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안종철 ( 安鍾哲 )
민족구분한국인
본관지1) 廣州
2) 廣州
출전1) 관원이력 15책, 397
2) 관원이력 35책, 790
생년월일1) 1881-02-24
2) 1880-03-99
출전1) 관원이력 15책, 397
2) 인사흥신, 16쪽
나이1) 55세(1935년 현재)
출전1) 인사흥신, 16쪽
출신지1) 京畿道 楊州郡 白石面 蟹峴里(원적)
출전1) 인사흥신, 16쪽
현주소1) 漢城 中署 貞善坊 廟洞契 太廟洞 第三統 第一戶
2) 漢城 中署 大廟洞 三統 一戶
3) 忠淸北道 淸州邑 道廳官舍
4) 忠淸北道 淸州郡 淸州邑 東町官舍
출전1) 관원이력 15책, 397
2) 관원이력 35책, 790
3) 인사흥신, 16쪽
4) 기념표창자, 653
학력1) 1904년 2월 28일 入官立漢城日語學校
1907년 3월 26일 受卒業證書
2) 1904년 2월28일 入官立漢城日語學校
1907년 3월26일 受卒業證書
3) 1907년 漢城官立外國語學校 졸업
출전1) 관원이력 15책, 397
2) 관원이력 35책, 790
3) 인사흥신, 16쪽
경력및활동1) 1907년 3월 28일 任度支部主事 敍判任官
1907년 6월 20일 官制改正時任度支部書記郞 敍判任官
1907년 8월 9일 依願免本官
1907년 8월 9일 任度支部書記郞 敍判任官七級
1907년 현재 九品度支部書記郞
2) 1907년 3월28일 任度支部主事 敍判任官
1907년 6월20일 任度支部書記郞 敍判任官
현재 九品度支部書記郞
3) 1907년 度支部 主事에 임명되어 大臣官房秘書課에 근무. 이어 朝鮮總督府 通譯官이 되고, 1913년 總督府 郡守에 임명되어 全羅南道 長興郡, 同 羅州郡, 同 順天郡 郡守를 역임. 1932년 總督府 參與官에 임명되어 忠淸北道에 재근하게 되어 오늘에 이름.
4) 1907년 度支部 主事,
1910년 본부 通譯生, 1913년 長興군수, 1923년 羅州군수, 1929년 順天군수 역임.
1932년 忠淸北道 參與官에 임명.
5) 1907년 3월 28일 官立漢城日語學校1907년 3월 28일 任度支部主事
1907년 6월 20일 官制改正 任 度支部 書記郞
1908년 1월 1일 官制改正에 의해 任 度支部主事 敍判任官四等度支部大臣官房秘書課 勤務
1908년 6월 30일 陞敍 判任官三等
1909년 6월 30일 陞敍 判任官二等
1910년 10월 1일 任 朝鮮總督府 通譯生度支部 勤務
1912년 2월 3일 私立普成專門學校法律科卒業
1912년 4월 1일 長官附 勤務
1912년 8월 1일 韓國倂合記念章을 授與받음
1912년 12월 19일 司稅局稅務課 勤務
1913년 1월 9일 任朝鮮總督府郡守 全羅南道 長興郡 在勤
1913년 1월 9일 敍 正八位
1914년 12월 22일 陞敍 高等官七等
1915년 3월 20일 敍 從七位
1915년 11월 10일 大禮記念章을 授與받음
1915년 10월 27일 陞敍 高等官六等
1915년 12월 10일 敍 正七位
1922년 7월 11일 陞敍 高等官五等
1922년 8월 30일 敍 從六位
1923년 3월 30일 全羅南道 羅州郡 在勤
1924년 6월 30일 敍 勳六等 授瑞章寶
1925년 9월 18일 陞敍 高等官四等
1925년 11월 2일 敍 正六位
1929년 3월 12일 全羅南道 順天郡 在勤
1929년 7월 31일 敍 勳五等 授瑞寶章
1930년 9월 30일 敍 高等官三等
1930년 12월 1일 敍 從五位
1932년 2월 13일 任 朝鮮總督府 忠淸北道 參與官 敍 高等官三等 忠淸北道 文官普通懲戒委員 兼 普通試驗委員
1932년 11월 12일 文官普通分限委員會 豫備委員
1933년 3월 1일 巡査懲戒委員
從五位勳五等
출전1) 관원이력 15책, 397
2) 관원이력 35책, 790
3) 인사흥신, 16쪽
4) 조선공로자, 219
5) 기념표창자, 653
인물평외모1) 10년 동안 군수로서 치적을 쌓았다고 하는 것은 특필할 가치가 있는 동시에 그가 얼마나 덕을 갖춘 사람인가를 증명하는 것임. 더구나 공을 재촉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끝까지 지켜보고 민중의 나아갈 바를 알아차려서 그 민중의 수준에 맞게 응용하고 생활력을 충실하게 하는데 점차 진전시켜서 민중을 싫증나지 않게 하는 것은 牧民의 진수임. 그가 덕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이것을 체득한데에 기인함. 참여관으로서 농촌진흥의 제일선에 서있음.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자신의 욕심을 비워서 민중과 함께 살아간 그의 行藏은 타의 모범이 된다고 할만 함.
출전1) 조선공로자, 219
참고문헌대한제국관원이력서
조선인사흥신록
조선공로자명감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