屋後 名壻屋 壻暮至女家戶外 自名跪拜 乞得就女宿 如是者再三 女父母乃聽使就小屋中宿 傍頓錢帛 至生子已長大 乃將婦歸家
라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周書』高句麗傳에서는 ‘婚娶之禮 畧無財弊 若受財者 謂之賣婢 俗甚恥之’라 하였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東夷傳」高句麗條.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註 076
敬鬼神 多淫祠 : 이 기사는 歷代 中國正史 高句麗傳의 同類 기사 중 가장 소략하며, 他書의 경우는 諸神의 내용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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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정책>조세·공역>조세
정치>법률>형법>형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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