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宗358358 中宗 唐帝國 第4代 皇帝(在位 684~690·705~710). 王位에 卽位하여 則天武后에게 찬탈되어 704년까지 則天武后의 周에 의하여 唐帝國의 國政이 運營되었다. 大祚榮이 營州에서 東으로 脫出하는 계기가 된 契丹人 李盡忠의 亂이 일어난 ‘萬歲通天’이라는 年號는 周의 年號이며, 中宗의 年號로는 嗣聖 13年이 된다.
周의 長安 4年(704) 則天武后의 死去 후 비로소 政權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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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즉위하여, 侍御史 張行岌을 보내어 招慰하니, 祚榮이 아들을 보내어 入侍시켰다. 이때 册立을 하려 하는데, 마침 契丹과 突厥이 해마다 변경을 침입하므로 使命이 전달되지 않았다.
睿宗 先天 2년(A.D.713; 渤海 高王 15)에359359 睿宗先天二年 唐의 第5代 皇帝(在位 710~712)의 年號로서 『新唐書』渤海傳에는 ‘睿宗先天年間’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册府元龜』「外臣部」封册條에는 睿宗이 아니고 玄宗 先天 2年 2月의 事件으로 記載되어 있다.
이와 같은 『新·舊唐書』와 『册府元龜』의 年號差異는 712年에 延和로 改元한 睿宗이 同年에 玄宗에게 讓位하여 玄宗이 다시 先天으로 改元하였던 데에서 비롯된다.
이로서 先天이라는 年號가 睿宗의 것으로 되기도 하고 玄宗의 것으로 記錄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册府元龜』의 記事와 같이 玄宗으로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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郎將 崔訢을 보내어360360 遣郞將崔訢往(崔訢의 遣使) 이 記事와 관련되는 史料로서는 鴻臚井의 碑가 있다. 이 碑는 中國의 旅順 黃金山麓에서 露日戰爭時 日本軍에 의하여 出土되어 지금 日本의 天皇家所有로 되어 있다.
이 碑文에는 ‘勅持節宣勞靺鞨使 鴻臚卿崔忻井兩□水 記驗開元二年五月十八日’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先天 2年에 命을 받은 崔忻은 開元 2年(714)에 長安에서 山東半島를 거쳐 海路로 旅順으로 건너왔던 것이며, 다시 『新唐書』渤海傳에 보이는 ‘西京 朝貢道’라는 즉, 鴨綠江을 거슬러 東北行하여 渤海國의 首都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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祚榮을 책봉하여 左驍衛員外大將軍 渤海郡王으로 삼고, 아울러 거느리고 있는 지역을 忽汗州361361 忽汗州 渤海王國의 第3代 文王 大欽茂 時에 遷都하여 國亡時까지 王國의 首都였던 上京龍泉府(今日의 東京城) 근방에 있는 畢爾騰湖를 忽汗海 또는 湄沱湖라고 하며, 이 湖水에서 北方으로 흘러나가는 今日의 瑚爾哈河는 忽汗河라고 불리어 왔었다.
唐이 이 地域을 唐의 行政區域같이 州를 칭하며 忽汗州라고 하였던 것은 附庸國의 領土는 中國 天子의 것이어야 한다는 觀念的인 意義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직접 그 지역을 통치하겠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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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아서 忽汗州都督의 職을 더 주었다. 이로부터 해마다 使臣을 보내어 朝貢하였다.

註 358
中宗 : 唐帝國 第4代 皇帝(在位 684~690·705~710). 王位에 卽位하여 則天武后에게 찬탈되어 704년까지 則天武后의 周에 의하여 唐帝國의 國政이 運營되었다. 大祚榮이 營州에서 東으로 脫出하는 계기가 된 契丹人 李盡忠의 亂이 일어난 ‘萬歲通天’이라는 年號는 周의 年號이며, 中宗의 年號로는 嗣聖 13年이 된다.
周의 長安 4年(704) 則天武后의 死去 후 비로소 政權을 회복하였다.
註 359
睿宗先天二年 : 唐의 第5代 皇帝(在位 710~712)의 年號로서 『新唐書』渤海傳에는 ‘睿宗先天年間’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册府元龜』「外臣部」封册條에는 睿宗이 아니고 玄宗 先天 2年 2月의 事件으로 記載되어 있다.
이와 같은 『新·舊唐書』와 『册府元龜』의 年號差異는 712年에 延和로 改元한 睿宗이 同年에 玄宗에게 讓位하여 玄宗이 다시 先天으로 改元하였던 데에서 비롯된다.
이로서 先天이라는 年號가 睿宗의 것으로 되기도 하고 玄宗의 것으로 記錄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册府元龜』의 記事와 같이 玄宗으로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註 360
遣郞將崔訢往(崔訢의 遣使) : 이 記事와 관련되는 史料로서는 鴻臚井의 碑가 있다. 이 碑는 中國의 旅順 黃金山麓에서 露日戰爭時 日本軍에 의하여 出土되어 지금 日本의 天皇家所有로 되어 있다.
이 碑文에는 ‘勅持節宣勞靺鞨使 鴻臚卿崔忻井兩□水 記驗開元二年五月十八日’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先天 2年에 命을 받은 崔忻은 開元 2年(714)에 長安에서 山東半島를 거쳐 海路로 旅順으로 건너왔던 것이며, 다시 『新唐書』渤海傳에 보이는 ‘西京 朝貢道’라는 즉, 鴨綠江을 거슬러 東北行하여 渤海國의 首都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註 361
忽汗州 : 渤海王國의 第3代 文王 大欽茂 時에 遷都하여 國亡時까지 王國의 首都였던 上京龍泉府(今日의 東京城) 근방에 있는 畢爾騰湖를 忽汗海 또는 湄沱湖라고 하며, 이 湖水에서 北方으로 흘러나가는 今日의 瑚爾哈河는 忽汗河라고 불리어 왔었다.
唐이 이 地域을 唐의 行政區域같이 州를 칭하며 忽汗州라고 하였던 것은 附庸國의 領土는 中國 天子의 것이어야 한다는 觀念的인 意義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직접 그 지역을 통치하겠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았다.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즉위·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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