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김시권 ( 金時權 )
민족구분한국인
생년월일1) 1884-99-99
출전1) 인사흥신, 142쪽
나이1) 51세(1935년 현재)
출전1) 인사흥신, 142쪽
출신지1) 黃海道 載寧郡 新院面 佳菊洞(원적)
출전1) 인사흥신, 142쪽
현주소1) 大邱府 上町 官舍
출전1) 인사흥신, 142쪽
학력1) 官立平壤日語學校를 졸업
2) 1908년 官立 平壤日語學校 졸업
출전1) 인사흥신, 142쪽
2) 조선공로자, 133
경력및활동1) 1909년 財務署 主事에 임명되고 1910년 10월 朝鮮總督府 郡書記에서 郡守로 승진하여 咸鏡北道 慶源郡, 會寧郡, 穩城郡, 慶興郡을 역임했다. 이어서 道理事官에 임명되어 咸鏡北道 商工課長, 社會課長, 地方課長, 平安南道 産業課長이 되었고, 道事務官이 되어 咸鏡南道 財務部長, 咸鏡北道 內務部長을 거쳐 慶尙北道 參與官 겸 道事務官에 임명되어 産業部長으로 부임하여 1935년에 이른다.
2) 財務署 主事로 임명되어 元山 근무.
會寧으로 전보되어 郡書記가 됨.北鮮人으로서는 최초의 인물1914년 3월 함경북도 慶源郡守에 발탁.
1917년 會寧郡으로 전보.
1918년 穩城郡으로 전보.
萬歲운동을 진압하여 인정 받음.
1922년 道理事官으로서 함경북도商工課長.
1923년 社會課長.
1924년 地方課長.
1929년 平安南道財務部長.
193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慶尙北道 地域에서 多角形의 營農 經濟更生에 분투.
3) 慶尙北道參與官.
正5位 勳5等.
1909年 10月 31日 任 財務署 主事.
1910年 10月 1日 任 朝鮮總督府 郡書記.
1914年 3月 1日 任 朝鮮總督府 郡守.
1928年 3月 10日 任 朝鮮總督府 道事務官.
1929年 5月 25日 敍 勳5等 授 瑞寶章.
1932年 2月 13日 任 慶尙北道參與官 兼 朝鮮總督府 道事務官. 敍 高等官 3等. 慶尙北道 産業部長.
1934年 2月 1日 敍 正5位
출전1) 인사흥신, 142쪽
2) 조선공로자, 133
3) 기념표창자, 731
인물평외모1) 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官界에서는 함경북도에 있게 된다는 것은 流配라고들 생각하여 기피하였다. 아울러서 당시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에 있었던 자들은 고심참담하여 통치의 일 觸手로서 肝膽을 서늘하게 하고 있었는데, 미개의 땅이며, 殺氣가 감돌고,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반항하여 폭동화할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관리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미개의 민초에게 一視同仁의 皇恩을 알려주고, 문화의 백성으로서 생활력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은 어려운 일 중의 어려운 일이었다.
1935년 현재 慶尙北道參與官 겸 산업부장인 金時權과 같은 관리는 이러한 어려운 사업에 거의 모든 힘을 기울여 온 공로자이다.
그의 명랑하고 투철한 두뇌는 전문적인 기술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며, 事務決裁를 부지런히 하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바이다. 그는 온후한 장자의 풍격 속에 메스와 같은 예리함과 강직함을 갖추고 있다. 작년에는 歐美를 시찰한 신지식의 소유자이다.
출전1) 조선공로자, 133
참고문헌조선인사흥신록
조선공로자명감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