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4. 한국광복군 조직  

4. 한국광복군 조직

1) 1940. 8 현재

 직      위  성  명  출    전
총 사 령
참 모 장
참 모
부 관
전령장교
주 계
군 의
 李靑天 
 李範奭 
 蔡元凱, 李復源, 李俊植, 金學奎, 公震遠
 黃學秀, 王仲良, 趙時元
 高一鳴, 兪海濬
 安勳, 金毅漢, 李象萬, 閔泳玖
 劉振東, 林義澤, 嚴益根
자료집1, 222

2) 1940. 9 현재

 직      위  성  명  출    전
총 사 령
참 모 장
참모처장
부관처장
정훈처장
군법처장
관리처장
군수처장
군의처장
 李靑天 
 李範奭 
 蔡元凱 
 黃學秀
 趙素昻
 洪 震
 金朋濬
 車利錫
 劉振東
 자료집10, 31
 제1대 隊長
 제2대 隊長
 제3대 隊長
 제4대 隊長
 제1路 東北司令
 李俊植
 金學奎
 公震遠
 金東山
 朴大浩

3) 1940. 10 현재

 직      위  성  명  출    전
총사령
참모장
비서처
참모처
부관처
정훈처
관리처
편련처
포병공처
경리처
군법처
위생처
특무대
헌병대
 李靑天
 李範奭
 崔用德
 蔡元凱
 黃學秀
 趙擎韓 (安勳)
 -
 宋虎聲
 -
 趙擎韓 (安勳)
 -
 劉振東
 -
 -
 한국독립운동사, 357
西安總司令部暫定部署
총사령 대리
참모장 대리
참모조 조장
부관조 조장
경제조 조장
선전조 조장
편집조 조장
  
 黃學秀
 金學奎
 李復源
 黃學秀
 趙擎韓
 金 光
 宋東山
 特高月報 1943-1
제1지대 지대장
제2지대 지대장
제3지대 지대장
제5지대 지대장
 
 李俊植
 公震遠
 金學奎
 羅月煥 (~1942. 3. 1)
 宋虎聲
 독립운동사6, 207
 독립운동사6, 207
 독립운동사6, 207
 독립운동사6, 209
  
징모처 제3 분처주임위원 겸 선전조장  金文鎬  독립운동사6, 211

4) 1941.11~1944.10

 직      위  성  명  출    전
총사령
부사령
참모장
 
 
 
부참모장
고급참모
 
참모처 처장
총무처 처장
 
정훈처 처장
 
 李靑天
 金元鳳(金若山) (1942.5.18~1944.6.1)
 李範奭
 李振剛*  (1942.5.18~)
 尹呈輔*  (1942.3.13~)
 趙德樹*  (1942.10~)
  -
 蔡元凱 (~1943. 7. 6)
 崔用德 (1943. 7. 6~)
 袁 喆*
 崔用德 (~1943.7. 6)
 蔡元凱 (1943. 7. 6~)
 王平一*
 黃紹美*
 자료집9. 61
 자료집1. 261/자료집1,317
  
 자료집 10, 109~110
 자료집11, 20
 자료집9. 61
  
 자료집1, 293
 자료집1, 293
 자료집9. 62
 자료집1, 293
 자료집1, 293
  
 자료집9. 63
1지대 지대장
2지대 지대장
3지대 지대장
 金元鳳(金若山)
 李範奭 (1942. 8~)
 金學奎
 자료집9. 64  자료집10, 139   

*중국군

5) 1944.11 이후

 직      위  성  명  출    전
총 사 령
참 모 장
고급참모
부 관
비 서
참모처장
정훈처장
부 관 장
경리처장
군의실 주임
군법실 주임
 李靑天
 金弘壹
 蔡元凱, 宋壽昌, 李復源, 金紫東
 尹慶彬
 李復榮
 崔用德
 李斗山( 顯洙)
 李錫華
 陳作楷*
 張運漢
 趙時元
 독립운동사6, 307~309
 (金弘壹과 李斗山(顯洙)는 1945년 5월부로 임명됨.
 자료집11, 118)
1지대 지대장  金元鳳(金若山)
 李集中 (?)
 宋虎聲 
 李俊植 (?)
 蔡元凱
 독립운동사6, 307~309
2지대 지대장  李範奭   
3지대 지대장  金學奎  독립운동사6, 427~429
제 3 전구공작대  金文鎬   
제 9 전구공작대
(제 1지대 제 3구대)
 李炳坤  독립운동사6, 451~452

*중국군.

※ 연표 및 직원록 출전의 약칭 표시 안내 (가나다순)

 高等警察關係年表『高等警察關係年表』朝鮮總督府警務局)

 高等警察要史『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공보『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1)

 도산안창호전집『島山安昌浩全集』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思想月報『思想月報』高等法院檢事局思想部)

 社會運動の狀況『社會運動の狀況』內務省警報局, 東京:三一書房)

 우남이승만문서『이화장소장 우남이승만문서(동문편)』우남이승만문서편찬위원회)

 임정법령집『대한민국임시정부법령집』국가보훈처)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편)

 일제하사회운동사자료집『일제하사회운동사자료집』한국학술정보주식회사)

 자료집『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자료한국독립운동『자료한국독립운동』연세대출판부)

 제시의 일기『제시의 일기』양우조 · 최선화)

 조소앙편『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조소앙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特高月報『特高月報』內務部 警務局 保安課)

 한국독립운동사『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한국독립운동사』 자료편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한민족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대한민국국회도서관)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편찬사업을 마치면서●

 대한민국의 기원은 어디인가?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헌법이다. 1948년 7월 제정 공포된 이른바 제헌헌법, 그리고 1987년 10월에 공포된 제8차 개정 헌법의 전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大韓國民은 기미 三一運動으로 大韓民國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再建함에 있어서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두 헌법은 모두 대한나라 사람들이 3ㆍ1운동으로 나타난 뜻을 모아 대한민국을 세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1948년 헌법은 1919년에 세운 대한민국을 再建한다고, 또 지금 헌법은 1919년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썼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1919년에 대한민국이 세워졌고, 이를 계승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 헌법에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를 ‘재건’ ‘계승’한 것이라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4월 13일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선포기념일’로 제정해 놓고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관계를 정리해내는 작업은 흡족하지 않았다. 그동안 국사편찬위원회ㆍ국회도서관ㆍ국가보훈처ㆍ독립기념관 등 국가 기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한 자료집 발간과 연구사업을 추진하였지만, 헌법에 밝힌 뜻을 구현해낼 만큼 종합적이지 못했다. 또 그 성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199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여 자료집으로 발간하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러한 논의는 이만열 교수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열매를 맺게 되었다.

 200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사업으로『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한 기구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전문 학자 7명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과 연구편찬실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여기에 국사편찬위원회는 2명에서 3명의 연구원을 간사로 지원하여 사업을 전담시켰다.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발간 사업은 2005년에 시작하여 만 7년만인 올해 2011년(대한민국 93년) 12월에 마무리 짓는다. 처음 세운 계획은 5년 동안 50권을 편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리 수집되어 있는 자료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자료를 수집도 하고 보강하는데다가, 예산마저 제때에 충족되지 않는 바람에, 작업은 2년 늦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당초 계획보다 한 권 더 늘어나 모두 51권을 발간하게 되었다(「별표 자료집 목록 참조」).

 헌법과 공보를 담은 제1권부터 시작하여 임시의정원ㆍ정부 부서ㆍ정당ㆍ단체의 문서와 활동, 국내외 여론 등을 45권에 담아냈다. 그리고 성격이 조금씩 다른 자료들은 별책 6권으로 묶었다. 책 크기는 4ㆍ6배판이지만, 별책 1권인『獨立新聞』만은 신문과 활자의 크기를 헤아려서 판형을 키웠다. 분량은 대개 1,000쪽 정도에 이를 만큼 대형이다.

 이 자료집을 발간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나라 안팎에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들을 모두 수집 정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모두가 쉽게 접하고 읽어서 대한민국의 기원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자료집 51권은 현재까지 수집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두 묶은 것으로, 광복 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성과다. 한문이나 외국어로 된 자료는 원자료를 그대로 영인하여 수록하고,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함께 실었다.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할 준비 작업도 거의 끝나간다. 국민들이 누구나 쉽고도 편리하게 활용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편찬위원들은 이 사업이 단지 자료를 묶어 펴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원을 바로 잡기 위한 것으로 여겨왔다. 이 사업을 국사편찬위원회가 추진한 이유도 거기에 있지만, 편찬위원들의 뜻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이 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일부에서 대한민국이 1948년 8월에 세워졌다면서 ‘건국60년’을 내세우고, 또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혼란을 빚기도 하였다. 이런 소동은 편찬위원들로 하여금 더욱 소명감을 갖고 발간 사업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다만 인력의 한계와 쫓기는 일정 때문에 생긴 아쉬운 점도 없지 않고, 또 앞으로 자료가 새로 발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은 웹사이트에 계속해서 보완해 올리면서, 또 보유편을 발간하면 해결될 것 같다.

 7년이란 사업기간이 편찬위원들에게 결코 짧지만은 않았다. 처음 세운 목표대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 목표를 채우고 마무리 짓는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성원이 큰 힘이 되었음을 밝혀둔다. 귀중한 자료를 선뜻 내놓은 독립운동가 후손과 자료 소장기관, 자료 수집에 앞장서고 도와준 외국인 학자까지, 참으로 여러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 동안 이 사업을 지원해온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도, 마무리를 짓는 이태진 교수까지 네 분이나 된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1년(대한민국 93년)  12월   일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편찬위원회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