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句驪의 국토는 사방 약 2천리이다. 국토 가운데 遼山이 있고, 遼水가 [그 산에서] 흘러 나온다.016016 中有遼山 遼水所出 『漢書』「地理志」에 의하면 高句驪縣內에 遼山이 있고 그로부터 遼水가 시작되며, 西南으로 흘러 遼隊에서 大遼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遼水란 『水經注』에 나오는 小遼水로 오늘날의 渾河에 비정된다.
≪參考文獻≫
『漢書』卷28 「地理志」第8下 玄菟郡 高句驪縣條.
『水經註』卷14.
李丙燾, 「玄菟郡考」, 『韓國古代史硏究』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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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王都는 丸都[山]의 아래에 있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판이 없어서, 백성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살고 시냇물을 식수로 한다.017017 其國 …… 食澗水 이상의 내용은 대체로 『三國志』高句麗傳과 『漢書』「地理志」玄菟郡條에 관한 내용을 혼합한 것이다. 단, ‘漢·魏世’라고 하는 단서가 첨가된 것이나 『三國志』에 보이는 ‘戶三萬’이 삭제된 것은 시간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參考文獻≫
『漢書』卷28「地理志」卷8下 玄菟郡 高句驪縣條.
『三國志』卷30 「東夷傳」高句麗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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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土著生活을 하고 있지만 좋은 토지는 없어 그들의 습속에 음식을 아껴 먹고 궁실은 잘 지어 치장한다
왕의 궁실 왼편에 큰 집을 지어 귀신에게 제사지내고, 또한 零星과 社稷에도 제사지낸다.
사람들의 성질은 포악하고 성급하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018018 雖土著 …… 喜寇抄 이 부분은 다소 字句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三國志』高句麗傳의 내용을 전재한 것이며, 단 序頭의 土著이란 『魏書』高句麗傳의 ‘民皆土著’에서 온 듯하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 「東夷傳」高句麗條.
『魏書』卷100 「列傳」高句麗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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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아치로는 相加019019 相加 압록강 중류 유역의 那集團들의 族長을 뜻한다. 이 相加를 유력한 大小의 加들로 구성된 諸加會議의 議長으로 보며, 그것은 『三國史記』에 보이는 ‘國相’에 해당한다고 보는 說도 있다.(盧重國, 「高句麗國相考」p.26)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6)
相加
압록강 중류 유역의 那集團들의 族長을 뜻한다. 相은 衛滿朝鮮의 朝鮮相·尼鷄相 등의 ‘相’과 상통하는 의미를 지니며, 高句麗官階에서 보이는 大相·小相·狄相 등도 相加와 그 명칭의 계통이 연결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相加를 유력한 大小의 加들로 구성된 諸加會議의 議長으로 보고, 『三國史記』「高句麗本紀」에 보이는 ‘國相’에 해당한다고 보는 說도 있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知識産業社.
盧重國, 「高句麗國相考」『韓國學報』16, 1979.
≪參考文獻≫
金哲埈,「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知識産業社.
盧重國, 「高句麗國相考」『韓國學報』16,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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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盧020020 對盧 對盧의 語源은 분명치 않으나 族長 신분층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對盧는 그 뒤까지도 高句麗의 주요한 官階가 되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7)
對盧
對盧의 語源은 분명치 않으며, 族長 身分層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對盧는 그뒤까지도 고구려의 주요한 官階가 되었다. 6세기 후반 이후의 貴族聯立政權體制 하에서 大對盧는 國家運營을 주도하는 實權者의 직위가 되었다.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舊唐書』卷199上「東夷列傳」高句麗條.
金哲埈,「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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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沛者021021 沛者 『三國志』高句麗傳의 ‘有對盧則不置沛者 有沛者則不置對盧’라는 표현에서 보듯 兩者의 지위는 상등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후에 對盧는 중앙정부의 官階가 되었고, 沛者는 部의 官階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8)
沛者
對盧를 두면 沛者를 두지 않고, 沛者를 두면 對盧를 두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양자의 지위는 상응하였던 것 같이 보인다. 양자의 起源을 對盧는 부족의 長이었고, 沛者는 군사적 지도자(軍長)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분명치 않다.
『三國史記』에 某部 沛者라는 기록은 있으나 某部 對盧라는 例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양자가 그 원래 성격은 비슷하였으나, 뒤에 對盧는 중앙정부의 官階가 되었고 沛者는 部의 官階가 되어 桂婁部 王室과 그 예하의 諸部간의 차등성에 따른 어떤 면을 반영하는 듯 싶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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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022 古鄒加 古鄒加는 王族 중의 大加와 본래 國主였던 消奴部의 嫡統大人, 王室과 世婚하였던 絶奴部의 大人이 띄었던 칭호이다.
『三國史記』의 기록을 추론하면 고추가는 王族 중 王弟, 王子 및 傍系化한 家系의 長 등이 띄었던 것 같고, 『翰苑』에서는 賓客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唐의 鴻臚卿에 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9)
古雛加
古鄒加는 王族 중의 大加와 본래 國主였던 消奴部의 嫡統大人, 王室과 世婚하였던 絶奴部의 大人이 가졌던 칭호이다. 『三國史記』에 구체적으로 전하는 王族 중 古鄒加의 칭호를 가졌던 이는 太祖王의 父인 再思, 西川王의 子로서 美川王의 父인 咄固, 文咨王의 父인 助多, 拔奇의 子로서 山上王의 조카인 騎位居 등 4명이다. 이에 의할 때 古鄒加는 王族 중 王弟·王子 및 傍系化한 家系의 長 등이 되었던 것 같다. 王의 父도 追封하여 古鄒加라 칭해졌던 것 같으나, 원래 이 범위에 속하는 바이다.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에 의하면 古鄒加는 賓客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唐의 鴻臚卿에 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고구려 말기의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서 3세기 무렵의 古鄒加의 성격은 그것과는 상이한 면을 지닌다.
≪參考文獻≫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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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鄒加·主簿023023 主簿 中國의 영향을 받은 명칭으로, 王의 측근에서 행정을 주관하던 직위이다. 『翰苑』所引에서 鬱折을 일명 主簿라 하고 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0)
主簿
中國의 영향을 받은 명칭이다. 그 명칭으로 보아 王의 측근에서 행정을 주관하던 직위이다.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에선 3等階의 鬱折이 일명 主簿라 하고 있다.
≪參考文獻≫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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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優台024024 優台 優台는 年長者라는 의미와 함께 家父長 및 親族共同體의 長의 지위를 나타내며, 뒷날 高句麗 官階組織의 중심요소인 ‘兄’의 前身으로 보고 있다.(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p.128)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1)
優台
優台는 그 音이 乙支와도 통하여 ‘웃치’로 읽어 年長者라는 의미와 함께 家父長 및 親族共同體의 長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하여 뒷날 고구려 官階組織의 중심 요소인 ‘兄’의 前身이라고 본 說이 있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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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者025025 使者 그 명칭에서 보듯 行政的인 업무를 담당하는 관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族長家系보다 하위의 身分出身으로 임명되었던 것 같으나, 뒤에는 兄과 함께 高句麗官階 조직상의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2)
使者
그 명칭에서 보듯 行政的인 업무를 담당하는 관인으로서 뒷날 고구려 관계조직상에서 兄과 함께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초기에는 族長家系보다 하위의 身分 出身으로 임명되었던 것 같다. 또한 高句麗 官階에서 兄이 族長的인 性格을 지녔던 것이라면 使者는 行政的인 官僚로서 成長한 存在인 듯 하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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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皁衣先人026026 皁衣先人 皁衣는 黑色衣를 입었던데서 그 명칭이 비롯한 것으로 보이며, 행정실무에 종사하였다.
先人은 『周書』·『隋書』高句麗傳에는 仙人으로 전해지며, 皁衣와 先人은 두 개의 官階名으로 많이 이해되고 있으나, 『翰苑』所引에서는 同一實體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3)
皁衣·先人
皀依와 先人은 별개의 官階로 이해되고도 있으나『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의 ‘次皀衣頭大兄 比從三品 一名中裏皀衣頭大兄 東夷相傳 所謂 皀衣先人者也’라 한 기록과 『新唐書』高麗傳의 ‘帛衣頭大兄 所謂帛衣者 先人也’라 한 기록에서는 皀衣와 先人을 同一實體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高句麗의 官階에서 皀衣頭大兄은 제5官等으로 國家의 機密과 改法·徵發·官爵授與 등을 관장하였고, 先人은 『翰苑』에는 ‘比正九品’이라 되어 있다.
≪參考文獻≫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新唐書』卷220「東夷列傳」高麗條.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條.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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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어서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등급을 두었다.
언어나 생활 관습은 夫餘와 같은 점이 많았으나, 그들의 기질 및 의복은 서로 달랐다.

註 016
中有遼山 遼水所出 : 『漢書』「地理志」에 의하면 高句驪縣內에 遼山이 있고 그로부터 遼水가 시작되며, 西南으로 흘러 遼隊에서 大遼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遼水란 『水經注』에 나오는 小遼水로 오늘날의 渾河에 비정된다.
≪參考文獻≫
『漢書』卷28 「地理志」第8下 玄菟郡 高句驪縣條.
『水經註』卷14.
李丙燾, 「玄菟郡考」, 『韓國古代史硏究』1976.
註 017
其國 …… 食澗水 : 이상의 내용은 대체로 『三國志』高句麗傳과 『漢書』「地理志」玄菟郡條에 관한 내용을 혼합한 것이다. 단, ‘漢·魏世’라고 하는 단서가 첨가된 것이나 『三國志』에 보이는 ‘戶三萬’이 삭제된 것은 시간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參考文獻≫
『漢書』卷28「地理志」卷8下 玄菟郡 高句驪縣條.
『三國志』卷30 「東夷傳」高句麗條.
註 018
雖土著 …… 喜寇抄 : 이 부분은 다소 字句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三國志』高句麗傳의 내용을 전재한 것이며, 단 序頭의 土著이란 『魏書』高句麗傳의 ‘民皆土著’에서 온 듯하다.
≪參考文獻≫
『三國志』卷30 「東夷傳」高句麗條.
『魏書』卷100 「列傳」高句麗條.
註 019
相加 : 압록강 중류 유역의 那集團들의 族長을 뜻한다. 이 相加를 유력한 大小의 加들로 구성된 諸加會議의 議長으로 보며, 그것은 『三國史記』에 보이는 ‘國相’에 해당한다고 보는 說도 있다.(盧重國, 「高句麗國相考」p.26)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6)
相加
압록강 중류 유역의 那集團들의 族長을 뜻한다. 相은 衛滿朝鮮의 朝鮮相·尼鷄相 등의 ‘相’과 상통하는 의미를 지니며, 高句麗官階에서 보이는 大相·小相·狄相 등도 相加와 그 명칭의 계통이 연결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相加를 유력한 大小의 加들로 구성된 諸加會議의 議長으로 보고, 『三國史記』「高句麗本紀」에 보이는 ‘國相’에 해당한다고 보는 說도 있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知識産業社.
盧重國, 「高句麗國相考」『韓國學報』16, 1979.
≪參考文獻≫
金哲埈,「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知識産業社.
盧重國, 「高句麗國相考」『韓國學報』16, 1978.
註 020
對盧 : 對盧의 語源은 분명치 않으나 族長 신분층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對盧는 그 뒤까지도 高句麗의 주요한 官階가 되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7)
對盧
對盧의 語源은 분명치 않으며, 族長 身分層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對盧는 그뒤까지도 고구려의 주요한 官階가 되었다. 6세기 후반 이후의 貴族聯立政權體制 하에서 大對盧는 國家運營을 주도하는 實權者의 직위가 되었다.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舊唐書』卷199上「東夷列傳」高句麗條.
金哲埈,「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註 021
沛者 : 『三國志』高句麗傳의 ‘有對盧則不置沛者 有沛者則不置對盧’라는 표현에서 보듯 兩者의 지위는 상등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후에 對盧는 중앙정부의 官階가 되었고, 沛者는 部의 官階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8)
沛者
對盧를 두면 沛者를 두지 않고, 沛者를 두면 對盧를 두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양자의 지위는 상응하였던 것 같이 보인다. 양자의 起源을 對盧는 부족의 長이었고, 沛者는 군사적 지도자(軍長)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분명치 않다.
『三國史記』에 某部 沛者라는 기록은 있으나 某部 對盧라는 例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양자가 그 원래 성격은 비슷하였으나, 뒤에 對盧는 중앙정부의 官階가 되었고 沛者는 部의 官階가 되어 桂婁部 王室과 그 예하의 諸部간의 차등성에 따른 어떤 면을 반영하는 듯 싶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註 022
古鄒加 : 古鄒加는 王族 중의 大加와 본래 國主였던 消奴部의 嫡統大人, 王室과 世婚하였던 絶奴部의 大人이 띄었던 칭호이다.
『三國史記』의 기록을 추론하면 고추가는 王族 중 王弟, 王子 및 傍系化한 家系의 長 등이 띄었던 것 같고, 『翰苑』에서는 賓客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唐의 鴻臚卿에 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9)
古雛加
古鄒加는 王族 중의 大加와 본래 國主였던 消奴部의 嫡統大人, 王室과 世婚하였던 絶奴部의 大人이 가졌던 칭호이다. 『三國史記』에 구체적으로 전하는 王族 중 古鄒加의 칭호를 가졌던 이는 太祖王의 父인 再思, 西川王의 子로서 美川王의 父인 咄固, 文咨王의 父인 助多, 拔奇의 子로서 山上王의 조카인 騎位居 등 4명이다. 이에 의할 때 古鄒加는 王族 중 王弟·王子 및 傍系化한 家系의 長 등이 되었던 것 같다. 王의 父도 追封하여 古鄒加라 칭해졌던 것 같으나, 원래 이 범위에 속하는 바이다.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에 의하면 古鄒加는 賓客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唐의 鴻臚卿에 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고구려 말기의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서 3세기 무렵의 古鄒加의 성격은 그것과는 상이한 면을 지닌다.
≪參考文獻≫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註 023
主簿 : 中國의 영향을 받은 명칭으로, 王의 측근에서 행정을 주관하던 직위이다. 『翰苑』所引에서 鬱折을 일명 主簿라 하고 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0)
主簿
中國의 영향을 받은 명칭이다. 그 명칭으로 보아 王의 측근에서 행정을 주관하던 직위이다.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에선 3等階의 鬱折이 일명 主簿라 하고 있다.
≪參考文獻≫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註 024
優台 : 優台는 年長者라는 의미와 함께 家父長 및 親族共同體의 長의 지위를 나타내며, 뒷날 高句麗 官階組織의 중심요소인 ‘兄’의 前身으로 보고 있다.(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p.128)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1)
優台
優台는 그 音이 乙支와도 통하여 ‘웃치’로 읽어 年長者라는 의미와 함께 家父長 및 親族共同體의 長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하여 뒷날 고구려 官階組織의 중심 요소인 ‘兄’의 前身이라고 본 說이 있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註 025
使者 : 그 명칭에서 보듯 行政的인 업무를 담당하는 관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族長家系보다 하위의 身分出身으로 임명되었던 것 같으나, 뒤에는 兄과 함께 高句麗官階 조직상의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2)
使者
그 명칭에서 보듯 行政的인 업무를 담당하는 관인으로서 뒷날 고구려 관계조직상에서 兄과 함께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초기에는 族長家系보다 하위의 身分 出身으로 임명되었던 것 같다. 또한 高句麗 官階에서 兄이 族長的인 性格을 지녔던 것이라면 使者는 行政的인 官僚로서 成長한 存在인 듯 하다.
≪參考文獻≫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註 026
皁衣先人 : 皁衣는 黑色衣를 입었던데서 그 명칭이 비롯한 것으로 보이며, 행정실무에 종사하였다.
先人은 『周書』·『隋書』高句麗傳에는 仙人으로 전해지며, 皁衣와 先人은 두 개의 官階名으로 많이 이해되고 있으나, 『翰苑』所引에서는 同一實體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13)
皁衣·先人
皀依와 先人은 별개의 官階로 이해되고도 있으나『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의 ‘次皀衣頭大兄 比從三品 一名中裏皀衣頭大兄 東夷相傳 所謂 皀衣先人者也’라 한 기록과 『新唐書』高麗傳의 ‘帛衣頭大兄 所謂帛衣者 先人也’라 한 기록에서는 皀衣와 先人을 同一實體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高句麗의 官階에서 皀衣頭大兄은 제5官等으로 國家의 機密과 改法·徵發·官爵授與 등을 관장하였고, 先人은 『翰苑』에는 ‘比正九品’이라 되어 있다.
≪參考文獻≫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新唐書』卷220「東夷列傳」高麗條.
≪參考文獻≫
『周書』卷49「異域列傳』高句麗條.
『隋書』卷81「東夷列傳」高句麗條.
『翰苑』高麗條 所引『高麗記』
金哲埈, 「高句麗·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韓國古代社會硏究』1975.
주제분류
문화>풍속·놀이>풍속
정치>행정>관등>중앙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