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사국왕의 손자가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다 ( 68년 08월(음) )

16년(68) 가을 8월에 갈사왕007007 원문에 갈사왕이라 하였으나, 의미로 보아 ‘국’자를 보충하였다.닫기의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해왔다. 도두를 우태(于台)008008 고구려의 관직이다. 《삼국지》 권30 위서 고구려전에는 ‘優台’로 썼다. 于台의 ‘台’는 ‘이’로 읽기도 하나(李丙燾, 《韓國儒學史略》, 亞細亞文化社, 1986, 13쪽), 여기에 대하여 의문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므로(李弘稙,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丘文化社, 1971, 332쪽) 현재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태’로 읽는 견해를 따른다. 于台는 음운상 乙支와 통하는 것으로 씨족 또는 부족의 족장에 대한 일반적 칭호였다고 여기고 전통적 족장세력의 범주에 두는 견해(김철준,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한국고대사회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232, 238쪽)와 이를 왕 직속의 관료적 존재로 파악하는 견해(武田幸男,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 《朝鮮學報》 86, 1978, 19쪽)가 있다.닫기로 삼았다.

註 007
원문에 갈사왕이라 하였으나, 의미로 보아 ‘국’자를 보충하였다.
註 008
고구려의 관직이다. 《삼국지》 권30 위서 고구려전에는 ‘優台’로 썼다. 于台의 ‘台’는 ‘이’로 읽기도 하나(李丙燾, 《韓國儒學史略》, 亞細亞文化社, 1986, 13쪽), 여기에 대하여 의문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므로(李弘稙,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丘文化社, 1971, 332쪽) 현재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태’로 읽는 견해를 따른다. 于台는 음운상 乙支와 통하는 것으로 씨족 또는 부족의 족장에 대한 일반적 칭호였다고 여기고 전통적 족장세력의 범주에 두는 견해(김철준,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한국고대사회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232, 238쪽)와 이를 왕 직속의 관료적 존재로 파악하는 견해(武田幸男,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 《朝鮮學報》 86, 1978, 19쪽)가 있다.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정치>외교>인적교류>망명
정치>행정>관인>인사·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