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명왕이 즉위하다 ( 기원전 19년 )

유리명왕(琉璃明王)064064 고구려 제2대 왕이다. 始祖 朱蒙의 맏아들로서 주몽이 扶餘로부터 고구려로 도망한 이후에 부여에서 출생하여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에 와서 주몽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 왕 22년에 卒本으로부터 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한다.닫기이 즉위하였다. 이름은 유리(類利)인데 유류(孺留)라고도 이른다.065065 중종 임신간본에는 이 부분이 본문의 일부로 되어 있으나 다른 예(大武神王 등)를 볼 때 細註로 봄이 옳다. 한편 琉璃王의 이름에 관해 《삼국유사》 王曆篇에는 ‘累利’라고도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魏書》 권100 高句麗傳에는 주몽의 아들의 이름은 ‘閭達’이라고 하였다.닫기주몽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다.
처음에 주몽부여에 있을 때 예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이를 배었는데 주몽이 떠나온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유리이다. [유리가] 어릴 때 길에 나가 놀다가 참새를 쏘다가 잘못하여 물 긷는 부인의 항아리를 깨뜨렸다. 부인이 욕하기를 “이 아이는 아비가 없는 까닭에 이같이 억세고 사납구나.”라고 하였다. 유리가 부끄러워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나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나라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남쪽 땅으로 달아나서 나라를 열고 왕을 칭하였다. 갈 때에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아들을 낳으면 내가 물건을 남겨 두었는데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하시오. 만약 이것을 찾을 수 있다면 곧 나의 아들이요.’라 하셨다.”고 하였다.
유리가 이 말을 듣고 산골짜기로 가서 그것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피곤하여 돌아왔다. 하루는 아침에 마루 위에 있는데 기둥과 초석 사이에서 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렸다. 곧바로 가서 보니 초석이 일곱 모를 하고 있었다. 이에 기둥 아래를 뒤져서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찾아냈다. 마침내 그것을 가지고 옥지(屋智)·구추(句鄒)·도조(都祖) 등 세 사람과 함께 졸본으로 가서 부왕을 뵙고 부러진 칼을 바쳤다. 왕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부러진 칼을 꺼내어 이를 합치니 이어져 하나의 칼이 되었다. 왕이 이를 기뻐하고 그를 태자로 삼았는데, 이에 이르러 왕위를 계승하였다.

註 064
고구려 제2대 왕이다. 始祖 朱蒙의 맏아들로서 주몽이 扶餘로부터 고구려로 도망한 이후에 부여에서 출생하여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에 와서 주몽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 왕 22년에 卒本으로부터 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한다.
註 065
중종 임신간본에는 이 부분이 본문의 일부로 되어 있으나 다른 예(大武神王 등)를 볼 때 細註로 봄이 옳다. 한편 琉璃王의 이름에 관해 《삼국유사》 王曆篇에는 ‘累利’라고도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魏書》 권100 高句麗傳에는 주몽의 아들의 이름은 ‘閭達’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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