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창의 아들 범문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다 주살되다 ( 825년 01월(음) )

17년(825년) 봄 정월에 헌창(憲昌)의 아들 범문(梵文)이고 달산(高達山)228228 고달사(高達寺)가 있었던 현재의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의 혜목산(慧目山)으로 추정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닫기 산적 수신(壽神) 등 1백여 명과 반역을 모의하고 평양(平壤)229229 여기서의 평양은 이른바 남평양(南平壤)으로,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 지리(2)에 의하면,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일명 평양(平壤)이라고도 하는 데 양주(楊州)에 그 옛 터가 고려시대까지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양주는 곧 현재의 서울시를 말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이 평양(平壤)은 고구려시대의 남평양(南平壤) 즉 북한산군(北漢山郡 : 지금의 서울)을 이름이니, 《삼국사기》 지리지(地理志) 2 한양군조(漢陽郡條)에 “本高句麗北漢山郡(原註=一云 平壤)”이라 하고, 《고려사》 지리지 1 남경유수관조(南京留守官條) “楊州, 本高句麗北漢山郡” 주(註)에도 “一云 南平壤城”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96, p264닫기에 수도를 세우고자 북한산주(北漢山州)230230 현재의 서울지방으로 진흥왕 18년(557년)에 신주(新州) 대신 설치하였다가 동왕 29년(568년)에 폐지되었다. 그 후 진평왕 26년에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이때 이 방면의 주명(州名)은 한산주(漢山州) 혹은 한주(漢州)로서, 그 주치(州治)는 지금 광주(廣州)인즉, 여기 ‘북한주(北漢州)’는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고쳐 보아야 한다(이병도,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96, p264 한양군(漢陽郡)은 본래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또는 평양(平壤)이라고도 하였다. 이었는데, 진흥왕이 주(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양주(楊州) 옛 터이다. 영현이 둘이었다. 황양현(荒壤縣)은 본래 고구려 골의노현(骨衣奴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풍양현(壤縣)이다. 우왕현(遇王縣)은 본래 고구려 개백현(皆伯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행주(幸州)이다.(《삼국사기》 권제35, 지리 2, 신라 한주 한양군)닫기를 공격하니, 도독 총명(聰明)이 병사들을 이끌고 그를 잡아 죽였다. 평양은 지금의 양주(楊洲)이다. [고려]태조가 지은 장의사(▣義寺)231231 장의사(莊義寺)라고도 하였는데, 무열왕 6년(659년) 10월에 장춘(長春)파랑(罷郞) 두 사람을 위하여 한산주(漢山州)에 창건한 절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장의사(莊義寺)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 한성부(漢城府) 불우(佛宇)조에 실려 있는 ‘장의사(藏義寺)’가 그것인데, 그 세주에 그 절은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으며 신라의 장춘랑·파랑을 위하여 지은 절이라는 설명과 함께 고려 공민왕 및 조선 태조대의 문신인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시를 수록해 놓았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의 세검정초등학교 부근이 이 절이 있던 곳인 듯한데, 현재도 당시의 당간지주(보물 제235호)가 남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삼국사기 권 5, 역주 186 장의사(㽵義寺)는 즉 장의사(莊義寺)니,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년에 개창한 대찰(大刹)로 사지(寺址)는 서울 창의문(彰義門) 밖 세검정(洗劍亭) 북쪽에 있다. 창의문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임을 참고함이 좋다.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96, p265닫기 제문(齋文)에, “고구려의 옛 땅이요 평양의 명산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註 228
고달사(高達寺)가 있었던 현재의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의 혜목산(慧目山)으로 추정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註 229
여기서의 평양은 이른바 남평양(南平壤)으로,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 지리(2)에 의하면,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일명 평양(平壤)이라고도 하는 데 양주(楊州)에 그 옛 터가 고려시대까지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양주는 곧 현재의 서울시를 말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이 평양(平壤)은 고구려시대의 남평양(南平壤) 즉 북한산군(北漢山郡 : 지금의 서울)을 이름이니, 《삼국사기》 지리지(地理志) 2 한양군조(漢陽郡條)에 “本高句麗北漢山郡(原註=一云 平壤)”이라 하고, 《고려사》 지리지 1 남경유수관조(南京留守官條) “楊州, 本高句麗北漢山郡” 주(註)에도 “一云 南平壤城”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96, p264
註 230
현재의 서울지방으로 진흥왕 18년(557년)에 신주(新州) 대신 설치하였다가 동왕 29년(568년)에 폐지되었다. 그 후 진평왕 26년에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이때 이 방면의 주명(州名)은 한산주(漢山州) 혹은 한주(漢州)로서, 그 주치(州治)는 지금 광주(廣州)인즉, 여기 ‘북한주(北漢州)’는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고쳐 보아야 한다(이병도,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96, p264 한양군(漢陽郡)은 본래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또는 평양(平壤)이라고도 하였다. 이었는데, 진흥왕이 주(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양주(楊州) 옛 터이다. 영현이 둘이었다. 황양현(荒壤縣)은 본래 고구려 골의노현(骨衣奴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풍양현(壤縣)이다. 우왕현(遇王縣)은 본래 고구려 개백현(皆伯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행주(幸州)이다.(《삼국사기》 권제35, 지리 2, 신라 한주 한양군)
註 231
장의사(莊義寺)라고도 하였는데, 무열왕 6년(659년) 10월에 장춘(長春)파랑(罷郞) 두 사람을 위하여 한산주(漢山州)에 창건한 절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24 장의사(莊義寺)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 한성부(漢城府) 불우(佛宇)조에 실려 있는 ‘장의사(藏義寺)’가 그것인데, 그 세주에 그 절은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으며 신라의 장춘랑·파랑을 위하여 지은 절이라는 설명과 함께 고려 공민왕 및 조선 태조대의 문신인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시를 수록해 놓았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의 세검정초등학교 부근이 이 절이 있던 곳인 듯한데, 현재도 당시의 당간지주(보물 제235호)가 남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삼국사기 권 5, 역주 186 장의사(㽵義寺)는 즉 장의사(莊義寺)니,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년에 개창한 대찰(大刹)로 사지(寺址)는 서울 창의문(彰義門) 밖 세검정(洗劍亭) 북쪽에 있다. 창의문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임을 참고함이 좋다.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96, p265
주제분류
정치>군사>반란>진압
정치>군사>반란>모의·作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