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민대식 ( 閔大植 )
민족구분한국인
출신지1) 京城府 寬勳洞(원적)
출전1) 기념표창자, 953
현주소1) 京城府 寬勳洞
출전1) 조선공로자, 59
가족관계 부1) 閔泳徽(자작)
출전1) 기념표창자, 953
경력및활동1) 군인이었으며 東一銀行 取締役 頭取. 외국으로 건너가 歐美諸國의 금융사정을 조사한 일도 있고, 財界의 동향을 살펴 실무를 통제하는 일은 그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분투 노력을 쌓아 오늘의 閔財閥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朝鮮土地改良會社, 朝鮮信託會社의 取締役, 京城電氣會社의 監査役이며, 商工會議所 副代表로서 公共을 위하여 매진하는 바가 많다. 미곡 문제에도 東上委員이 되어 바삐 노력하고 있다. 그밖에 財界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가 나서서 조정역을 맡아 힘쓰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2) 1920년 8월 韓一銀行 理事에 선출
같은 해 12월 아버지 子爵 閔泳徽의 뒤를 이어 은행장에 취임
1931년 1월 湖西銀行을 합병하여 東一銀行이라 개칭한 이래 10여 년 계속해서 이 은행의 은행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1935년 현재에 이름
1928년 8월 부터 1932년 3월 까지 朝鮮金融制度調査會 委員에 촉탁
1926년 7월 朝鮮土地改良株式會社 理事, 1931년 1월 京城電氣株式會社 監査, 1932년 12월 朝鮮信託株式會社 理事, 1933년 8월 朝鮮麥酒株式會社 理事에 선출
1930년 5월 京畿道評議會員에 官選, 같은 해 12월 商工會議所의 副會長에 선출
출전1) 조선공로자, 59
2) 기념표창자, 953
인물평외모1) 정력가로서, 분투가로서 알려져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명민한 머리를 사용하여 大局的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판단은 항상 정곡을 찌른다. 따라서 그 때와 경우에 맞추어 조치를 하는데 실수하는 법이 없다. 이러한 조치를 하되, 어떠한 장애에 부딪쳐도 물리치고 극복하는 용맹심을 갖고 하기 때문에, 無敵이라고 하는 생각은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판으로 먹고 산다고 하는 소극적인 은행가와는 자못 성향을 달리 한다. 부단한 연구와 조사는 이러한 경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전반적인 산업부문에 대해서는 지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35년 최근에 이르러서는 산업계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이 은행가들 사이에서 제창되고 있는 터이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러한 태도를 지니고 조선 산업계에 군림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활동적이며 진보적인 그의 성격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일개 은행가로서 만족하지 않고, 조선의 산업개발을 이끌어나간다고 하는 포부가 실현되게 된 것이다.
출전1) 조선공로자, 59
참고문헌조선공로자명감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