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32) 民族主義派團體  

32) 民族主義派團體

 (가)

 중화민국 南京 및 上海 지방 불령선인의 사상운동에 관해 최근의 상황은 전에 보고한 바와 같다. 민족주의 단일당으로서 결성된 조선민족혁명당에서는 결성 후 몇 개월 되지 않아 이미 한국독립당재건파가 동 당에서부터 분리되었고, 다시 昭和 12년 2월 동 당 내에서의 金元鳳과 李靑天과의 파벌 항쟁이 폭발하여 이청천 일파는 따로 조선혁명당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민족주의계 분야에서는 저 임시정부파인 김구 일파가 이끄는 한국국민당에 대해 김원봉 일파의 조선민족혁명당 및 여기에서 분리된 한국독립당재건파와 이청천의 조선혁명당이 서로 버티어 대항하며, 한국국민당은 기관지 『韓民』 · 한국국민당청년단은 기관지 『韓靑』 · 한국청년전위단은 기관지 『前線』을 매달 간행하여 모두 김구 일파의 한국국민당의 주의 선전 및 민족혁명당에 대한 배격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조선민족혁명당은 기관지 『前途』 및 『民族革命』을 발행하여 자파의 정당을 옹호하였다. 이들은 파벌적 대립 하에 상호 배격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항일무장 또는 항일테러를 고창하지 않을 수 없고 조선독립, 민족해방의 당면 수단으로서 중국의 항일운동에 참가하여 그 전위적 역할을 사명으로 하려는 것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주 :

(1) 한국국민당청년단은 한국국민당의 청년부이다.

(2) 韓國靑年前衛團은 昭和 12년 2월 임시정부 및 한국국민당 및 동 청년단을 지원하고 한편으로 민족혁명당에 대항하는 것을 표방하며 결성된 단체이다. 종래 廣東 방면에 있던 불령선인은 줄곧 동 지방 혁명운동의 支隊的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조선민족혁명당이 결성되자 임시정부파의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청년들은 대거 동 당의 지부에 가맹하여 한때는 동 지방에서의 중심세력을 이루었다. 그 후 南京 지방에서부터 김구의 참모격인 安恭根의 장남 安禹生이 廣東 지방에서 임시정부파의 청년 金德穆, 金鏮 및 馬超軍 등과 협력하여 민족혁명당의 동 지방 지부원 安炳武, 韓泰寅 등을 자기파에 끌어들이고 동 지부의 붕괴운동에 힘쓰고 동지 획득에 전념했기 때문에 昭和 11년 6월경부터 민족혁명당 지부는 동요를 초래하였고 마침내 동 당 중앙부 반대의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중앙부에서는 같은 해 가을 尹世冑가 간부를 廣東에 파견하여 사태 수습에 분주하였으나 주효하지 못하고 도리어 임시정부파에게 넘어가게 되고 昭和 12년 2월에 완전하게 임시정부파의 일익으로서 廣東 지방에 이 한국청년전위단이 결성된 것이다.

(3) 이청천 일파의 동정이청천 일파는 최근 杭州에 있는 한국독립재건파와 밀접한 제휴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임시정부파 김구가 이끄는 한국국민당에서는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의 세력에 대항하려고 이 양자를 동시에 자파의 수중에 넣으려고 획책하였다. 이에 세 파 합동의 기운이 무르익어 昭和 12년 7월 초순 한국독립당을 대표하여 洪晩湖 즉 洪震은 南京에 가서 이청천과 한국국민당 대표 宋秉祚와 회견하고 세 파 합동의 협동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다.

 (나) 최근 발행의 각 단체 기관지

(1) 『한민』은 昭和 11년 3월 15일부터 上海 韓民社 명의로 발행된 46배판 4쪽의 부정기 신문이다.

(2) 『한청』은 昭和 11년 7월 11일 한국국민당청년단의 창립선언과 함께 같은 해 8월 27일자로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3) 『전선』은 昭和 12년 2월 한국청년전위단 결성 이래 동 단의 기관지로서 발행된 것이라 여겨진다.

(4) 『민족혁명』은 昭和 11년 1월 20일 창간인데, 그것은 昭和 10년 10월 1일부터 발행되고 있던 『黨報』를 제목을 바꾼 것이다. 그 후 소화11년 7월 1일호에서 民族革命黨旗로서 義烈團旗를 그대로 채용한다는 것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그것에 발단이 되어 김원봉파와 이청천파의 표면적 항쟁이 되었다.그 후 같은 해 7월 31일부터 같은 해 8월 29일까지는 『우리의 길』이라 제목을 바꾸었고 그 후 폐간이 되었는데, 같은 해 12월 1일의 전당대회 결의에 의해 소화12년 2월 22일부터 『前途』라고 개칭되어 발간을 부활하였다.

 한편 이청천파는 소화12년 2월의 對 김원봉 항쟁 후 자파에서 『민족혁명』을 재발행하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조선민족혁명당에서는 『전도』 외에 『민족혁명』도 기관지로서 발행하게 되었고 이번 북중국사변에 대해서도 기사를 게재하였다.

  참고(별책, 실물은 한글이며 그 要譯이다)

(1) 『한민』 제14호 기원 4270년 6월 20일

(2) 『한청』 제2권 제4기 대한민국 19년 6월 15일

(3) 『전선』 소화 12년 4월호. 이 호 중 民族陣線좌담회 기사는 재중국 조선인 민족주의운동의 동향을 엿볼 수 있다.

(4) 『민족혁명』 (제5호)2권 2호 4270년 6월 20일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선언문 및 민족통일문제를 게재했다.

(5)의 (1) 『전도』 제18호, 1937년 6월 28일

(5)의 (2) 『전도』 제21호, 1937년 7월 19일. 이 호에는 주로 북중국사변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목 차

1. 사설 중국의 항일운동에 참가해야 한다(摘譯)

2. 적 일본의 宛平城 포격으로 중일전쟁 전초 개시(要譯)

3. 敵紙의 데마고기 常習辯 ‘張志王’은 적의 주구로서 다수의 동지를 체포당하게 한 자이며 조선혁명당원 운운은 사실무근의 설

4. 李鍾□ 등 제씨 11명 검사국 송국=치안유지법

5. 격증하는 소작쟁의 조정 신청건수 구천 300여 건(작년 중)

6. 日人 소유 大海堂 인쇄직공 200명은 파행을 단행=임금인상 등 3조건을 제출

7. 전조선 18府 내에 영세민 33만 명

8. 만주 무장군 격멸을 적군경 획책 중

9. 제4차 朝鮮共靑사건=36명 송국

10. 동방침략자의 최후의 말로

11. 양심 있는 5명의 일본중급군관 자살로써 참전을 보이콧(要譯)

12. 팔레스타인의 아라비아민족해방운동의 상황

13. 근동 4국의 불침략공약 改訂

14. 조선민족혁명당 창립2주년기념일에 즈음하여

15. 일어나라, 조선민족이여. 전쟁은 폭발했다. 중일전쟁은 폭발했다. 우리도 출전하자

  내 용

 1. 사설 중국의 항일운동에 참가해야 한다

 7월 7일 오후 11시 北京 蘆溝橋에서 강도 일본군에 의해 발포된 포성은 중국민족의 맹렬한 복수심을 격발시켰음은 물론, 仇敵을 같이 하는 조선민족과, 정의를 사랑하는 세계민족의 의분심을 충동시켰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계획적인 군사행동이며 제2 9 · 18사변의 전야임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일본의 근세사는 완전히 조선과 중국의 침략사이다. 일본의 모든 공작의 전율할 만한 사실은 중국민족으로 하여금 항일적개심을 골수에 사무치게 했다.

 적은 배일사상을 단속해야 할 것을 중국정부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항일적개심, 배일심은 항일교육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골수에 사무친 적개심의 체험적 결과이다.

 중국정부는 민족이 이처럼 비통한 모욕을 받을 때마다 적과 최후의 일전을 각오하고 결심했다. 그러나 중국민족은 중앙정부의 영도 하에 이 비분을 참고 견디며 내일의 복수전을 위해 오늘은 와신상담하며 국내통일, 국내건설에 전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 동안 兩廣, 西安 사변의 화평 해결을 대 전환기로 하여 四川整軍, 중앙5개년경제건설계획, 蘆山담화, 平津의 國選 공작, 학생민중 훈도, 중국 국운은 실로 경이적 발전을 보았다.

 孫中山 선생의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동지는 이에 다시 노력하라’는 遺訓을 계승한 중국민족의 비약적인 부흥공작에 공포를 느낀 적은 선제적으로 이번 사건을 돌발시켰다.

 완전한 계획적 행동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중일전쟁은 동시에 조선민족 해방전쟁이다. 우리 민족의 비상시가 다가왔다. 해방의 호기가 도래하였다. 중국민족의 승리는 곧 조선민족 해방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친애하는 동포여, 우리는 비상한 각오와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전부 무장하고 중국군의 항일전에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적 일본군 박멸에 중국군과 함께 피를 흘려야 한다. 중국 동삼성에 있는 현재 무장 隊伍와 동포는 중국의용군에 가담하고 관내의 우리 혁명군과 우리 동포들은 그 곳의 중국군에 직접 참가해야 한다.

 국내 민중은 폭동을 일으켜 적 후방을 혼란시키고 중요한 군사시설, 건설건물을 파괴해야 한다. 일어나라, 조선민족. 전쟁은 폭발했다. 우리는 중일전쟁에 참가해야 한다. 우리 동포여, 한 사람이라도 좋고 두 사람이라도 좋다. 항일전선에 참가하라.

 우리 동지는 이 시기를 기다린 지 오래이다.

 중화민족이 일어났으니 우리도 일어나자. 비상시이다. 전시이다. 만일 항일전선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는 적에 합류하는 주구이며 반혁명자라고 여길 것이다.

 최근 각지 신문은 華北의 우매하고도 불량한 일부 조선인이 적에게 매수되어 전율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일부의 우매한 동포들이여, 너희들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가.

 조선의 절대 다수 동포들은 너희들을 얼마나 증오하겠는가.

 우리도 평소 성의를 가지고 권고해왔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각오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전민족의 의사에 따라 영원한 매국노의 오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쟁이 격화하면 소수의 너희들 생명은 항일군 포위 하에 풍전등화의 운명이 될 것이다.

 동방의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중국항일전쟁에 무장 참가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며 자유를 획득하는 노선의 계제이다.

 (후략)

▪ 『白凡金九全集 4』, 777~7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