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신문조서(제2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피의자 김창영
右 반민법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4282년[1949] 4월 19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忠淸北道調査部 서기 김상철[金相喆]을 입회시키고 前回에 계속하여 피의자의 신문함이 如左함.


前回에 진술한 中 허위는 없는가.


없습니다.


다음 치안공작을 말하라.


본인은 滿洲國 내의 조선인에 대한 지도 撫育사무를 담당할 뿐 外라 前述한 바와 如히 여소재[呂紹財] 귀순공작에 성공한 연유로 治安部 차장 박전미조[薄田美朝](전 일본 경시총감)의 특명을 받아 만주국 국책에 의한(사법부, 치안부, 關東軍 협정) 김일성[金日成](양정우[楊靖宇] 부하 제8사단장) 귀순공작에 착수하였습니다.


귀순공작의 계획 내용을 대략 말하라.


吉林省 敦化縣진한장[陳翰章](양정우 부하 제5사단장)의 귀순공작 실패의 전례에 鑑하여 김일성 귀순공작은 특히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有하다고 생각하고, 前 양정우 부하 제1사단장 최주봉[崔冑峯](旣 귀순자)과 김일성의 상관이던 前 중대장 이종락[李宗洛](귀순 후 사망), 김일성 親友(在 平壤) 박차석[朴且石] 3인과 협의한 후 第一着으로 通化省 撫松縣, 濛江縣 등의 현지에 출장하여 前記 이종락, 박차석으로 하여금 김일성 부대의 잠복하였을 듯한 산간 촌락 일원을 순회하며 該 2인의 서신과 사진 등을 살포하여 김일성과의 연락을 취하였던바, 약 2개월 후에 濛江縣 頭道花園이라는 촌락에 거주하는 滿人 농부를 이용하여 김일성 부대로부터 返信이 왔었습니다.


전술한 김일성이라는 자는 현재 어디 있는가.


현재 평양에 있는 김일성으로 인정합니다.


박차석 등이 순회 살포하였던 서신과 사진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면회를 요청하는 서신과 이종락, 박차석 등의 實貌를 증명하는 2인 合撮한 사진(4절판)이었습니다.


어느 때 何處에서 누구와 회견하였는가.


敵政 소화 15년[1940] 1월 중순 김일성으로부터 회신이 있은 수일 후 이종락 지시에 의하여 前記 滿人 농부의 안내로 김일성의 지시 장소인 頭道花園 남방 약 5리 지점 산중을 향하여 박차석이 단신으로 들어가 김일성 이하 2개 중대 약 120명과 1박하며 직접 김일성과 회담을 시켰습니다.


박차석김일성의 회담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박차석으로부터 三江省 귀순공작의 4대 조건을 설명한 外 혁명 대상은 초목이 아니라 인간이니 하산하라는 의미와 귀순 후 특별한 조처로 외국 유학을 알선한다는 등의 조건을 들어 귀순을 역설하였던바, 김일성으로부터 귀순의 의사를 표시하며 2대 조건을 요구하여 왔었습니다.


2대 조건은 무엇이었던가.


제1은 귀순공작의 책임자인 김창영(피의자)을 間島省 혹은 通化省의 省長으로 임명하여 귀순 후 장구히 一同의 신변을 보장할 것과 제2는 同省 내 적당한 지역을 택하여 귀농생활을 하되 일반 행정에 대하여는 만주국법에 전반적으로 순응하나 치안과 경비에 대하여서만은 정부에서 간섭치 말고 귀순부대에 일임하여 줄 것 등이었습니다.


上記 2대 조건에 대하여 조처 如何.


본인은 산중으로부터 돌아온 박차석이종락 등에게 2대 조건의 부당성을 말하고 무조건 귀순 후 매사를 타협적으로 진행할 것을 지시한 후, 前記 이종락으로 하여금 김일성을 再회견케 하고 귀순공작을 계속키 위하여 前記 산중으로 입산시켰습니다.


산중에 잠복한 김일성 부대의 내용은 如何.


파견원 박차석의 보고에 의하면 산중에는 천막 4개에 分하여 120명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조선인 약 40명, 滿人 약 80명의 2개 중대였고, 제7단장은 滿人 손장상[孫長祥]이며, 제8단장은 조선인 최현[崔賢]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종락 입산 후 결과 如何.


김일성 부하 중대장급으로 있다가 長白縣에서 귀순한 滿人 이자평[李子平]의 말에 의하면 이종락 입산 翌日 마침 軍長 양정우가 약 400명 부하를 인솔하고 該 산중에 來到하여 이종락을 납치하고 김일성에게 대하여는 귀순공작원(前記 박차석, 이종락)과의 연락한 것을 大怒 문책하고, 즉시 김일성 부대의 全軍을 장백현으로 이동을 命하였다고 합니다.


其後에 공작은 如何.


前記 이자평의 진술에 의하여 공작이 不順함을 깨달은 外에 당시 관동군대서[大西] 대좌가 1개 대대를 인솔하고, 김일성 토벌의 특명을 받아 장백현에 來着하였기에 同 공작은 전부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귀순공작은 그 후에 어느 때에 다시 시작하였던가.


본인은 관계한 일이 없고, 各省 各縣 단위로는 귀순공작을 계속한 지방도 있어서 순회 위문한 일이 있습니다.
右 본인에게 讀聞시킨바 相違가 無하다 하고 서명 拇印함.
공술자 김창영
단기 4282년[1949] 4월 19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신정호[申政浩]
입회인 서기 김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