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호국 10용사의 합동위령제 거행  
연월일1949년 11월 22일  
출전대중일보 1949년 11월 23일  
호국 10용사의 합동위령제 거행
이북 공비들의 매국매족적인 무자비한 만행으로 소위 7·8·9월 공세라는 명목 아래 내습하는 것을 제1선에서 용감무쌍하게 섬멸 격퇴하다가 불행히 호국의 신으로 散華된 제○○연대 柳寅千이등중사 외의 10용사의 합동위령제는 어제 공설운동장에서 엄숙히 집행되었다.
이날 제○○연대 제3차 전몰장병 합동위령제에 참석코자 멀리 지방으로부터 유가족대표들을 비롯하여 중앙에서 제○사단장 劉昇烈대령·서울병사구사령관 吳光鮮대령·전 제1사단장 金錫源씨 등이 來仁하였고, 시내에서 육군장병 다수와 경찰관, 각 남녀중학교 생도·한청원·기타 일반사회단체 등 각계인사가 운집한 가운데 상오 10시 정각 金道榮 제○○연대 부연대장 사회로 식은 애도리에 진행되었다. 먼저 국기배례를 비롯한 국민의례가 끝난 다음 韓婦와 博文女中에서 영전에 생화봉정이 있었고, 法僧들의 영령에게 명복을 비는 독경이 있은 후, 김도영 부연대장의 전투경과보고로 7월 17일부터 9월 20일까지 사이에 옹진·개성 등지에 월남 내습한 공비들을 과감하게 물리치다가 애석하게도 흉탄에 쓰러진 11용사들의 생생한 실전 보고가 있었다. 이어 喪主제문낭독으로 들어가 全盛鎬 제○○연대장으로부터 호국의 꽃으로 사라진 부하들을 추억하며 눈물어린 어조로 추도사가 계속되어 조객 일동을 더욱 비감에 싸이게 한 바 있었다. 계속해서 유승렬대령을 비롯한 오광선대령·인천해군기지사령관·表시장·張永福경찰국장·부천군수 등 제씨의 애끓는 弔辭가 있었고, 제1사단 군악대의 조악에 이어 각계인사의 분향에 이어 弔砲 3발의 공중발사가 있은 다음 유가족에게 조위금 수여, 유가족측의 답사로써 무사히 식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시가행진이 있었는데 유골은 하오 5시경 서울을 경유, 각각 본가에 환송 안치시킬 예정이라 한다.

대중일보 1949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