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삼천리 제6권 제9호  
발행일1934년 09월 01일  
기사제목軍部에 잇는朝鮮人士官  
기사형태소식  
軍部에 잇는朝鮮人士官
第20師團 李應俊少佐, 朴勝熏少佐, 劉升烈少佐, 南宇鉉少佐, 白洪錫少佐, 金錫源少佐,
第19師團 申泰英少佐, 鄭壎大尉, 安秉範少佐
軍司令部 李大永少佐, 金錫源大尉
關東軍司令部 洪思翊中佐, 尹相弼大尉
朝鮮에는 現在 師團이 둘이잇다. 하나는 龍山에 잇는 20師團이요. 다른하나는 羅南에 잇는 19師團이다. 그리고 이두師團을 統轄하는 最高機關으로 朝鮮軍司令部가 역시 龍山에 잇다.
그러면 朝鮮의 軍部인 軍司令部와 兩師團管下에 現在 現役으로잇는 朝鮮사람사관이 몃분이나 되는가? 또 누구 누이며 어듸 出身들인가. 이러한 모든 것을 記錄하여 보려 이 붓대을 잡엇다.<36>
龍山 20師團
龍山에 잇는 20師團管下에 第79聯隊가 잇고 그 79聯隊 속에 大隊셋이 잇다. 그중 한 大隊에 大隊長으로 李應俊이란 步兵少佐가 잇다.
1大隊는 大槪 千名이라한다. 李隊長은 날마다 千名의 將卒을 마터 敎育하고 訓練식힌다.
그러면 李應俊氏란 엇던 분인고 大正 3年에 東京 陸軍士官學校을 마친 第26期生 中 秀才의 1人이다. 故鄕는 平安道 肅川인데 少年 때 서울 올너와서 普成學校 第1期生으로 잇다가 李甲氏반연으로 武官學校를 1年 동안 단이엿다. 그러다가 軍隊 解散后에 東京陸軍幼年學校로 轉學하여 그 學校을 마치고 다시 士官學校에 入學하야 優秀한 成績으로 卒業한 뒤 士官에 任命되야 얼마 동안 東京麻布 第3聯隊士官으로잇다가 때마츰 大井大將을 總司令官으로한 西伯利亞出兵이잇서 1921年에 눈 날리는 俄領으로 出戰하엿다. 그때 從6位 勳5等의 勳功을 탓다.
聯合軍의 撤兵後 未久에 日本軍도 撤兵케 되어서 西伯利亞로부터 도라나온 李應俊氏는 龍山軍隊에 被任되야數年前까지 陸軍步兵大尉 步兵 第79聯隊 中隊長으로 잇다가 昨年에 少佐로昇進되야 聯隊附武官으로 잇든 중 금년 8月에 1躍 大隊長이되야 千餘名을 領率하는 地位에 섯다. 나히는 금년에 마흔둘이라든가 셋이라든가 氏를 記할 때 빼어노을 수 업는 사실은 氏는 前陸軍大臣 副官이며 日本士官學校 出身이자 西北學會의 巨頭이든 故李甲氏의 婿郞인 것이다. 李甲氏때문에 <37> 普成學校다니든 거름을 그만두고 韓國武官學校로 轉校하엿고 그 뒤 東京으로 드러간 것이다. 그래서 西伯利亞 出戰 當時 일부러 「니코리스크」시에 내리어 白人墓地에 길히 잠들어 잇는 李甲氏墓에 參拜하고 도라나와서 그 따님 李正熙氏와 結婚하야 平和한 家庭을 일우고 잇다. 지금도 아츰마다 龍山三角町 附近에 서면 小丘에 잇는 第79聯隊 官舍로부터 매일 아츰 金鞍白馬에 威風堂堂하게 거러나오는 李大隊長을 만날 수 잇스니 大槪 佐官級 卽 少佐만 되면 軍隊에서 馬匹한아식 주어 愛馬을 타고 所屬大隊로 向하는 것이다. 이럭저럭 생각하면 氏가 少尉에 서부터 少佐에 이르기까지 約15,6年 갓까운 세월이 걸니엇다. 軍隊士官의 昇進는 大槪 더듸어서 士官學校을 마치어도 3,4個月은 그냥 見習士官으로 잇서야 하고 그런 뒤 비로소 少尉에 任官된 지 少尉에서 中尉, 中尉에서 大尉, 大尉에서 少佐에까지 올나 가자면 한계단씩 을으는데 빨너서 3年 느지면 4,5年이 걸닌다. 軍律嚴한 軍隊內의 일이라 特別한 戰功等에 依치 안으면 少尉로부터 少佐에 가기까지20年이 걸니는 것이 普通이라고한다.
李應俊氏는 이例에 비취어보면 成績이 매우 優秀한편이라고 할 것이다.
最高級인洪中佐
그러나 現役士官 中 지금 이약기한 李應俊氏보다 階級이 놉흔 士官 한 분이 잇다. 그분은 洪思翊氏라 하야 步兵中佐요 東京잇는 陸軍大學의 出身이다. 육군 대학은 소위, 중위로 잇는 현역사관들이 들어가서 최고의 軍事學을 배우는 國家的 最高學府로 士官學校의 入學競爭도 대단히 甚하지만 陸軍大學에 들어가기도 여간한 秀才아니고는 어렵다. 그런데 洪思翊氏는 士官學校을 優秀한 成績으로 마첫느니만치 無難히 파스되여 卒業할 때에는 조흔 成績을 가젓섯다. 처음은 第20師團 司令部府로잇다가 滿洲事變后 實際로 戰場을 馳驅하엿다가 只今은 關東軍司令部가되어 新京에 잇다. 年齡은 40餘歲에 이르렷다 한다. 滿洲戰役의 功으로 氏는 從6位 勳5等의 勳章이 잇고 그에 따라서 年金도 잇다. 지금 現役에 잇는 朝鮮人 士官은 모다 10餘 名의 多數에 達하지마는 多數는 大尉와 少佐의 級이요 中佐의 級으로는 氏-唯一한 1人이다. 士官學校는<38> 역시 大正 3年의 第26期 卽 李應俊 少佐와 同期라는 말이잇다. 正確한 것은 몰으겟다.
滿洲事變과 士官級
그러고 大尉로 잇다가 今年 8月 定期昇給 때에 步兵少佐로 된 분에 劉升烈氏가 잇다. 氏는現在 龍山잇는 第79聯隊附士官으로 在任하는데 故鄕은 忠南 公州다. 일즉 東京의 士官學校를 마치고 龍山軍隊에 在職하여 今日에 級하엿는데 亦 從6位 勳5等이며 또 第80聯隊에 步兵少佐한 분이잇는대 그는 朴勝熏氏라 80聯隊 所在地는 慶尙北道大邱인바 지금도 大邱軍營 附近으로 지나느라면 말타고 風釆禀禀하게 지나가는 이 靑年士官을 볼 수 잇다고 한다. 故鄕은 京畿道인데 功으로 從6位 勳6等이 잇다. 아직은 80聯隊附士官으로 잇스니 未久에 大隊長으로 昇進할 날이 잇슬넌지 모르며 또가튼 大邱의 第80聯隊속에 南宇鉉이란 분 이잇다. 이분도 陸軍大尉로 잇다가 今年8月의 定期異動에 少佐로 된 분이다. 士官學校는 大正4年인 第27期生이라 한다. 故鄕은 京畿道이다. 從6位 勳6等을 가지고 잇다. 그리고 20師團管下인 騎兵 第28聯隊附士官으로 龍山軍營에서 偉丈夫風의 그 巨軀를 자랑하다가 滿洲事變이 이러나자 곳 關東軍司令部府로 가잇는 이에 尹相弼大尉가 잇다. 「尹大尉」「尹大尉」라 하야 이분의 일홈은 相當히 世間에 알려지엇스니 事變后 氏 다시 朝鮮에 도라와 지금은 어느 것 聯隊長으로가잇는 金子大佐等과 더부러 서울公會堂에서 滿洲事變演說會를 각금 開催하엿고 또한번은 朝鮮人側 有志들 實業界 言論界 學界等 各方面의 人士百餘名을 그때 軍司令部 叅謀長으로 잇든 兒玉少將이 招請하여 노코 朝鮮호텔-에서 亦是 滿洲事變일로 講演會를 할 때 尹相弼 大尉도 出席하여 演說하엿다.<39> 氏는辯舌의 才가 出衆한듯하엿다.
今年8月 定期異動에 亦少佐로 올넛다는 風說이잇스나 正確한 것은 모으겟다.
白洪錫, 金錫源 其他諸氏
20師團에는 이밧게도 또 두분이 잇다. 한분은 平壤잇는 步兵第39旅團司令部의 步兵第7聯隊附 白洪錫氏요. 또 한 분는 步兵78聯隊附의 金錫源氏이다. 두 분이 모다 大正 3年에 第26期 士官學校出로 步兵大尉로 잇다가 亦今夏 8月의 定期異動에 少佐되어 잇다는 말 들니나 官報를 아직 차저 보지 못하엿스니 斷定하여 말할 수는 업다. 白洪錫氏는 平安南道가 故鄕인데 亦 從6位 勳5等이요. 金錫源氏는 亦 從6位 勳5等으로 그 故鄕은 서울이란 말이 잇다. 이리 하야 第20師團 管下의 各聯隊에는 朝鮮人 士官이 그가 모다 大尉級이 아니면 佐官級인 士官 여섯 분이 잇슴을 알 수 잇겟다. 이제는 第19師團으로넘어가자.
羅南19師團
申少佐其他
咸北羅南 잇는 第19師團 管下인 第74聯隊에 申泰英氏가잇다. 步兵少佐로 今夏 8月에 昇進하엿는데 故鄕은京城이요. 年齡은 42,3이나 되엿슬가. 從6位 勳5等인데 前記咸興聯隊에 잇다가 이번에 大邱中學校에 軍事敎鍊하는대 配屬將校가 되어 未久에 大邱로 補任하리란 說이잇다.
그리고 또第72聯隊인 羅南에 安秉範少佐가 잇는대 그前에는 李王附武官으로 宮廷에 出任하고 잇다가 軍隊로 나온분으로 士官學校도 大正3年의 第26期生이라 故鄕은 서울이라든가.
그리고 가장 國境인 咸北會寧에 잇는 第75聯隊에 步兵大尉 鄭壎氏가 잇다. 故鄕은 서울이라든다 從6位 勳5等을 가지고 잇다. 지금도 각금 頭滿江畔으로 말타고 다니는 氏의 風姿을 볼수잇다든가 이 세분이 모다 大正3年의 26期出과 大正 4年의 27期出들이다. 大體朝鮮은 大槪 26期와 27期生이 大多數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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