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곡국과 압독국이 항복해 오다 ( 102년 08월(음) )

23년 가을 8월 음즙벌국(音汁伐國)254254 《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1, 양주(良州)에 따르면, 음즙벌국이 음즙화현(音汁火縣)이 되었고, 그곳이 안강현(安康縣)에 속하였다고 한다. 곧 음즙벌국은 지금의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있었던 소국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지는 안강읍 양월리 일대로 비정된다(이형우, 《신라초기국가형성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78~79쪽).닫기실직곡국(悉直谷國)255255 일명 실질국(悉直國)이라고도 하는 데,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에 있었던 소국이다. 파사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고, 지증왕 6년(505)에 주(州)로 삼아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파견하였다. 《삼국사기》 권35, 잡지4, 지리2, 명주(溟州) 참조.닫기이 강역을 다투다가 왕에게 와서 그에 대한 결정을 요청했다. 왕은 이를 곤란하게 여겨
금관국(金官國)의 수로왕(首露王)256256 금관가야의 건국 시조로서 재위 기간은 서기 42~199년이다. 그에 대한 시조 설화와 허황옥(許黃玉)과의 혼인 이야기 등은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남겨져 있다.닫기이 연로하고 지식이 많다.”라고 하고서 그를 불러 물었다. 수로왕이 논의를 일으켜 다투던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했다. 이에 왕은 6부에 명해 함께 모여 수로왕에게 향연을 베풀도록 했다. 5부는 모두 이찬(伊湌)257257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2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이척찬(伊尺湌)이라고도 했다.닫기으로 접대를 주관하게 했으나, 한기부(漢祇部)258258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32)에 따르면, 이해에 6부(部)의 이름을 바꾸고 각각 성을 내려주었다. 한기부는 가리부(加利部)에서 개칭된 이름이며, 성은 배씨(裵氏)가 하사되었다. 한기부는 신라 6부 중 하나로 기록에 따라 ‘한기부(漢歧部)’ ‘한지부(漢只部)’로 표기되기도 한다.닫기만은 지위가 낮은 자로 이를 주관하게 했다. 수로왕은 노하여 종[奴] 탐하리(耽下里)에게 명해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保齊)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 종은 음즙벌의 우두머리 타추간(陀鄒干)의 집으로 도망해 의탁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는 보내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로 음즙벌국을 정벌하니, 그 우두머리와 무리가 스스로 항복했다.259259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음즙벌국[音質國]이 지마이사금대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닫기실직(悉直)·압독(押督)260260 압독국은 일명 압량소국(押梁小國)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의 경북 경산시에 있었던 소국이다. 《삼국사기》 권34, 지리1, 양주(良州) 장산군(獐山郡) 참조. 역시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지마이사금대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 압독국의 중심지는 ‘금호강 유역의 들판을 낀 남천 사이의 구릉’으로 추정되었다(이형우, 《신라초기국가형성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122~123쪽).닫기의 두 국왕이 항복해 왔다.261261 押督은 押梁으로도 표기되었는데, 현재의 경북 경산시 지역에 있던 소국이다. 그런데 압독국이 신라에 편입된 시기를 《삼국사기》 권34 잡지 지리 1와 《삼국유사》 王曆篇에는 祇摩王 때라 하여 《삼국사기》의 기사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닫기

註 254
《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1, 양주(良州)에 따르면, 음즙벌국이 음즙화현(音汁火縣)이 되었고, 그곳이 안강현(安康縣)에 속하였다고 한다. 곧 음즙벌국은 지금의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있었던 소국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지는 안강읍 양월리 일대로 비정된다(이형우, 《신라초기국가형성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78~79쪽).
註 255
일명 실질국(悉直國)이라고도 하는 데,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에 있었던 소국이다. 파사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고, 지증왕 6년(505)에 주(州)로 삼아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파견하였다. 《삼국사기》 권35, 잡지4, 지리2, 명주(溟州) 참조.
註 256
금관가야의 건국 시조로서 재위 기간은 서기 42~199년이다. 그에 대한 시조 설화와 허황옥(許黃玉)과의 혼인 이야기 등은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남겨져 있다.
註 257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2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이척찬(伊尺湌)이라고도 했다.
註 258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32)에 따르면, 이해에 6부(部)의 이름을 바꾸고 각각 성을 내려주었다. 한기부는 가리부(加利部)에서 개칭된 이름이며, 성은 배씨(裵氏)가 하사되었다. 한기부는 신라 6부 중 하나로 기록에 따라 ‘한기부(漢歧部)’ ‘한지부(漢只部)’로 표기되기도 한다.
註 259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음즙벌국[音質國]이 지마이사금대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
註 260
압독국은 일명 압량소국(押梁小國)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의 경북 경산시에 있었던 소국이다. 《삼국사기》 권34, 지리1, 양주(良州) 장산군(獐山郡) 참조. 역시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지마이사금대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 압독국의 중심지는 ‘금호강 유역의 들판을 낀 남천 사이의 구릉’으로 추정되었다(이형우, 《신라초기국가형성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122~123쪽).
註 261
押督은 押梁으로도 표기되었는데, 현재의 경북 경산시 지역에 있던 소국이다. 그런데 압독국이 신라에 편입된 시기를 《삼국사기》 권34 잡지 지리 1와 《삼국유사》 王曆篇에는 祇摩王 때라 하여 《삼국사기》의 기사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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