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박병철 ( 朴炳哲 )
민족구분한국인
생년월일1) 1874-08-19
출전1) 대륙자유, 528
출신지1) 전라북도 전주(본적)
출전1) 대륙자유, 528
학력1) 早稲田大學 정치경제과에 입학 후 퇴교당함
日本大學 법과입학 후 1909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출전1) 대륙자유, 528
경력및활동1) 全州 第一禮門孝行 및 문학가 선비 집안에서 출생
최익현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음
1895년 김홍집 내각 당시 전라남도 청년의 中學職의 품행 및 재능 우수자로서 官費로 東京유학을 함
김홍집내각의 몰락 후 김홍집派로서 몸을 숨기고 東京유학을 중도 포기
京城에서 京城私立外國語學校를 설립후 學監으로 활동
日本에 망명 중이었던 박영효와의 연락파로서 정부로부터 京城私立外國語學校 폐교 당함
1897년 上海로 건너가 민영익과 함께 지냈다고 하는 경력도 있음
1903년 유길준과 함께 東京에 가서 早稲田大學 정치경제과에 입학하고 취업 중 日本居留學生會長으로서 정계와 연관된 사건에 휘말려 대학을 퇴교
日本大學 법과에 들어가 1909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朝鮮으로 돌아옴
한국정부 내각으로부터 書官취임 권유를 받았지만 사절
京城에 晋成法律學校를 설립하고 강사로 교편생활
종교가인 海老名彈正목사, 渡瀨常吉 등과 협력하여 京城 서대문 밖에 京西敎會를 설립하고 교회경영을 맡음
惟民會, 朝鮮經濟會小作人相助會를 조직하여 사회공공을 위해 공헌
1919년 株式會社 三南銀行 創立委員이 되어 설립과 동시에 理事로 추천됨
1922년 10월 주주의 추천으로 株式會社 三南銀行長으로 임명
출전1) 대륙자유, 528
취미특기1) 일본어
출전1) 대륙자유, 528
인물평외모1) 성격이 활발하고 통쾌한 인물
두뇌가 명석하교 총명함
일본유학으로 신지식과 신사상이 풍부하며, 일본어가 유창하여 일본인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임
의협심이 강하고 타인을 위해 정신적 물질적 기여와 공혼을 낙으로 하는 사람임
일본인과 조선인 모두 그의 덕성과 수완을 존경함
문벌가로써 덕망가로써 또한 재력가로써 양반중에서도 유력자의 최선두에 있음
조선인의 선각자
출전1) 대륙자유, 528
참고문헌대륙자유평론 사업인물호 제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