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관미성을 빼앗다 ( 391년 10월(음) )

겨울 10월에 백제 관미성(關彌城)083083 광개토왕릉비에 永樂 6년(396)에 광개토왕에 의하여 정벌된 백제의 城 중에 關彌城이 보여(水谷悌二郞 釋文) 양자가 같은 곳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武田幸男, 《高句麗史と東アジア》, 岩波書店, 동경, 1989, 171쪽). 비문의 이 부분은 과거에 ‘閣彌城’으로 읽어 왔던 것인데 역시 ‘關彌城’의 同名異表記로 보기도 했다(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379쪽). 양자를 같은 곳으로 볼 경우 《삼국사기》에는 391년에 정벌한 것으로, 비문에는 396년에 정벌한 것으로 되어 있어 양 기록 간에 시간적 불일치를 보이는데 이는 비문이 광개토왕의 업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며 쓰여졌을 것임을 생각할 때 백제 방면의 정벌이 일단락된 396년조에서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또 본문에서 ‘關彌城’의 ’彌‘는 중종 임신간본에는 ‘미’(‘方爾’)로 되어 있으나 ‘彌’가 옳다.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진사왕 8년조, 아신왕 2년조에서도 역시 ‘彌’라 하였다. 관미성의 현재 위치에 대하여는 경기도 喬桐島설(이병도), 開城부근설(武田行男), 파주군 交河面 烏頭山城설(윤일녕, 「관미성위치고」) 등이 있다.닫기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084084 《삼국사기》 권25 진사왕 8년조에 같은 내용이 보인다. 관미성은 백제의 북방 要害處로 백제는 이곳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아신왕 2년조에 “秋八月 王謂(眞)武曰 關彌城者我北鄙之襟要也 今爲高句麗所有 此寡人之所痛惜 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 遂謀將兵一萬伐高句麗南鄙 武身先士卒以冒矢石 意復石峴等五城 先圍關彌城 麗人城固守 武以糧道不繼 引而歸”라 하여 그 내용을 전한다.닫기 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085085 이 해 고구려가 백제의 북변을 쳐서 여러 성을 함락시켰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광개토왕릉비의 유명한 ‘辛卯年 記事’를 “(高句麗)渡海破百殘”이라 해독하고 바로 이에 대응하는 기록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김석형, 《초기 조일관계 연구》, 1966, 298쪽).닫기

註 083
광개토왕릉비에 永樂 6년(396)에 광개토왕에 의하여 정벌된 백제의 城 중에 關彌城이 보여(水谷悌二郞 釋文) 양자가 같은 곳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武田幸男, 《高句麗史と東アジア》, 岩波書店, 동경, 1989, 171쪽). 비문의 이 부분은 과거에 ‘閣彌城’으로 읽어 왔던 것인데 역시 ‘關彌城’의 同名異表記로 보기도 했다(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379쪽). 양자를 같은 곳으로 볼 경우 《삼국사기》에는 391년에 정벌한 것으로, 비문에는 396년에 정벌한 것으로 되어 있어 양 기록 간에 시간적 불일치를 보이는데 이는 비문이 광개토왕의 업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며 쓰여졌을 것임을 생각할 때 백제 방면의 정벌이 일단락된 396년조에서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또 본문에서 ‘關彌城’의 ’彌‘는 중종 임신간본에는 ‘미’(‘方爾’)로 되어 있으나 ‘彌’가 옳다.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진사왕 8년조, 아신왕 2년조에서도 역시 ‘彌’라 하였다. 관미성의 현재 위치에 대하여는 경기도 喬桐島설(이병도), 開城부근설(武田行男), 파주군 交河面 烏頭山城설(윤일녕, 「관미성위치고」) 등이 있다.
註 084
《삼국사기》 권25 진사왕 8년조에 같은 내용이 보인다. 관미성은 백제의 북방 要害處로 백제는 이곳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아신왕 2년조에 “秋八月 王謂(眞)武曰 關彌城者我北鄙之襟要也 今爲高句麗所有 此寡人之所痛惜 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 遂謀將兵一萬伐高句麗南鄙 武身先士卒以冒矢石 意復石峴等五城 先圍關彌城 麗人城固守 武以糧道不繼 引而歸”라 하여 그 내용을 전한다.
註 085
이 해 고구려가 백제의 북변을 쳐서 여러 성을 함락시켰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광개토왕릉비의 유명한 ‘辛卯年 記事’를 “(高句麗)渡海破百殘”이라 해독하고 바로 이에 대응하는 기록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김석형, 《초기 조일관계 연구》, 1966,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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