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경기도경찰부, 송진우암살범들의 취조결과 발표  
연월일1946년 04월 09일  
출전서울신문, 동아일보 1946년 04월 24일  
경기도경찰부, 송진우암살범들의 취조결과 발표
◊ 第 1管區 (京畿道)警察廳 發表
송진우 암살피의자 韓賢宇에 대하여 그 배후와 사상 관계를 엄밀히 취조한 결과 한은 1941년 12월에 동경 早大 정경과를 졸업하고 1943년 5월경 동경에서 국수주의자 일인 中野正剛과 그의 동지 穗積五一을 숭배하고 이와 5년간 직접 간접으로 교양을 받고 穗積의 지지로 재일조선인 유학생 5천 명으로 朝鮮獨立聯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지하운동을 한 자인데 당시 일본경비청의 탄압이 심하므로 穗積의 지도로 한은 日本國體硏究所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본황실중심주의를 표방하다가 1944년 3월에 비밀이 탄로되어 인심교란죄로 징역 10개월 4년 집행유예를 받고 1945년 2월 25일경 강원도 春川 한의 처가집에서 수양하다가 작년 8월 17일 상경하여 시내 종로 2정목 마포 노량진 신당정 등으로 전전하던 중 12월 30일 미명 송진우를 암살한 주범자이다.
한은 동경시대로부터 철저한 민족주의자인데 해방직후 상경하여 각방면의 정세와 동향을 정시한즉 자주독립촉성을 표방하는 정당이 속출하여 자유해방이다 하기만 하고 통일이 안됨을 보고 재동경시대의 동무인 李龍鳳의 소개로 8월 하순에 현재 시내 신당정 333의 6 경남 梁山 출신 全柏(42)을 방문하고 의견을 교환한 다음 11월 초순경에 이 두사람은 이론투쟁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하여 정치적 야심가, 부로카 등을 암살 숙청할 계획을 세우고 무기를 얻는 한편 심복 부하를 물색하여 呂運亨, 朴憲永, 宋鎭禹씨 등을 매국적 행동자로 규정하고 이상 제씨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 첫째로 신탁문제가 일어나 격분하고 있을 즈음 12월 29일 하오 5시경 부하를 소집하고 명일 미명에 먼저 송진우를 암살할 것을 부하들에게 발표한 다음 劉根培가 30일 상오 6시 10분경 송진우를 권총으로 암살하였다.
그리고 한은 전백의 명령을 받고 1월 3일경 西北 지방으로 반탁을 선전하러 갔다가 1월 17일 서울에 돌아왔는데 그후로 여운형과 박헌영의 거소를 찾고 있었다. 주범들은 공산주의자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

서울신문, 동아일보 1946년 0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