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김영석 ( 金永碩 )
민족구분한국인
생년월일1) 1887-05-00
2) 1887-05-00
출전1) 조선공로자, 715
2) 신흥지북선사, 39
출신지1) 京城府 竹添町 2丁目
2) 京城府 樓下洞
3) 京城府 樓下洞(출생지)
출전1) 기념표창자, 865
2) 조선공로자, 715
3) 신흥지북선사, 39
현주소1) 咸鏡南道 高原郡 下鉢面
2) 함경남도 고원군 고원면 관사
3) 咸鏡南道 利原郡
출전1) 기념표창자, 865
2) 조선공로자, 715
3) 신흥지북선사, 39
현직업1) 관리
2) 관료(군수)
출전1) 조선공로자, 715
2) 신흥지북선사, 39
경력및활동1) 正七位
1917年 8月 18日 京畿道 雇員이 됨
1918年 3月 31日 朝鮮總督府 雇員이 됨
1925年 4月 1日 朝鮮總督府 林野調査委員會 通譯生 兼 書記로 임명됨
1932年 3月 3日 朝鮮總督府 郡守가 되고 高等官七等에 서훈되어 咸鏡南道 高原郡守로 근무함
1934年 6月 30日 高等官六等으로 승서하고, 8月 1日 正七位에 서훈됨
2) 1908년 통감부 임시재원조사국 기수로 임명
1910년 토지조사국 기수, 1918년 산림과, 1930년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서기 등을 역임
1932년 함경남도 고원군수로 발탁되어 1935년 현재에 이름
3) 1908년 6월 臨時財源調査局 技手로서 官界에 진출함
1910년 臨時土地調査局 技手에 임명됨
1917년 8월 京畿道 雇員에 임명됨
1925년 林野調査委員會 書記 겸 通譯生에 임명됨
1932년 3월 咸鏡南道 高原郡守로 영전함
1937년 4월 咸鏡南道 利原郡守로 영전하여 1937년 12월 현재에 이름
高原郡守로 재직 시 敎育과 産業에 주력하여 一面一校主義를 실현하고, 土地改良事業의 進捗, 農産物收穫의 激增, 林業, 수산업 등 朝鮮總督府의 北鮮開拓方針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自力更生의 精神的 陶冶에 심혈을 기울임
출전1) 기념표창자, 865
2) 조선공로자, 715
3) 신흥지북선사, 39
참고문헌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
조선공로자명감
신흥지북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