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아막산성을 공격하다 ( 602년 08월(음) )

3년 가을 8월에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058058 아막성은 운봉의 성리산성(곽장근, 《호남 동부지역 석곽묘연구》, 서경문화사, 1999)과 성산리산성(김태식, 《가야연맹사》, 일조각, 1993, 115쪽) 등으로 보고 있다. 백제는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아막성을 빼앗아 남원-함양선을 돌파하여 옛 가야 지역에 대한 진출을 시도하였다. 백제군은 운봉에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진주 방면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함양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남원이나 장수에서 운봉고원으로 올라가는 고갯길 입구에 펼쳐진 신라의 1차 방어망과 팔령치 부근에 펼쳐진 2차 저지선을 돌파해야 가능하였다. 아막성의 위치는 신라의 1차 방어선(성리산성)과 2차 방어선(성산리산성)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성리산성은 장수 번암에서 운봉고원으로 올라가는 백두대간 산줄기 정상부에 위치하면서 치재와 복성이재 등 큰 고갯길을 거느리고 있어 교통과 전략적인 요충지에 위치하였다. 그 반면에 성산리산성은 운봉고원에서 함양을 거쳐 산청과 거창으로 통하는 팔령치 관문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닫기 모산성(母山城)이라고도 한다.을 포위하였다. 신라 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 명을 보내 항전하자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돌아왔다.059059 동일한 내용이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평왕 24년조에 나오는데, 이 싸움에서 貴山과 箒項이 전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닫기 신라가 소타(小陀), 외석(畏石), 천산(泉山), 옹잠(甕岑) 등 4성을 쌓고, 우리 변경에 침범하였다. 왕이 노하여 좌평 해수(解讎)060060 백제 무왕 때의 장군으로 4만 대군을 거느리고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하였다.닫기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거느리고, 4성을 공격케 하였다. 신라 장군 건품(乾品)061061 신라 진평왕대의 장군이다.닫기, 무은(武殷)062062 신라 진평왕대의 장군으로 화랑 귀산(貴山)의 아버지이다.닫기이 군사를 거느리고 마주 싸웠다. 해수가 불리해지자 군사를 이끌고 천산(泉山) 서쪽의 대택지로 퇴각하여 복병을 숨겨 놓고 기다렸다. 무은이 승세를 타고 갑병 1천 명을 거느리고 소택지까지 추격하여 왔을 때, 복병이 달려들어 갑자기 공격하였다. 무은은 말에서 떨어지고 군사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무은의 아들 귀산(貴山)063063 신라시대 무장으로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추항(箒項)과 함께 원광법사에게서 세속오계를 배웠고, 602년 소감(少監)으로서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할 때 출전하여, 크게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가 심한 상처로 인해 죽었다. 나마(奈麻)에 추증되었다.닫기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일찍이 스승064064 신라 화랑의 계율인 세속오계를 전해준 원광법사를 말한다.닫기에게 들으니 ‘군사는 적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말라’065065 원광법사가 화랑인 귀산에게 준 世俗五戒의 하나인 ‘臨戰無退’를 말한다.닫기고 하였는데 어찌 감히 도망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겠느냐!” 그는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즉시 소장(小將) 추항(箒項)066066 신라 사량부 출신의 화랑이다. 친구 귀산과 더불어 원광법사로부터 세속오계를 받았으며, 모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닫기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우다가 사망하였다. 나머지 군사들이 이를 보고 더욱 분발하여 우리 군사가 패배하고, 해수는 겨우 위기를 모면하여 단신으로 돌아왔다.067067 백제 장군 解讎가 泉山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크게 패배한 것을 말한다.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평왕 24년조에는 동일한 내용이 간략하게 나오고, 권45 열전 귀산전에는 상세한 내용이 보인다.닫기

註 058
아막성은 운봉의 성리산성(곽장근, 《호남 동부지역 석곽묘연구》, 서경문화사, 1999)과 성산리산성(김태식, 《가야연맹사》, 일조각, 1993, 115쪽) 등으로 보고 있다. 백제는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아막성을 빼앗아 남원-함양선을 돌파하여 옛 가야 지역에 대한 진출을 시도하였다. 백제군은 운봉에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진주 방면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함양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남원이나 장수에서 운봉고원으로 올라가는 고갯길 입구에 펼쳐진 신라의 1차 방어망과 팔령치 부근에 펼쳐진 2차 저지선을 돌파해야 가능하였다. 아막성의 위치는 신라의 1차 방어선(성리산성)과 2차 방어선(성산리산성)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성리산성은 장수 번암에서 운봉고원으로 올라가는 백두대간 산줄기 정상부에 위치하면서 치재와 복성이재 등 큰 고갯길을 거느리고 있어 교통과 전략적인 요충지에 위치하였다. 그 반면에 성산리산성은 운봉고원에서 함양을 거쳐 산청과 거창으로 통하는 팔령치 관문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註 059
동일한 내용이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평왕 24년조에 나오는데, 이 싸움에서 貴山과 箒項이 전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註 060
백제 무왕 때의 장군으로 4만 대군을 거느리고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하였다.
註 061
신라 진평왕대의 장군이다.
註 062
신라 진평왕대의 장군으로 화랑 귀산(貴山)의 아버지이다.
註 063
신라시대 무장으로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추항(箒項)과 함께 원광법사에게서 세속오계를 배웠고, 602년 소감(少監)으로서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할 때 출전하여, 크게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가 심한 상처로 인해 죽었다. 나마(奈麻)에 추증되었다.
註 064
신라 화랑의 계율인 세속오계를 전해준 원광법사를 말한다.
註 065
원광법사가 화랑인 귀산에게 준 世俗五戒의 하나인 ‘臨戰無退’를 말한다.
註 066
신라 사량부 출신의 화랑이다. 친구 귀산과 더불어 원광법사로부터 세속오계를 받았으며, 모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註 067
백제 장군 解讎가 泉山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크게 패배한 것을 말한다.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평왕 24년조에는 동일한 내용이 간략하게 나오고, 권45 열전 귀산전에는 상세한 내용이 보인다.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정치>군사>전쟁>전투유형
정치>군사>군사조직>군사전략
색인어
이름 : 진평, 해수, 건품, 무은, 귀산, 추항
지명 : 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