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제목(344) [韓·淸 문제에 대한 참고서류 송부 件]  
문서번호機密統秘發第五三八號  
발신일明治四十年十二月三日 ( 1907년 12월 03일 )  
발신자 總務長官 鶴原定吉  
수신자 外務次官 男爵 珍田拾己  
(344) [韓·淸 문제에 대한 참고서류 송부 件]
機密統秘發第五三八號
지난 11월 15일자 送 제134호로 말씀 전한 承文院 보존 啓下咨文冊 열람 건은 조속히 한국정부에 조회하였는바, 위는 同院에서 분실하여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현존하는 책자 중 勘界 건에 관하여 청국정부에 송치한 공문과 1711년(康熙 50) 韓·淸 양국 간에 왕복한 공문이 기재되어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므로 이 사본을 첨부하여 別紙와 같이 李 總理大臣으로부터 회답이 있었사오니 그리 알아주시기 바라며 이에 회답합니다.
明治四十年十二月三日
總務長官 鶴原定吉
外務次官 男爵 珍田拾己 殿

○ 別紙 一
문서제목承文院 古文書 열람 件  
承文院 古文書 열람 件
貴國 宮內府 承文院에 보존되어 있는 同院 啓下咨文文冊, 즉 옛날 韓·淸 양국 간에 왕복한 외교문서 중 국경문제에 관한 것은 이번 間島 문제에 관하여 정밀하고 상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일본 外務省으로부터 말씀 전해온 사연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급히 조사하여 현존 문서목록을 작성해 송부하여 주시기 바라며 이에 조회합니다.
明治四十年十一月十九日
長官
李 內閣總理大臣 宛

○ 別紙 二
문서제목承文院 古文書 열람방법 한국정부에 교섭 件  
承文院 古文書 열람방법 한국정부에 교섭 件
한국 宮內府 承文院에서 보존하고 있는 同院의 啓下咨文冊, 즉 옛날 韓·淸 양국 간에 왕복한 외교문서 중 국경문제에 관한 것이 작년 當省 囑託 內藤虎次郞이 열람할 것을 한국정부에 청원하였지만 동 정부는 무슨 이유인지 그것을 열람시키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번 間島 문제에 관하여 다시 동 문서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으므로 동 정부에 교섭한 뒤 위 열람에 관하여 동 정부의 승낙을 얻으시도록 의뢰하고자 합니다. 만약 승낙하시면 內藤에게 출장조사를 시킬 것이므로 一報 부탁드리고자 위를 말씀드립니다. 敬具.
明治四十年十一月十五日
外務次官 男爵 珍田捨巳
統監府 總務長官 鶴原定吉 殿

○ 別紙 三
문서제목[古文書는 學部大臣의 소관이라는 照覆]  
[古文書는 學部大臣의 소관이라는 照覆]
삼가 말씀드립니다. 貴函은 閱悉하였는바, 우리 部 소관 서류는 다만 이것이 地方帳籍 및 행정상의 文牒인데 그 중 조사할 필요가 혹시 있으시다면 지적해 주시면 바로 마땅히 仰副計料이오나 역사 조사에 관한 서류에 대해서는 학부대신에게 협상하심이 아마 편의하실 것이므로 이에 仰覆하오니 조량하심을 요합니다.
光武十年七月二十一日
內部大臣 勳一等 李址鎔
統監府 總務長官 鶴原定吉 貴下

○ 別紙 四
문서제목[古文書 열람 의뢰 件]  
[古文書 열람 의뢰 件]
삼가 말씀드리고자 함은 이번 우리의 촉탁에 의하여 한국의 역사 조사를 위해 내한하신 內藤虎次郞 氏의 조사 상에 제공하기 위하여 貴部 소관 문서류 중 지장이 없는 부분을 展見하고 싶다는 뜻을 출원하였으므로 이것을 허락하시도록 이에 의뢰 말씀드립니다. 敬具.
明治三十九年七月二十一日
長官
李 內部大臣 閣下

○ 別紙 五
문서제목[承文院에 보존 중인 啓下咨文冊 분실, 勘界之件 공문 왕복서류 사본 송부 件]  
[承文院에 보존 중인 啓下咨文冊 분실, 勘界之件 공문 왕복서류 사본 송부 件]
承文院에서 보존 중인 啓下文冊, 즉 옛 韓·淸 양국 간 왕복 외교문서 중 이번 間島 문제에 관한 현존 문서의 목록을 작성하여 송부하는 것으로
제454호
貴 來文을 接閱하고 이를 조사하온즉, 前 承文院에 보관 중인 啓下咨文冊 중 참고할 건을 이미 그 院으로부터 閪朱하여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며, 勘界 건으로 청국정부에 송치한 공문이 현존 책자에 기재된 바 있사옵고, 그 외 옛날 韓·淸 양국 간 왕복문안(同文彙考)을 溯閱하온즉, 康熙 50년간 양국정부가 서로 인원을 파견하여 白頭山 분수령 상에 정계비를 건립할 때에 이미 왕복공문이 있으므로 아울러 別紙 謄附하여 이에 仰覆하오니 조량하심을 요합니다.
隆熙元年十一月三十日
太子少師 內閣總理大臣 李完用
統監府 總務長官 鶴原定吉 閣下

○ 別紙 五○ 附屬書 一
문서제목[禮部知會 白山査境令 本國 照管咨]  
[禮部知會 白山査境令 本國 照管咨]
禮部에서 조회한 것은 1711년(康熙 50) 8월 4일 太學士 溫達 등이 상주하여 내려진 奉旨를 개봉하였습니다. 금년에 穆克登 등이 鳳凰城에서 長白山에 이르기까지 우리 변경을 조사하는데 머나먼 길과 망망한 江水로 인하여 즉시 도착할 수 없어서 내년 봄 해빙기를 기다렸다가 별도로 담당자를 차출하여 穆克登과 함께 義州 江源에서 小船을 건조하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만일 거룻배로 전진할 수 없으면 즉시 육로를 택하여 土門江(우리의 豆滿江)에 가서 우리 지방을 조사하게 됩니다. 이번 일행은 특히 우리나라의 변경을 조사하게 되는데 저들 나라와는 교섭하지 않고 단지 우리 변경 내의 노정이 멀고 또 지방이 매우 험하여 만일 중도에서 阻隔되는 곳이 있으면 조선국에 명하여 조금씩을 맡아서 관장하도록 이 사실을 곧 해당 部에 명료하게 작성하여 曉諭하는데 금년에 들어오는 進貢官員에게 抄錄하여 該王에게 보내서 명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고, 조선국 進貢正使인 礪山君枋 등으로 하여금 該王에게 抄錄을 송부하게 한 것 외에 조선 국왕에게 이것을 다시 조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지난번에 보낸 咨文과 함께 알아보고 시행한다 운운하였습니다.
康熙五十一年二月初七日

○ 別紙 五○ 附屬書 二
문서제목[接伴使 請偕行 白山帖]  
[接伴使 請偕行 白山帖]
조선국 接伴使 議政府 右參贊 朴權과 咸鏡道觀察使 李善溥는 삼가 欽差大人 烏喇摠管 閤下에게 이 서한을 드립니다. 삼가 말씀드리면 대인께서 황명을 받으시고 욕된 遠邦을 오심에 산천을 넘고 건너오는데 險阻한 곳을 먼저 극복하면서 志氣를 늦추지 않으시고 용감하게 정성을 다한 것과 통솔력을 과시하신 데 대하여 진정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일으키게 하여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本職 등이 외람되게 접대 임무를 맡아 중화사절을 맞이하게 되어 감히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上께서 존경하시는 뜻을 받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궁벽한 郡邑에서 물력이 보잘 것 없으므로 접대하는 절도도 또한 갖추지 못하여 朝夕으로 불안한 생각을 금할 길 없습니다. 다만 下僚部署들에게까지 죄를 짓게 되어 이것을 두려워하였는데 불의에 閤下께서 자세한 데까지 가엾이 여기면서 동정하시어 지나치게 증가시키는 節目을 생략하게 하고 음료와 省饌은 모두를 이동 주방에서 공급하게 하였으며 조금도 敝邦에게 번거로움이 없게 하시니 감사한 반면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곁에서 얻어 듣건대 閤下께서 두 大江의 水源을 자세하게 살피기 위하여 査界使行嚮導를 곧 長白山 山頂으로 향하도록 지휘하셨다 하오니 本職은 이에 대하여 우려해 마지못할 일입니다. 대저 정상의 天池水가 넘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鴨綠江 상류가 되고 산 밑에서 山頂에 이르기까지가 수백 리나 되며 이 모두가 깎아지른 듯한 언덕과 울퉁불퉁한 암벽으로 絶壑深谷을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렵인과 소작농민들이 겨우 서로가 의지하여 건너갈 수 있는 곳이라 巴蜀으로 가는 길에서 井陘과 같은 험준한 곳은 족히 그 험악한 것이 이에 비교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閤下께서 천금과도 같은 귀하신 몸으로 경솔하게 헤아릴 수 없는 위험한 곳을 건너가려 하면서 신명께서 扶護해 주실 것에 맡긴다면 반드시 前途에서 굴러 넘어지게 될 것이므로 이것을 本職 등은 위험하고도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이 경계를 조사하려는 것을 돌아다보면 진실로 황상께서 敝邦을 걱정하시는 데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奸民들이 월경하여 사단을 발생시키려는 폐단을 방지하고자 함이요, 대인께서 기필코 자신이 직접 현지를 시찰하시고 결정하고자 한 것이니 역시 직분을 다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산길의 위험한 것이 그와 같으며 귀한 몸으로 오르고 건너가는 곳이 이와 같이 곤란한데, 나라를 위하는 정성이 비록 간절하다고 하지만 위험한 것을 경계하는 것도 역시 중대하므로 閤下께서는 이에 대한 신중한 방도를 酌量하시지 않고 행하려 하십니까?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한 마디로 여기 한 가지 해볼 만한 것이 있으니 극히 참담하고 외람된 일이라 그 허물됨을 피할 길은 없으나 관대하게 생각해 주실 것이라는 인자하심을 믿고 이것을 감히 개진하는 바입니다.
지금 閤下의 행차를 단지 紙筆墨과 大官 및 통역관 각각 1명과 무장군인 20명만으로 한다면 간략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騎馬에 각자의 식량을 실으면 모두가 38匹, 이들 말에는 모두 마부가 딸리게 되므로 敝邦 관원들의 陪行者가 역시 5~6명이며 각각 騎馬가 있고 이에 따라가는 마부도 있으므로 노정 안내인을 합하면 그 수가 거의 70여 명입니다. 한 사람이 각자의 15일 양곡을 휴대하게 된다면 험난한 길에 약한 馬匹에 중량을 실을 수 없게 되고, 만일 駄馬들이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곧 이것을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감당하여 움직이게 하려면 말이 80여 匹, 사람이 130여 명이 소요됩니다. 長白山의 高大함은 국내에서 제일이며 비록 한여름이라 할지라도 얼음과 눈이 녹지 않는데, 하물며 지금 큰 비가 연일 계속되어 이미 장마철로 점차 옮겨가고 있어 만일 산골짜기에서 갑자기 烈風과 폭우를 만나게 되면 허다한 인명과 가축들이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삼가 閤下께서 沿路를 지나올 때 칭찬하는 소리가 크게 번져 갔는데도 단지 이 한 가지 일로 폐단을 끼치게 될까 염려됩니다. 한 지아비의 부상자를 생각하기를 황상께서는 一身과 같이 보전하시려는 어진 생각이 그것입니다. 지금 만일 불행하게도 이 같은 일을 당하게 된다면 단지 閤下의 측은한 마음으로 참지 못하는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찌 황상의 政事에 해로움을 끼치게 되고 손상되지 않겠습니까? 本職 등의 어리석은 의견으로 한 가지 득책이 있습니다. 鴨綠江水는 산 정상 天池에서 발원하여 그 水道의 分派와 맥락의 연접에서 산골짜기가 분명하기 때문에 설명을 들을 필요 없이 한 번 보면 알 수 있으므로 閤下께서 다만 수행자 중 발 빠르고 날쌘 명민한 자 2~3명을 선택하여 敝邦 譯官 및 안내인과 함께 가서 조사하게 하고, 또 화가로 하여금 현장을 그림으로 寫生하여 오게 하면 江水의 발원과 산길을 了然하게 눈에 익히고 마음속으로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므로 이것을 상주하게 되면 아마 불가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閤下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듣건대 閤下께서는 本職 등으로 하여금 따라가지 말고 미리 茂山에 가서 명을 대기하라 하셨는데, 이 일은 필연코 閤下께서 本職 등의 노쇠한 상태를 가엽게 여기어 이 같은 곡진한 하교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오나 本職 등은 이미 국왕의 명을 받들어 이번 奉命使行을 접대하게 되었는데 자신들이 편안한 이곳에 머물면서 閤下로 하여금 홀로 위험한 길을 무릅쓰게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大義의 분수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오니 은밀히 원하옵건대 閤下께서 굽어 살피시고 특별히 本職 등 중 한 사람을 수행하도록 허락해 주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康熙五十一年五月初七日

○ 別紙 五○ 附屬書 三
문서제목[勅使 問議 立柵 便否咨]  
[勅使 問議 立柵 便否咨]
황제의 뜻을 받들어 査邊하는 穆 大人 등은 朝鮮接伴使인 관찰사에게 移文하여 邊界를 조사하였습니다. 제가 친히 白頭山에 이르러 鴨綠江과 土門江 두 강을 審視하였더니 모두가 白頭山 근저에서 발원하여 동서 양편으로 분류합니다. 원래 정하기를 강북은 大國의 경내이고 강남은 조선의 경내입니다. 세월이 이미 오래 되어 다른 일은 논의치 않습니다. 두 강의 발원인 분수령에 비를 세워 土門江源으로부터 흐름을 따라 내려가 審視하니 흐름이 수십 리에 이르러 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돌을 따라 暗流를 누벼 100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큰 물줄기가 나타내고 茂山에 흐릅니다. 兩岸은 풀이 드물고 땅은 평평하여 사람은 邊界를 모릅니다. 왕복하여 경계를 넘고 집을 지으며 지름길이 交雜합니다. 그러므로 이에 接伴使와 관찰사가 함께 상의하여 茂山·惠山이 서로 가깝고 물이 없는 땅에서 어떻게든 堅守를 설립하여 衆人으로 하여금 邊界가 있음을 알려 감히 경계를 넘어 일이 생기지 않게 한다면 바라건대 황제께서 生民을 진념하는 至意에 부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彼我 양편은 무사할 것입니다. 이 相議를 위해 공문으로 조회합니다.
康熙五十一年五月二十八日

○ 別紙 五○ 附屬書 四
문서제목[設柵 便宜呈文]  
[設柵 便宜呈文]
조선국 接伴使 議政府 右參贊 朴權, 咸鏡道觀察使 李善溥 등이 삼가 아룁니다. 경계를 審定하여 柵을 세우고 표시를 세워서 후일의 폐단을 없앤다는 것을 엎드려 생각건대 僉 大人께서 기꺼이 황명을 받들어 敝邦에 辱蒞하고 險阻를 跋履하여 交界를 査明해서 분수령 상에 비를 세우고 표시를 하였습니다. 또 土門江源이 暗伏潛流하여 명백하지 못함을 염려하여 이미 圖本으로 친히 스스로 立柵의 便否를 지시하였고, 또 面詢을 했어도 아직 그것이 잘 詳盡하지 못했을까를 두려워하여 이 공문을 보내 다시 묻는 바입니다. 그 우러러 황상의 一視同仁을 받들고 엎드려 小邦生事의 端을 軫念하는 이유로 委曲, 諄複이 오로지 이에 이르러 감격, 감탄이 비유할 바 없습니다. 전날 閤下는 設柵의 편의에 관해 엎드려 詢問을 받으셨습니다. 小職 등은 木柵은 장구의 계책이 아니며, 혹은 築土하거나 혹은 聚石하거나 혹은 樹柵하여 농한기를 기다려서 부역을 시작하려는 뜻과 大國人이 監董하는가의 여부로 仰稟했습니다. 즉 大人은 생각하시기를, ‘이미 경계를 정한 후이므로 표시를 세울 때는 大國人이 來監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또 농민이 나와서 부역할 것이 아니며 하루가 급한 일도 아니다. 監司가 주장하되 편의에 따라 공사를 시작하여 2~3년 후 완료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또한 무방하다. 매년 사절이 올 때 공사의 정황을 통역관으로 하여금 本官에게 전언한다면 혹은 황상께 보고하는 길이 없지 않음을 敎로 삼으므로 本官 등은 사퇴 후 이 일을 국왕께 伏聞할 것이다. 공문 중 양국의 변경이 무사한 길은 이 외에는 도달할 바 없다.’ 삼가 글을 올림으로써 대답합니다. 엎드려 이를 閤下께서 굽혀 恕察을 가하신다면 幸甚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바야흐로 具呈을 행하는 바입니다.
康熙五十一年六月初二日

○ 別紙 五○ 附屬書 五
문서제목[勘界 節略 校閱轉奏事 北京 禮部 咨]  
[勘界 節略 校閱轉奏事 北京 禮部 咨]
文을 1886년(光緖 12) 10월 6일에 접수하여 열독하였던바,
北洋大臣은 咨文으로 圖們界址의 재감정을 촉구하는 건에 대하여 이미 答咨에서 개진한 내용에 따라 敝邦에 德源府使 李重夏를 土門勘界使로 임명하여 다시 파견하기로 하고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현장으로 가서 재감정할 것을 훈령하였던바, 여기 금년 6월 27일 勘界使 李重夏의 장계에 의하면 3월 19일 德源府에서 출발하여 4월 5일 會寧府에 도착해 吉林派員督理商務 秦煐과 회합하고 大圖們江源인 洪丹水와 紅土山水 등의 兩水에 대하여 여러 차례의 변론을 거쳐 비로소 22일 함께 長白山으로 들어가 먼저 紅丹의 水源이 거의 本國의 내지에 관계되고 있다는 것과 또 圖典에도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紅土山 水源의 끝을 찾아서 立碑處에 도착하여 두루 산수의 정형을 조사하고 돌아와 홀로 생각해 보건대 總署奏議 중에서 모든 것은 大圖們江을 확실하게 파고들어 경계에 관한 것을 지적하여 입증하면 자연 분명해질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이 요령입니다. 지금 이미 두루 水源을 조사해 보건대
『欽定會典』과 『一統輿圖』에서 派流에 대한 조목을 하나하나 대조하여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즉, 紅土水가 大圖們江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의심할 바 없으나 秦煐은 紅土水의 거리가 碑보다도 오히려 더욱 멀고 또 분수령과는 연접되어 있지 않고 별도의 한 派流를 찾아 이름하여 石乙水라 하면서 요컨대 경계를 정하고자 하여 石乙水라는 것은 茂山府의 長坡沿江인 土水를 따라 올라가서 80리에 미치지 못하는 紅土山 10여 리 되는 곳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내려와서 다시 紅土水 쪽으로 돌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 水源은 小白山의 동남쪽 기슭 30리쯤에서 나오는 즉 山水이며 그 水流가 조금 길어서 역시 『一統輿圖』에 등재되어 있으므로 秦煐은 石乙水라 주장하고 重夏는 紅土水라 주장하게 되어 서로 자기의 주장을 양보하지 않고 끝내 귀결되지 못하였으므로 이것을 다시 협상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경계 감정은 茂山 沿江에서 시작하여 長白山 중 長山嶺의 서쪽에 있는 紅土水와 石乙水 합류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별도로 고증하여 결정하였는데 별다른 의문점 없이 그 합류처 이상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兩水까지 모든 감정을 거쳐서 이것을 도면으로 작성·조인하고 조회로 秦煐에게 總署의 經略大臣에게 보내도록 요청하고 결정되는 것에 따라 실제로 장계를 갖추겠다는 等情이 있습니다. 이 圖們界址는 지난번 감정에 따르겠지만 분명하지 못한 것은 水源이 서로 상치되는 데 현혹되어 단지 水源을 상세히 연구하고 舊界를 되풀이 하면서 설명하였을 뿐입니다. 이제 재감정하는 날에 紅丹水說은 다시 변론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紅土水·石乙水 합류처 이하의 곳은 다행스럽게도 이미 감정되었으며, 그 합류 이상인 紅土水·石乙水의 두 水源은 아직 그대로 협의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삼가 『欽定皇朝通典』에서 살펴보건대 吉林은 조선이 圖們으로 경계를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皇朝一統輿地全圖』에서는 長白山의 전면에 鴨綠圖們 두 강 사이의 無水處에 점선으로 그어 놓은 경계표식이 되어 있었으며, 『盛京通誌』에서 烏喇寧古㙮의 관할이라 하고 있으며 아울러 남쪽은 長白山 그 남쪽에 朝鮮界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감정에서 紅土山水가 長白山 동쪽 기슭에서 나온다고 하고 그 최초 발원처와 『圖典』에 소재된 大圖們江과 부합하고 또 분수령의 碑堆와 서로 문장이 잘 맞으며 石乙水는 小白山의 동남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제2파로 長白山과는 상당히 먼 곳이고 이곳의 定界是否의 고집은 응당 유민들의 安揷 건과도 연계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더욱 급합니다. 아울러 天朝에서 각별한 은혜를 베풀어 이로 인한 失地가 없도록 하는 것이 매우 다행한 일로 사료됩니다. 이제 경계 勘定書와 작성된 도면에 조인한 것 1통과 談錄한 公文節約 1책을 첨부하여 조회하오니, 번거롭지만 部堂 大人께서 조사 열람하시고 이것을 다시 天陛에 奏達하여 참작 결정하시어 시행하는 데 힘쓰도록 소상하게 공인해 주시면 이 모든 것이 은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咨文으로 요청하오니 살펴보시고 시행해 주시기 바라오며, 이 咨文이 大人의 안하에 도달되기를 바라면서 禮部에 보냅니다.
禮部
光緖十三年八月十九日

○ 別紙 五○ 附屬書 六
문서제목[勘界 節略 校閱轉奏事 北洋衙門 咨]  
[勘界 節略 校閱轉奏事 北洋衙門 咨]
咨案을 1886년(光緖 12) 10월 6일 접수하였던바,
귀 대신께서 圖們江界址의 재감정을 재촉하는 咨文에 대하여 그 당시 귀 咨案에 따라 조처한다는 答覆咨文을 발송한 바 있고, 回咨 사항에 따라 弊邦에서는 德源府使 李重夏를 土門勘界使로 임명하여 다시 파견하기로 하였으며 내년 봄에 현지로 가서 재감정하도록 조회하였던바, 여기 금년 6월 27일 勘界使 李重夏의 장계에 의하면 3월 19일 德源府를 출발하여 4월 5일 會寧府에 도착, 吉林派員督理商務 秦煐과 회동하여 大圖們江源인 洪丹河와 紅土山水 兩水에 대한 변론을 거쳐 비로소 22일 함께 長白山으로 들어가서 紅丹水源을 먼저 조사하였습니다. 모두가 本國의 내지에까지 관계되기 때문에 역시 『圖典』과 부합되지 않고 다시 紅土山 水源 끝까지 조사하여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입증하였던바, 紅土水가 大圖們江을 뚫고 흘러내려가는 것이 확실하며 의심할 바 없는데도 奏煐은 紅土水가 碑의 거리보다 더 멀리 있고 또 분수령과는 연접되지도 않으므로 다른 한 派流를 찾아서 이름을 石乙水라 하고 茂山府의 長坡를 따라 흐르는 紅土水에서 올라가기를 80리쯤 못 미쳐서 紅土山의 立碑處에 이르기까지 산수 정형을 일주하며 조사하고 돌아와서 홀로 생각하여 보건대, 總署奏議 중에 모든 것은 大圖們江을 확실하게 파고들면서 경계의 證跡을 지적하였으므로 지금은 水源을 일주하면서 감정하였기 때문에
『欽定會典』과 『一統輿圖』에서 派流들은 모두 10여 리 되는 곳에서 서남쪽으로부터 흘러오고 紅土水로 흘러 들어와서 되돌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 원류는 小白山 동남쪽 기슭 30리쯤에서 흘러나오는 小水이며, 그 水流가 좀 길다 하여 역시 『一統輿圖』에 등재되어 있으므로 秦煐은 石乙水라 주장하고 重夏는 紅土水라고 주장하게 되면서 양자가 서로 양보하지 않으므로 끝내 귀결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에 다시 협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계 감정은 茂山에서 강을 따라 長白山의 長山嶺 서쪽 紅土水와 石乙水의 합류처까지 하나하나 참고하면서 결정하였지만 별다른 의문점 없이 그 합류처 이상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兩水까지 모든 감정을 거쳐 이것을 도면으로 작성하여 양측이 날인하고 조회에 의하여 秦煐으로 하여금 總署에 상정하게 하여 재결이 나는 대로 실제에 따라 장계를 작성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번에 조사한 圖們江의 界址는 이미 지난번 감정에 의거한 것이며 분명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水源을 서로 어긋나게 보고 있기 때문에 水源을 더 상세하게 연구해야 하며 舊界를 되풀이하여 설명하였을 뿐입니다. 이번 재감정에서 ‘紅丹水說’은 기필코 변론의 여지가 없고 紅土水·石乙水의 합류처 이하는 다행히도 이미 감정되었으나 합류처 이상인 紅土水와 石乙水의 兩源은 그대로 협의하지 못하여 삼가
『欽定皇朝通典』에서 살펴보건대 吉林에서는 조선이 圖們江을 경계삼고 있다고 되어 있으며, 皇朝의 『一統輿地全圖』에서는 長白山 앞 鴨綠·圖們 두 강 사이의 無水處에 점으로 그어놓은 경계표식이 있으며, 『盛京通誌』에서는 烏喇寧古搭에서 관할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남쪽으로는 長白山에 이르고 그 남쪽이 朝鮮界라고 적고 있으며 이번 감정에서 紅土水는 長白山 동쪽 기슭에서 시작하는 水源處라는 것이 『圖典』에 등재되어 있으므로 大圖們江과 서로 부합되며 역시 분수령에 碑가 서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전후사를 대조하여 볼 때 石乙水는 小白山의 동남쪽 기슭에서 흘러나오는 제2파로 長白山과는 매우 원거리에 있는데도 이웃을 정계로 하려는 집착과 是否는 응당 유민들의 안착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 한층 급무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天朝의 특별한 사려 하에 寸土의 失地도 없게 해주는 것이 다행이므로 이에 경계 감정에 의한 지도에 會印한 것과 회의록 槪述書 1책을 照會書에 첨부하여 송부하오니, 번거롭지만 귀 대신께서 교열하시고 다시 황제께 보고하여 참작·결정하신 후 시행하는 데 힘쓰도록 공문으로 소명하게 공인해 주시면 이 모든 것을 은덕으로 알고 咨文으로 요청합니다. 살펴보시고 시행하도록 해 주시기를 바라오며 이 咨文이 귀 안하에 도달되기를 바라면서 이 咨文을 보냅니다.
欽差北洋通商大臣衙門
光緖十三年八月十九日

○ 別紙 五○ 附屬書 七
문서제목[將 圖們江源 勘界 情形 詳細轉奏以昭公允事北洋大臣衙門咨]  
[將圖們江源勘界情形詳細轉奏以昭公允事北洋大臣衙門咨]
1888년(光緖 14) 3월 5일에 접수한 바 있으며 귀 대신의 咨文에서 말씀하시기를, 1888년(光緖 14) 1월 11일에 접수한
總理衙門의 咨文에서 말하기를, 지난번 吉林將軍의 咨文에서 조선과 吉林이 회동하여 圖們江界를 감정한 案에 의하면 현지 조사한 바 있는 石乙水가 紅土山水로 들어가서 되돌아 나가는 곳이 大圖們江으로 명백해졌고 小白山에서 측량하면 鴨綠江 上源과의 거리가 42리인 것과 서쪽이 鴨綠江이요, 동쪽이 土們이라고 하는 두 가지 명칭이 모두 적용되고 있고 하나하나가 딱 들어맞으므로 이곳을 界址로 결정하도록 할 것과 함께 경계비를 설정하도록 요청한 사실에 의하여 벌써 前文을 抄錄한 것과 界碑의 折本 1건과 繪圓 1장을 전년 10월 21일 咨文으로 귀 대신에게 보내서 대조하여 조사하도록 한 것이며, 또한 12월 14일에 접수한 軍機處에서 吉林將軍에게 교부한 사실을 보고하여 批旨에 따라 吉林圖們江界址를 재감정할 수 있도록 인원의 파견을 희망한 사실과 繪圖와 附說에 의하여
批旨로 재결을 요청하면서 국경을 바로 잡아 변방 인민들을 편안하게 할 것이라는 글에 의하여 1887년(光緖 13) 12월 13일
황제께서 朱筆로 비평하신 비답을 받들고 해당 衙門에서 이에 대한 도리를 알면서 지도 및 皇命을 발하여 이에 따르도록 하는 原書를 抄錄하였습니다. 또
諭旨를 삼가 기록한 것과 대조한 繪地圖 1장을 咨文으로 귀 대신에게 속달시켜 이것을 조사하여 다시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咨文으로 그 장군이 所奏한 각 항을 대조 조사케 하고 이에 따라 타당한 派員을 현장으로 보내 합동 처리하게 한 일을 끝내고 그대로 그 현상에 따라 회답 咨文을 작성하라는 요청의 咨文으로 알려온 사실이 本 閤爵大臣에게 도착한 것을 접수하였습니다. 지도에 존재한 것을 조사한 외에 이에 상응하는 咨文으로 貴國 왕에게 조회하오니, 번거롭지만 이 案을 조사하여 신속하게 타당한 관원을 파견해서 吉林委員과 회동하여 신속하고 타당한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일 없이 일을 끝마치고 실제에 의한 회답 咨文으로 보고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시행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접수하였습니다. 그 즉시 原派勘界使 李重夏에게 훈령하여 현장으로 가서 타당한 처리를 하게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李重夏의 狀啓에서 말하기를, 臣이 지난해에 吉林 派員 秦煐과 德玉 등을 만나서 다시 圖們江源을 감정하기 위하여 茂山에서 강을 따라 100여 리나 되는 長白山에 들어가서 고르게 감정하기 위해 紅土山水와 石乙水에 도착하여 달을 넘겨 가면서 변론하였지만 끝내 귀결시키지 못한 것을 이미 재감정한 상황을 상세하게 장계한 案이 있습니다. 이에 內務府의 공문에 힘입어
敎示를 받들고
北洋大臣의 咨文이 도착한 것을 접수하여 臣은 현장으로 가서 타당한 주선과 교섭을 하면서 臣이 가만히 咨文 중 吉林將軍이 所奏한 바를 조사해 보건대 石乙水를 경계로 결정하려는 것은 감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과연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를 臣이 주장한 紅土山水를 『圖典』에서 참고해 보건대 하나하나 모두 부합하고 있으며 삼가 欽定會에서 명백하게 등재되기를 大圖們江은 長白山 東麓에서 흘러나와 二水가 합류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번 감정에서 紅土水는 長白山 동쪽 기슭에서 出水하여 元池水와 합류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이 외에도 東麓水는 없고 또 『一統輿圖』에서 살펴보아도 大圖們江의 水源과 鴨綠江 水源과의 사이에는 水流가 없는 곳으로 이곳에 점선으로 경계표식을 그려 놓은 것이 있음은 분명히 지난번 현지답사 감정 시에 碑는 단지 紅土水 이상의 無水處에서 마침 표식과 서로 부합하여 紅土水가 大圖們江의 水源이라는 것이 暸然하여 의심할 바 없으며 石乙水는 그 발원이 長白山이 아니고 이것은 小白山이라 할 수 있으나 이것은 제2의 水源이며 『圖典』에서도 모두 증빙할 것이 없으므로 臣의 愚意로서 생각하기를, 이 비는 長白山 紅土水 위에 세우는 것이 『圖典』과도 부합되며 국경을 명백하게 하는 데 사리와 합치되므로 臣은 奉命日에 의당 즉시 登程하면서 이미 暸然하게 사실의 情狀을 알고 있으므로 입을 다물고 졸속하게 행할 수 없는 사안이기에 황공하여 待罪한다는 等情이었습니다. 이 조사에 의하여 전년 8월간 圖們江界址 건에 대하여 咨文으로 귀 대신에게 다시 보고해 줄 것을 요청한 절차도 이행한 바 있으며 이에 도착한 咨文을 접수한바, 吉林將軍의 所奏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데에도 敝邦에서 전날에 송부한 咨文에 대한 재결에 대한 回示를 접수하지 못하였습니다. 특수한 사안으로 얽히고 쌓인 조사 사항에 속하여 지난번 會勘 시에 吉林 派員과 李重夏는 곧 圖們江 일대를 따라 100여 리를 거슬러 올라가서 長白山으로 들어가서 여러 곳을 감정하였으나 紅土山水와 石乙水 합류처에 가서 각자가 자기의 소견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귀결시키지 못한 것은 吉林과 敝邦에서 서로가 보고하여 咨文으로 요청한 까닭이었습니다.
『欽定皇朝通典文獻通考』에서 명백하게 등재되어 있는 것을 조사해 보건대 吉林과 조선은 圖們江으로 경계를 삼고 또 『欽定會典圖說』에 명백하게 등재되어 있는 大圖們江은 長白山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다는 등 말에 지금은 있는 힘을 다하여 水源을 찾고자 하고 있지만, 결국은 舊界인 長白山 동쪽 기슭에 경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되풀이하면서 설명하였으나 吉林 奏本에는 小白山을 경계지로 결정함에 따라 石乙水에 비를 세우는 데 순조로울 것이라고 아직까지도 그것이 평등할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등 지금도 그 奏本 내에서『皇朝通典』·『文獻通考』·『會典圖說』을 인용하여 증거를 삼고 있으면서 이제 長白山을 버리고 小白山으로 경계를 삼고자 하는데 그 언어 자체가 이미 모순되는 것입니다. 지금 만일 재차 감정을 시행하여 査察을 『圖典』에 따라 엄격하게 한다면 반드시 長白山에서 나오는 圖們江의 水源으로 경계를 정해야 하며 경계비는 응당 紅土山水에 설립해야 합니다. 石乙水는 부당하다는 것은 많은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며 또 紅土山水와 石乙水의 門은 즉, 수십 리 되는 空山荒寒 땅에 불과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 천하 모든 곳이 王의 땅이 아닌 곳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 구구한 尺寸 땅까지 屬邦으로 하여금 그 국경으로 결정된 땅을 보전하여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지금 該臣 李重夏가 감히 급거 졸속하게 행할 수 없어서 다시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을 개진하고 있는데, 만일 또 억지로 현장으로 가게 하여 무턱대고 종사하라 한다면 어떻게 그 배신의 마음을 복종시키겠습니까? 또 지난해 咨文 내에서 이미 이 감정에 대한 전말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쌓인 것이 없으며 지금 또 吉林의 주청에 의한 奉旨도 이미 받은 바가 있음에도 또다시 실상을 개진하라 할 수 없으며, 강압적으로 이것을 따르게 한다면 역시 지성으로 事大하는 것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시 咨文으로 귀 대신에게 조회하오니, 번거롭지만 곧 圖們江源의 경계 감정 상황을 상세하게 다시 상주하여 조사하고 재결한 후 가부간에 확실하고 공평한 처결로 즉시 회답을 볼 수 있도록 하여 뒤따라 조처하는 데 편리하도록 은덕을 베풀어 주시기를 요청하오며, 이를 위하여 조회 자문을 보내오니 귀 안하에 도달되기를 바라면서 이 咨文을 보냅니다.
欽差此洋通商大臣衙門
光緖十四年四月二十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