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8. 中國軍官學校 洛陽분교 조선인학생의 근황에 관한 건  
문서번호上海發 제209호  
발신일소화 10(1935)년 5월11일1935년 05월 11일
발신자上海주재 사무관 一杉藤平  
수신자경무국장, 각 도 경찰부장  

18. 中國軍官學校 洛陽분교 조선인학생의 근황에 관한 건

上海發 제209호

 소화 10(1935)년 5월11일

 上海주재
 사무관 一杉藤平

경무국장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귀하

 중국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재적중인 조선인학생 중, 34명이 최근 南京으로 돌아온 것은 이미 보고한(4월 28일자 上海發 제175호 참조)대로이지만 그 후, 南京주재 新韓獨立黨의 아무개간부에 대해서 상세 조사한 결과, 낙양에 있어서의 군관학교분교 재적 조선인학생은 62명(주1)이며, 중국 측의 방침대로 중국 측 학생과 같이 올 해 4월 초순 졸업하여 모두 제대하는 것으로 되어(주2) 모두 4월 중순, 南京으로 돌아왔는데

1. 韓國革命軍편입 희망자 34명은 주로 李靑天등과 함께 滿洲에서 남하한 청년으로서 다 시 滿洲로 들어가 이 자의 지휘 하에 반만항일의용군으로 활약하려 함.

2. 金九 일파의 愛國團에 속해 그 지휘 하에서 활약하고자 하는 자 4명

3. 金元鳳 일파의 義烈團소속 12명

4. 중국 중앙육군 군관학교입교 희망자 4명

5.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행동을 희망하는 자 8명

으로써, 자유행동희망자 8명은, 작년2월 해당 군관학교 개강당시 韓國獨立黨 특무대장인 朴昌世가 통솔하고 있던 청년으로서, 당시 鎭江에 체재하고 있던 자들 이지만, 그들은 아직 정식으로 韓國獨立黨에 가맹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독립당파를 공공연히 칭할 수 없는 자들 이지만, 이미 朴昌世의 휘하로서 上海에 3명 그 외는 鎭江에 잠복하고 있으므로 실제는 韓國獨立黨의 지휘 하에 있음이 판명됨.

 그러나 이번 달 8일자로 上海發 제201호 表題件(그 2항)보고 중에 安恭根의 말로써 “李靑天일파의 新韓獨立黨에서는 재정난 때문에 그 학생을 金九파에 위탁해왔으므로 金九파에서는 가족은 물론, 그 동지의 식비에 이르기까지 이를 절약하고 있다”고 되어 있지만 위는 安恭根이 동지에 대해서 재정적 원조를 회피하려고 만든 구실로써 말한 것인지, 혹은 사실 李靑天 등의 의뢰에 근거하여 金九 일파에게 받아들인 것인지 첩보로는 알 수 없지만,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李靑天 일파의 34명은 모두 滿洲에서의 공작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그 행동에 대해서는 심히 주의를 필요로 하므로 그 본적과 주소, 이름, 마지막 행적 등을 자세하게 내사중임.

 위 사실을 우선, 보고 겸 통보함

(주):1. 작년 2월 낙양분교에 입교한 조선인학생은 총계 92명이지만 같은 해 8월에 이르러 金九 일파에서 25명을 南京으로 돌려보낸 이에, 말에서 떨어져 부상으로 제대한 자 1명(현재, 義烈團본부에 있음), 도주한 자 1명(鄭熙童인 듯) 합계 27명으로, 차감 65명이 되며 이번에 졸업하는 자는 62명임. 따라서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판명이 되지 않음.

  2. 올해 2월 9일자 上海發 제37호로 “졸업시기는 日中의 현재시국에 비추어 1년간 연장하여 내년 2월까지 훈련을 하기로 됐다”는 취지를 보고해 두었으나, 그 후 해당지역 파견헌병으로부터는 4개월간 연기하여 올해 6월 졸업하는 것으로 되었다는 정보를 얻었으므로 내사한 결과, 이번에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중국 측의 기정방침이라고 하여 4월 상순 중국측 학생과 함께 졸업하는 것으로 되며 이번의 졸업식에는 특히, 南昌에 있는 張學良도 참가하여 출석하는 것으로 보임.

 記

1. 본적 경기도 連川郡 南面 梅谷里 330번지

    白南正의 3남

    당시 上海프랑스조계 白爾路 平安旅館內

    吳柱國 즉 白贊基(당 24세)

2. 전과 없다고 자백함.

3. 중국으로 건너기 전의 내력

 17세 때 본적지인 南面공립보통학교 4년을 졸업하고 가업인 약재상을 돕던 중 소화 7(1932)년 3월 가족과 함께 경성으로 나와 京城府內 鐘路5丁目 405번지에 거주하며 府內의 中林洞 大陸고무공장 급사로 취직하여 월급 18엔을 받고 있었는데, 소화 8(1933)년 8월, 병에 걸려 퇴직, 그 후 자택에서 무위도식 중 한글잡지[別乾坤]에 [南京중앙대학교에서는 학비면제 입학시킴]이라는 광고를 보고 부친과 상담하여, 이 학교에 학비면제 입학을 하기위해 소화 9(1934)년 4월 15일 경성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 平安丸號를 타고 상해로 건너감.

4. 上海로 온 후, 南京中央軍官學校입학까지의 상황

 上海로 건너가는 배 안에서 金九파의 생도 모집원 盧泰然의 조카 盧榮昊와 알게 돼, 의기투합하여 함께 南京으로 가서 서로 도우며 공부하기로 하여 상륙 후, 시내구경을 하고 그날 밤 그 곳을 출발하여 南京으로 갔지만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으므로, 盧와 함께 그의 숙부인 盧泰然의 통신에 적힌 주소인 城內 鄧府路 同慶里 14호를 방문하자, 이 집에는 孫健(孫斗煥의 가명임)이라는 자가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이 자는 즉시 盧泰然에게 이 사실을 통지한 결과, 약 2시간 후에 盧泰然이 와서 이 자들을 데리고 그 주소지인 城內 柳葉街 56호로 데리고 갔음. 그때 이 집에는 盧泰然 1명이 있었지만, 다음날 李鐵重(仁川출신, 당 22세 가량), 金炳華(間島출신, 당 23세 가량), 李德成(京城출신, 당 19세 가량), 金海雲(대구출신, 당 19세 가량) 4명이 와서, 모두 7명이 자취를 하며 무위도식하던 중, 같은 해 7월경부터 金九의 모친 및 그의 2남인 金信(당 16세 가량)도 이곳으로 이주해와서 金九는 가끔 이곳을 찾아왔음.

 그 후, 8월 말경 李國華(韓道源), 張致文 2명이 와서 학생은 모두 8명이 되고 모두 10월 4일 南京中央軍官學校입학시험에 응시하여 같은 달 10일경 체력검사를 받은 결과, 모두 합격하고, 또한 다른 곳에서(義烈團 측)응시한 조선인 13명도 모두 합격함.

 수험과목은 대수, 기하, 삼각, 물리, 화학, 영어 등으로 시험관은 일본사관학교출신 중국 아무개 소장(당 40세 가량)이었고 체격검사는 중국인학생 3백 명과 함께 실시됨.

 그리고 수험생은 위의 21명중, 盧澋昊는 軍官學校입학에 불복하여 盧泰然으로부터 여비를 받아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하고, 葉아무개(경성출신, 당 24세 가량, 葉鴻德?) 및 劉敵(중국 九江출생, 당 24세 가량)은 제11기 正班 즉, 제1단에 입대하고 다른 18명은 같은 11기의 예비반 즉, 제2단에 입교함.

 (주):盧澋昊란 본적 황해도 松禾郡 豊海面 城土里 盧澋昊(당 25세)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사료됨)

5. 입교후의 정황

 (가) 입교당시는 아침 5시 반에 기상하여 체조와 그 밖의 운동을 하고

   7시 조식, 7시40분~11시40분 학과

   11시 40분부터 점심을 먹고 1시간 휴식

   오후 1시~3시까지 학과

   오후 3시반~5시까지 교련

   오후 5시반 저녁, 저녁 후 운동을 하고

   오후 7시~동 9시 반까지 자습

   오후 9시반 인원점호 있음. 교가를 합창하고 오후10시 취침함.

 (나) 학과는 正班입학준비교육으로 지리, 역사, 수학, 대수, 기하 등임.

 (다) 현재, 이 군관학교에 봉직중인 조선인 교관은

   孫健 즉, 孫斗煥―일본어 담임

   金鐵男―위와 같음

의 2명임.

 (2)이 자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매주 토, 일요일에는 城內 木匠營 高安里1호, 俱樂部에 가서 金東宇, 朱曉春 등으로부터 인원점호를 받고 때때로 安恭根, 金東宇 등으로부터 세계정세, 혁명운동 등에 관한 훈화가 있었고, 또한 이곳에는「동아일보 」 · 「大阪毎日新聞 」 · 「上海매일신문 」 영자신문 및 잡지「新東亞 」 · 「킹 」 등이 비치되어 있었으므로 언제나 이 자는 이것들을 읽고 귀대하는 것을 일과로 했다고 함.

6. 金九특무대 입대상황

  이렇게 공부하던 중에 작년12월 南京 城內 木匠營 高安里 1호 특무대 본부에서 이 자는 安恭根으로부터 “특무대는 조선으로 하여금 일본제국의 굴레로부터 이탈시키기 위해 모든 흉폭행동을 감행하기 위해 조직된 결사”라는 사실을 듣고, 이 자의 권유로 그 목적에 찬동하여 입대함.

7. 퇴교 전후의 정황

  그 후 이 자는 올해 5월경부터 폐결핵을 앓게 되어 특무대 안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여전히 치유가 되질 않을 뿐만 아니라 점차, 병이 깊어져 安恭根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자 安은 “그럼 자퇴하여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할 것. 다만 조선으로 돌아가더라도 절대 비밀을 엄수하고 영사관등에도 출두하지 말고 조용히 중국을 경유하여 조선에 돌아갈 것”이라 하여 병 치료비 및 여비로써 40엔을 지급함.

 따라서 이 자는 올 해 7월 17일 자퇴하여 앞에 쓴 高安里1호, 俱樂部 겸 특무대본부에서 4일간 머물고 같은 달 20일 오후 5시 南京발 열차로 束澤의, 프랑스계 太平橋寶興旅館에 1박하여 다음날 아침 馬浪路 소재의 仁成學校로 가서 중국인 심부름꾼로부터 프랑스조계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소개받아 勞神父路 恊成里 4호 朴奎燦집을 방문하여 이 자의 도움을 받아 勞神父路 438호의 중국인집을 빌려 北蘇州路 廣濟病院에 통원 중, 이번에 더욱 병이 깊어졌고, 한편 동지의 검거소식을 알게 되자 신변의 위험을 느껴 마음을 굳혀 영사관의 거주증명을 얻어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또한 자세하게 청취한 바에 따르면 앞서 말한 정황을 자수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고자 임시 주소지로 이전하여 이번 달 7일 이곳에 출두한 자임.

別表: 南京中央陸軍軍官學校 제11기 입교 조선인 일람표

파별가명추정연령이름출신지응모지비고
義烈團파張炳勳23 滿洲滿洲예비반(6連3班)재교 중
張烈光23 경성 上同(3連)
李志剛22李相勳黃海道 鳳山郡 上同(2連)
陳樂三18   上同
三揖五18   上同
崔英賓19 奉天奉天上同(6連)
劉章煥24   上同(5連)
閔健22   ?義烈團 제2기 졸업생 만주국출생으로 일본어를 모름上同(□連)
王守義20, 平北道 雲山郡 義烈團제2기졸업생(上同, 제6連)
 葉鴻德23 경성上海1團(正班)재교중
劉敵25 충청도九江上同(正班)재교 중, 義烈團제2기졸업생으로 일본어를 모름
康志山25蔣載福咸南 元山府 本町 五丁目 210南京당해4월경, 자기희망으로 퇴교함. 그 후 8월 9일天津 에서 검거되어 8월 29일부터 3년간 중국재류금치처분을 받아 현재, 平北경찰부에서 취조 중
李靑山21金貞彩平北定州郡 臨海面 元瑞洞 거주滿洲당해2월경 도주, 상해로 건너가 현재 조선 내에서 순사로 봉직 근무 중일 듯
崔陽成23 南京 거주 중南京예비반재교중에 당해 6월에 공군영(營)으로 전입함
金九파吳柱國24白贊基京畿道 連川郡南面 梅谷里330南京소화 10(1935)년 10월 3일 자수함(上海총영사관
金□華22 間島上同성명미상, 제10기생으로부터 開城에서 부름을 받고 南京으로 와서 응모한 자. 예비반재교 중(제3連)
李鐵重22 仁川上海예비반재교 중(제6連)
金九파張致文28  上同당해4월경 자퇴, 행방불명
李國華28韓道源平南大同郡古平面新興里上海법계(6자 판독불능)판독불가
李鐵夫22金世雄京城府光熙町1丁目14上海당해4월경 퇴교후 행방불명, 그후□□□□□에서 검거, 징역 6개월에 처해져 長崎형무소 □□□에서 복역중
金海石21朴珍守 즉,
朴景一
慶南晉州邑田峰里840의 17上海위와 마찬가지로 脫校後 행방불명이었지만 그후, 天津 에서 검거됨

이상

▪ 『백범김구전집』 제4권, 844~8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