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항구 ( 李恒九 )
민족구분한국인
이명1) 又堂(호)
2) 又堂(호)
출전1) 인사흥신, 524
2) 조선공로자, 47
본관지1) 牛峯
출전1) 관원이력 2책, 41
생년월일1) 1881-08-21
2) 1881-08-21
3) 1881-08-21
4) 1881-08-99
출전1) 관원이력 2책, 41
2) 대륙자유, 472
3) 사업향인, 518
4) 인사흥신, 524
출신지1) 京城府 玉仁洞 19番地
2) 京城
3) 京城府 玉仁洞 19(원적)
4) 京城府 玉仁洞(원적)
출전1) 대륙자유, 472
2) 사업향인, 518
3) 인사흥신, 524
4) 기념표창자, 889
현주소1) 漢城 南署 長橋契 第二十五統 第六戶
2) 京城府 玉仁洞 19番地
3) 京城府 玉仁洞 19
4) 京城府 玉仁洞 19번지
출전1) 관원이력 2책, 41
2) 대륙자유, 472
3) 인사흥신, 524
4) 조선공로자, 47
가족관계 부1) 李完用(李完用의 차남, 中樞院 副議長 正3位 勳1等 侯爵)
2) 李完用(의 차남)
3) 李完用(한국정부의 총리대신 역임, 후작)
4) 후작 李完用의 차남
5) 李完用
출전1) 대륙자유, 472
2) 반도관재, 5
3) 사업향인, 518
4) 인사흥신, 524
5) 조선공로자, 47
가족관계 배우자1) 金鎭九(安東 출신. 金文圭의 딸)는 1933년에 고인이 됨
출전1) 인사흥신, 524
가족관계 자녀1) 차남 從5位 李丙周(東京 學習院高等科 재학), 3남 李丙喆(東京 學習院中等科 재학), 장녀 李丙吾(東京女子實踐學校 재학)을 두었으며, 장남 李丙吉은 죽은 형 李升九의 양자가 되어 全州 李仁榮의 장녀 李丙田을 부인으로 맞이함(宮內省 式部職 재직)
2) 李丙吉(장남, 宮內省 式部職)
출전1) 인사흥신, 524
2) 조선공로자, 47
현직업1) 이왕직 관리
2) 관리
출전1) 대륙자유, 472
2) 사업향인, 518
학력1) 유년시절 근대적 교육을 받음
출전1) 대륙자유, 472
경력및활동1) 1899년 4월14일 任社稷參奉 判任八等
동 동15일 依免
1905년 6월15일 任公使館三等參書官
1906년 1월19일 陞六 安陵碑閣營建表石豎立時別單
동 1월23일 陞正三品
동 9월6일 任祕書監丞 奏任三等六級
동 동9일 依免
1907년 3월20일 任奉常司副提調 奏任三等
동 4월20일 陞從二品 太祖高皇帝手植松碑改豎碑閣新建時別單
동 동26일 依免
동 7월23일 任祕書監丞 勅任三等二級
1907년 9월16일 兼任掌禮院掌禮
동 10월4일 特敍勳三等太極章景孝殿酌獻禮時兼掌禮祕書丞
동 동31일 依免兼任掌禮
동 동 陞嘉義 洪陵裕陵親祭時兼掌禮祕書丞
2) 韓國政府 시절 관리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조정의 중직에 앉음
1911년 2월 李王職事務官으로 선발되어 奏任官 3等으로 임명받음, 이후 德壽宮事務長職務代理, 儀式課長 역임
1915년 11월 宮內 奏任官總代로서 大禮參列의 영광을 입고 京都에 출장
1920년 10월 30일 李王職 禮式課長에 임명되어 贊侍 겸임, 高等官 2等의 勅任官이 됨과 동시에 正5位 勳2等의 은총을 입으며 1923년 현재에 이름
3) 李王職 禮式課長
男爵
4) 일찍이 관리들의 세계에 들어와 한국 정부에서 중직을 맡았음
한일합병 이후인 1911년 11월에 李王職 事務官으로 임명되어 高等官3等으로 자리매김 하였음
德壽宮 事務長 代行, 儀式課長, 禮式課長을 역임하고 차관으로 승진
1939년 현재 李王職次官으로서 재직
男爵
5) 1924년 2월에 분가를 하여 일가를 만듦
대한제국시대에는 秘書監丞(勅任), 承寧府 侍從(勅任)에 임명되어 大日本國大使 수행원으로써 도일함
그 사이에 勳3等 太極章을 수여받음. 또 일본국 旭日3等章을 수여받음
1909년 南西巡幸을 수행
1911년 12월에 李王職 事務官에 임명됨
1920년 10월에 禮式課長에 임명됨
1921년 6월에 李王贊侍를 겸임함
1926년 9월에 掌侍司長이 됨
1932년 7월에 李王職 次官에 임명되어 오늘날(1935년)에 이름
오늘날까지 국가(일본)에 기여한 점이 매우 커서 1922년 8월에 勳2等에 서임이 되어 瑞寶章을 수여받음
1932년 8월에 勳1等에 서임이 되어 瑞寶章을 수여받음
1915년 11월에 大正天皇 즉위 예식에 참석
1924년 1월에 皇太子殿下御慶事에 참석.(특히 1924년 2월에 남작을 수여받음)
1925년 5월에 兩陛下御成婚滿25年御祝典에 참가함
1927년 2월에 大正天皇御大葬儀에 참가함
이어 1928년 12월에 御大典에 참가하는 등 많은 영광을 입음
從3位 勳1等, 남작
6) 병합 전후 분주하게 선처하여 능히 大局을 그르치지 않았으며, 1911년 李王職 事務官에 임명되었으며, 다시 1920년에는 禮式課長, 이듬해에는 李王贊侍, 이어 掌侍司長, 나아가 李王職 次官이 되는 등, 그 공로가 다년간에 걸쳐 현저한 바가 많았는데, 개중에는 세인들이 잘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공로에 의해 勳1等에 서훈되었으며, 다시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7) 1911년 12월 5일 李王職 事務官에 임명, 高等官三等 서임 李太王殿下附
1918년 4월 9일 李太王殿下附 被免, 儀禮式課長
1920년 10월 30일 禮式課長에 보임
1921년 6월 22일 李王職 贊侍로 高等官二等에 서임되어 掌侍司 勤務
1926년 9월 14일 掌侍司長에 보임
1932년 7월 1일 李王職 次官에 임명, 高等官一等 서임
출전1) 관원이력 2책, 41
2) 대륙자유, 472
3) 반도관재, 5
4) 사업향인, 518
5) 인사흥신, 524
6) 조선공로자, 47
7) 기념표창자, 889
취미특기1) 야구, 테니스, 당구
출전1) 대륙자유, 472
인물평외모1) 천성이 총명하고 활달하며 패기가 넘침
재주가 많으며 강직한 성격이고 남자다움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음
연구심이 왕성하여 국내외의 신간도서, 신문, 잡지 등을 탐독하며 국내외의 신지식을 이해하고 정치, 사상, 사회문제에 대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식견을 가지고 있음
식견이 부족하고 주색을 즐기는 다른 문벌들과는 달리, 자지절제심 강하고, 단정하며 직무에 대한 책임감 강한 촉망되는 인물
2) 당당한 타입이며, 어두운 면이 없이 쾌적한 풍채와 생각을 가지고 있음
3) 그는 돌아가신 李完用 侯爵과 닮은 총명한 인격자
소위 정치가 기질을 가지고 종횡무진하며 솜씨를 발휘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사리가 밝음
부모의 후광이 있긴 했지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는데 그의 실력과 경력이 작용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음
4) 청렴 고풍의 인물로, 인격 또한 아주 고매함
한문학에도 조예가 깊으며, 小壯 秘書監丞, 承寧府侍從 등 勅任官으로 임명되었는데, 빼어나게 문서에 밝아 전도가 촉망받는 수재였기 때문에 속속 일본 내지에 파견되어 그 사명과 임무를 다하고 朝鮮 官界에서의 李恒九의 존재를 세상에 알림
출전1) 대륙자유, 472
2) 반도관재, 5
3) 사업향인, 518
4) 조선공로자, 47
참고문헌대한제국관원이력서
대륙자유평론 사업인물호 제8
반도관재인물평론
사업과 향인 제1집
조선인사흥신록
조선공로자명감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