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에 대한 공소판결에서 全栢과의 관련 추궁  
연월일1947년 01월 31일  
출전동아일보 1947년 02월 05일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에 대한 공소판결에서 全栢과의 관련 추궁
한국민주당 당수 古下 宋鎭禹를 암살한 韓賢宇외 4명에 대한 공소공판은 31일 대법원 법정에서 열리었는데 이날 심리 진행도중 주범 한현우에게 돌연 새로운 질문이 재판장으로부터 추궁되어 극히 미묘하고 모호한 문답이 재판장과 입회검찰관 또 피고 한현우 사이에 계속된 사실이 있었다.
즉 한현우가 송씨 암살 직전 직후에 그 범행을 상의하고 또 범행결과를 보고하는 등 한현우에겐 유일무이한 혁명선배라고 하는 문제의 全栢과의 관계를 술회하여 그의 知人인 시내 李某에게 보낸 별항과 같은 한현우의 옥중서한이었다.
심경의 일단을 피력한 한현우의 서한이 그후 李의 손을 거쳐 검찰관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드디어 이날 공판정에 한낱 새로운 사실로 나타나 재판관과 입회검찰관의 신경을 더한층 예민케 한 것인데 李相基재판장이 이 편지의 피봉을 떼기 전에 먼저 피고 韓과 문답한 것은
(裁) 피고는 전백을 처음에는 우익으로 알았으나 지금은 좌익으로 아는게 아닌가?
(被)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裁) 宋을 죽이라고 주장한 것은 全이라고 했다지?
(被) 그런 사실 없습니다.
(裁) 그런 의미의 편지를 모처에 보낸 사실이 있지 않은가?
(被) 없오.
이때 입회검찰관 李炳瑢으로부터 韓이 李某에게 보낸 편지를 내어놓으며 이것이 피고의 필적이 아닌가하고 물음에 대하여 韓은 그 편지를 받아본 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부인하였다. 韓의 편지에 나타난 필적 부인으로 이 문제는 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이날은 이것으로서 일단 그쳤으나 편지 내용의 핵심인 ‘본래 宋은 全이 극력 주장한 것이고 小生(韓)은 呂·朴을 주장한 바이다’라는 서한 내용에 비추어 과연 宋氏의 암살은 韓의 주장이 아니고 全의 주장이었고 교사였던가? 그러나 韓 자신이 그 필적을 부인하는 데 있어 검찰당국은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하는 것으로 세인의 주목을 집중하고 있다.
問題의 書翰의 一節
(略) 全栢이와 小生의 관계는 미묘한 것이올시다. 李西鳳君이 소개할 때 민족주의자인 줄 알고 또 임정지지자로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악수한 것이올시다. 그랬더니 세간의 여론은 全을 좌익이라 하니 대단히 딱합니다. 만약 全이 左라 하면 이 사건의 책임은 全에 있습니다. 본래 宋은 全이 극력 주장한 것이고 小生은 呂·朴을 주장한 바 결국 宋·呂·朴을 처단케 결정한 것이 올시다. 이 점도 하량하옵소서. 小生이 민족주의자라는 것은 선생님이 잘 아시는 바 올시다. 小生의 心意와 정치의도를 잘 이해해 주실 줄 압니다. (略)
1월 11일
韓賢宇 伏白
이야기는 재작년 12월 29일 宋鎭禹 살해 당시로 돌아가 그때 암살범 韓賢宇를 살인교사하였다는 全栢이와 한현우 관계는 아직도 세인의 의혹을 자아내고 있는데 31일 서울 대법원에서 열린 동 사건 공소공판정에서 진술한 韓의 全栢論은 宋 등 정치요인 암살을 계획하고 이를 교사 격려하는 등 실로 전율할 암흑의 일장면이 저물어 가는 해방의 이 땅에 전개된 것을 새로이 기억할 수 있다.
이날 공판정에서 교환된 범죄사실 심리 중 특히 한현우와 전백과의 관계에 대한 문답 몇가지를 초하기로 한다.
(裁) 송진우를 죽이기 전날 피고는 전백을 찾아가서 무슨 말을 했는가?
(韓) 송씨를 먼저 죽이겠다고 했더니 전씨 말이 신중히 생각해서 처치하라고 했소.
(裁) 송씨를 죽인 그 이튿날 전씨가 전화로 불러서 무엇이라고 하던가?
(韓) 내가 송씨를 죽였다고 했더니 참 용감하였다고 하였소.
별항과 같이 韓賢宇사건 공판정에서 문제된 옥중서한을 韓이 부인하는 데 대하여 동 담당검찰관 이병용은 동 사건에 있어 미묘한 관련성을 가진 옥중서한의 진위를 밝히려고 3일 한현우가 1심에서 기록한 옥중수기의 필적과 李某에 보낸 서한의 필적을 대조한 결과 그 필적이 틀림없는 韓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또 동일 오전11시 韓의 서한을 받았다는 이모를 소환하여 증인심문을 한 결과 12월 21일에 발신한 韓의 서한을 韓의 제자 申某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을 李某로부터 진술하였다 하며, 또한 李某는 동 서한을 받아보고 그후 몇차례나 서대문형무소에 韓을 찾아보고 서한의 내용과 그의 심경을 타진하였던 바 韓은 다음 공판이 열리면 사실대로 새로 진술하겠오하고 그의 심경의 변화를 솔직하게 고백하였다는데 동 31일 급기야 공판이 개정되어 사실심리가 시작되고 보니 韓은 1심의 진술대로 진술하여 이모에게 언약한 것을 깨뜨리고 말았다는 것을 이모가 취조검찰관에게 일일이 증언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李검찰관과 李某는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李炳瑢檢察官 談:피고가 옥중에서 이모에게 보낸 서한을 피고는 공판정에서 그 필적을 부인하였으나 그후 그 필적과 피고의 재판 기록에 넣은 옥중수기의 필적을 몇번이나 대조해 본 결과 추호도 다름이 없음을 인정하였다.
◊ 李某 談:12월 13일에 한현우의 제자 申某가 韓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전달하였다. 편지의 내용이 의외에 사건과 다른 점을 알게 된 나는 그후 세 번이나 형무소에 韓을 찾아 그 심경을 들었더니 나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하고 31일 공판 때는 全栢이와의 관계를 새로이 진술하겠다고 말했는데 그후 공판정에서의 韓은 전혀 태도나 언사가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그 심리는 나도 알 수 없다.

동아일보 1947년 02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