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공이 마한에 사신으로 다녀오다 ( 기원전 20년 02월 )

三十八年, 春二月, 遣瓠公聘於馬韓. 馬韓王讓瓠公曰, “·二韓, 爲我屬囯, 比年不輸職𧴨, 事大之禮, 其若是乎.” 對曰, “我國自二聖肇興, 人事修, 天時和, 倉𢈔充實, 人民敬讓.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人, 無不畏懷. 而吾王謙虛, 遣下臣修聘, 可謂過於禮矣. 而大王赫怒, 劫之以兵, 是何意耶.” 王憤欲殺之, 左右諌止, 乃許歸. 前此, 中國之人, 苦亂, 東來者衆. 多處馬韓東, 與辰韓雜居. 至是寖校勘 006006 정덕본에는 寖으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寢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 寖이 옳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寖을 따랐다.닫기盛, 故馬韓忌之, 有責焉. 瓠公者, 未詳其族姓. 夲人, 初以瓠繋腰, 度海而來, 故稱瓠公.

校勘 006
정덕본에는 寖으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寢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 寖이 옳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寖을 따랐다.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
정치>외교>사신>사절활동
정치>외교>인적교류>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