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민족정신앙양 종합예술제 개최  
연월일1949년 12월 03일  
출전서울신문, 한성일보 1949년 12월 04일, 05일  
민족정신앙양 종합예술제 개최
한국문화연구소 주최 민족정신앙양 종합예술제는 장안의 인기를 총집중한 가운데 드디어 3일 하오 6시 반부터 시내 태평로 시민관에서 성대히 첫 막을 열었다.
특히 이번 예술제에는 해방후 혼란기에 본의 아닌 일시적 착오로 좌익계열의 문화단체에 관련되었다가 지난번 전향자수한 문사도 참석하여 더욱 이채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종합예술제야말로 건국 이후 처음 보는 대호화판인 동시에 우리 민족문화 향상에 획기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첫날부터 성황을 이루고 있다. 첫날 순서는 먼저 白鐵씨 사회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서울신문 1949. 12. 4)
◊ 12월 3일(토요일) 밤
사 회:白鐵
제1부
개회사:朴鍾和
강 연:薛義植
시낭독:徐廷柱 朴斗鎭
이북문화인에게 보내는 경고문
李泰俊에게-鄭芝溶
吉鎭燮에게-金晩炯
金順南에게-朴容九(代讀 愼幕)
소위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에, 소위 북조선영화동맹에-韓瀅模
제2부
독 창:金炯魯(가극 ‘시실리아’ 중에서, 오! 조국-베르디 曲, 나그네-슈베르트 曲)
독 창:金天燮(나 너를 사랑한다-베토벤 曲, 아멀라이테-베토벤 曲)
무 용:朴勇虎(喜悅·協力, 반주 李仁亨)
무 용:金漠人(율동, 나는 바보라오)
무 용:韓東人 외 문하생(곡목 미정)
교향악:서울교향악단(교향곡 제6번(비창)-차이코프스키 曲, 지휘 金生圈)
◊ 12월 4일(일요일) 낮
사 회:鄭芝溶
제1부
강 연:吳宗植 廉尙涉
시낭독:金容浩 薛貞植 柳致環
이북문화인에게 보내는 경고문
李源朝에게-金起林
崔承喜에게-張秋華(代讀 文哲民)
朴榮根에게-愼幕
安英一에게-金正燮
소위 북조선음악동맹에-朴殷用
소위 조선연극동맹에-朴慶兒(代讀 卞基鍾)
제2부
합 창:시온성합창단(아베마리아-구노 曲, 나는 믿으려오-구노 曲, 지휘 李東日)
독 창:盧光郁(음악에게-슈베르트 曲, 가극 로엔그린 중에서-바그너 曲)
독 창:權元漢(들어라 종달새-비숍 曲, 반주-李仁亨)
무 용:金三和(草笠亂童, 女僧의 舞)
무 용:張秋和, 장추화 외 中等班員(打令, 出陣, 幻想, 새벽)
연 극:劇協(자유를 찾는 사람들(1막 2장), 각본-尹芳一, 연출-李光來)
◊ 12월 4일(일요일) 밤
사 회:梁柱東
제1부
강 연:朴鍾和
시낭독:洪曉民
시낭독:金東鳴 林學洙 薛昌洙
이북 문화인에게 보내는 경고문
李克魯에게-李秉岐
李曙鄕에게-白 寅
黃 徹에게-玄芝涉
文藝峰에게-南呂運
소위 북조선미술동맹에게, 소위 북조선문학동맹에게-金永周
합 창:시온성합창단(아베마리아-구노 曲, 나는 믿으려오-구노 曲, 지휘 李東日)
독 창:李仁範(가극 ‘라보엠’ 중에서-푸치니 曲, 마레키아-레 토스티 曲)
독 창:金惠蘭(부용산-安聖鉉 曲, 가극 ‘미니용’ 중에서-토미 曲, 반주-李仁亨)
무 용:鄭寅芳(바라舞-정인방 외 중학부원, 身老心不老-정인방, 무용시극 ‘탈’-정인방·硏究所員 一同)
연 극:劇協(자유를 찾는 사람들(1막 2장), 각본-윤방일, 연출-이광래)
주 최:한국문화연구소
후 원:전국문화단체총연맹
(舊府民館) 市民館
(한성일보 1949. 12. 4)
민족정신앙양 종합예술제는 지난 3일 저녁부터 3천만 온 겨레의 환호와 박수 속에 개막되었다 함은 기보한 바와 같거니와 동 제전은 4일 낮 1시부터 다시 市民館에서 속개되었다. 우리가 왜정 40년 간 모든 문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간신히 입김이 숨가쁘게 연속될 만큼 속박과 억압을 당하였던 당시 우리는 오로지 원통한 심정을 시와 문학 등 예술부면에 전 민족혼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오늘날 해방과 독립이 된 것도 脈을 이어 나간 예술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음달에서 변변히 피어나지도 못했던 우리의 민족문학이 오늘 비로소 개화하고 결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의 식전을 보려고 운집한 수만 명 청중은 이미 정각 전에 입추의 여지없이 초만원을 이루었고, 특히 시민관 앞마당에는 안타깝게도 입장 못한 청중들이 운집하여 더욱 성황을 이루었다. 음산한 날씨에 스피커로 들려 나오는 연사들의 구절구절 절규하는 민족정신-아마도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윽고 1시 滿場을 진동하는 박수 소리에 막을 열었다. 시인 鄭芝溶씨의 사회에 따라 먼저 우리 문단의 거성 廉尙涉씨의 강연으로 들어갔다.
◊ 염상섭씨 강연
예술과 문학은 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 본연성과 眞善美를 탐구하여 참다운 인생의 감정적 융합을 도모하는 데 있다. 문학은 개성에 입각하여야 되고 또한 이것은 민족적 개성을 표현하여 자기의 민족문화를 세계문화의 일환으로 등장시켜야 할 것이고, 결코 이데올로기에 마비되어 문학의 순수성을 망각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 吳宗植씨 강연 내용
“예술과 문학은 정치와 현실적 관련성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 좌익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속속 전향하고 있는 것이요, 특히 예술과 문학이 정치와 분립하여서는 도저히 그 본질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그들이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학은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여야 된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와 평등의 대립하고 있는 국가적 견지에서 통합하여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과 예술도 계급을 위하여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륜적 공동체로서의 민족국가를 위하여서 존재하여야 될 것이다”라는 오종식씨의 강연에 이어, 崔承熙에게 보내는 경고문을 張秋華씨(代讀 文哲民)씨 朴榮根에게는 愼幕씨, 安英一에게는 金正燮씨 등이 각각 경고문을 낭독한 다음 소위 북조선음악동맹에게 朴殷用씨, 소위 북조선연극동맹에게 朴慶兒씨(대독 卞基鍾씨)가 낭독하고 잠시 휴게 후 제2부로 들어갔다.
◊ 吉鎭燮에게:金晩炯
해방후 혼란기에 나는 군과 함께 조선미술계를 위하여 일하고자 손을 마주잡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얻은 것이 무엇이냐. 오직 기만당하였다는 분개뿐이다. 군이 월북한 후 대한민국은 더욱 발전하여 민주주의 국가로서 세계에 거보를 내걷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철의 장막도 없고 속박도 없으며 모든 문화인들은 자유로운 천지에서 각자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나 자유를 사랑하던 군이여! 자유가 그립지 아니한가? 북한괴뢰집단의 모든 모략과 기만을 이제는 군도 넉넉히 짐작했으리라. 나는 이미 군과의 손을 끊었다. 그러나 군이여 군이 자기 자신을 속여 가며까지 괴뢰집단의 노예가 되어 있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적나라한 군 자신의 진실로 다시 돌아가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날아들어오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 尙虛에게:鄭芝溶
10여 년 전부터 네니 내니 가까웠던 벗 상허 이태준께 이제 새삼스럽게 말을 고칠 맛이 없어 편지로도 농하듯 하니 그대로 들어주기 바라네. 자네가 간 줄조차 모르고 한번 술을 차고 자네 댁을 찾았더니 자네가 애써 가꾸던 賞心樓 뜰 앞에 꽃나무 그대로 반가웠으나 상심루 주인 자네만이 온다 간다 말없이 행적이 이내 5년 간 묘연하네 그려. 전에 없었던 월북이란 말이 생긴 이후 구태여 자네의 월북 사정이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우이. 일제 질곡에서 사슬이 풀리자 8·15 이후에 자네가 반드시 좌익 소설가가 되어야 할 운명이라면 좌익은 어디서 못하겠기에 좌익지대에 가서 좌익 노릇 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왕이면 멀리 모스크바에 남아서 좌익은 아니되던가?
자네 좌익을 내 믿기 어렵거니와 아마도 죽어도 살아도 민족의 서울에서 견딜 끈기가 없는 사람이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 가는 바람에 으쓱했던가 싶어서 여기서 아메리카 기행을 쓴 사람이 아직 없는 바에 자네 소련기행이 분수없이 너무 일러버렸네. 38선 책임을 자네한테 돌릴 수는 없으나, 자네 소련기행 때문에 자네가 친소파 소리 듣는 것이 마땅하고 민족문학의 좌우파쟁의 참담한 책임은 자네가 질만하지 않는가. 나는 아직 친미파 소리 들은 적 없으나 아무리 생각해야 내가 친소파가 되어질 이유가 없네. 어려서부터 자네를 내가 아는 바에야 어찌 자네를 소련을 조국으로 삼는 소설가라고 욕하겠는가. 그러나 왜 자네의 월북이 잘못인고 하니 양 군정 철폐를 재촉하여 조국의 통일독립이 빠르기까지 다시 완전자주 이후 무궁한 연월까지 자기가 민족의 소설가로 버티지 않고 분수없이 빨리 38선을 넘은 것일세. 자네가 넘어간 후 자네 소설이 팔리지 않고 자네 독자가 없어지게 되었네. 자네들은 우리를 라디오로 욕을 가끔 한다고 하더니만 나도 자네를 향하여 응수하기에는 좀 점잖아 졌는가 하네. 38선이 장벽이 아니라 자네의 월북이 바로 분열이요 이탈이 되고 말았네. 38선의 태세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된 것도 자네의 一助라 할 수 있지 않는가?
(서울신문 1949. 12. 5)

서울신문, 한성일보 1949년 12월 04일,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