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군

한양군(漢陽郡)108108 지금의 서울 특별시(特別市) 종로구(鐘路區)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46쪽).닫기은 본래 고구려(高句麗)109109 기원전 37년 ~ 668년까지 한반도 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국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주몽(朱夢)이 나라를 세웠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中國) 및 북방 이민족들과의 잦은 마찰을 통해 성장하여 요동 일대를 영역으로 두었다. 중간에 백제(百濟)와의 마찰로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전사하기도 했지만,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면서 한반도 남부 일대로 국력을 집중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하여 개로왕(蓋鹵王)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475). 고구려의 영역 확장은 중국 영토 내에 서로 다른 왕조들의 대립을 통해 가능했으며, 실제로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었다. 계속된 침입의 와중에 고구려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고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이 당(唐)에 귀순하면서 보장왕(寶藏王) 27년(668)에 수도 평양성(平壤城)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고구려본기 및 역주 김동윤).닫기북한산군(北漢山郡) 한편 평양(平壤)이라 이른다.이었는데 진흥왕(眞興王)110110 신라 24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540~576년이다. 본명은 삼맥종(彡麥宗), 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한다. 법흥왕(法興王)의 동생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김씨(金氏)이다. 비(妃)는 사도부인(思道夫人) 박씨(朴氏). 7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즉위 초에는 왕태후(王太后)인 법흥왕비(法興王妃)가 섭정하였다. 진흥왕은 즉위 후부터 불교를 받들었고, 말년에 이르러는 삭발한 후 승복(僧服)을 입고 스스로 법운(法雲)이라 칭했다. 왕비 역시 출가하였다(신라본기, 제4 진흥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이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경덕왕(景德王)111111 신라 3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742~765년이다. 본명은 헌영(憲英).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로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비(妃)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이다. 경덕왕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쳐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신라본기, 제9 경덕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은 양주(楊州) 옛 터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2개이다.
황양현(荒壤縣)112112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으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48쪽).닫기은 본래 고구려(高句麗)113113 기원전 37년 ~ 668년까지 한반도 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국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주몽(朱夢)이 나라를 세웠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中國) 및 북방 이민족들과의 잦은 마찰을 통해 성장하여 요동 일대를 영역으로 두었다. 중간에 백제(百濟)와의 마찰로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전사하기도 했지만,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면서 한반도 남부 일대로 국력을 집중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하여 개로왕(蓋鹵王)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475). 고구려의 영역 확장은 중국 영토 내에 서로 다른 왕조들의 대립을 통해 가능했으며, 실제로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었다. 계속된 침입의 와중에 고구려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고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이 당(唐)에 귀순하면서 보장왕(寶藏王) 27년(668)에 수도 평양성(平壤城)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고구려본기 및 역주 김동윤).닫기골의노현(骨衣奴縣)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114114 신라 3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742~765년이다. 본명은 헌영(憲英).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로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비(妃)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이다. 경덕왕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쳐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신라본기, 제9 경덕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풍양현(豐壤縣)115115 정덕본에서는 “△壤縣”으로 한 글자의 판독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삼국사절요》에서는 이곳을 “豐壤縣”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를 인정하여 교감 주해한다.닫기이다.
우왕현(遇王縣)116116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행주내동(幸州內洞) 및 외동(外洞) 일대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48쪽).닫기은 본래 고구려(高句麗)117117 기원전 37년 ~ 668년까지 한반도 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국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주몽(朱夢)이 나라를 세웠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中國) 및 북방 이민족들과의 잦은 마찰을 통해 성장하여 요동 일대를 영역으로 두었다. 중간에 백제(百濟)와의 마찰로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전사하기도 했지만,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면서 한반도 남부 일대로 국력을 집중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하여 개로왕(蓋鹵王)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475). 고구려의 영역 확장은 중국 영토 내에 서로 다른 왕조들의 대립을 통해 가능했으며, 실제로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었다. 계속된 침입의 와중에 고구려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고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이 당(唐)에 귀순하면서 보장왕(寶藏王) 27년(668)에 수도 평양성(平壤城)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고구려본기 및 역주 김동윤).닫기개백현(皆伯縣)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118118 신라 3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742~765년이다. 본명은 헌영(憲英).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로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비(妃)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이다. 경덕왕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쳐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신라본기, 제9 경덕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행주(幸州)이다.

註 108
지금의 서울 특별시(特別市) 종로구(鐘路區)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46쪽).
註 109
기원전 37년 ~ 668년까지 한반도 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국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주몽(朱夢)이 나라를 세웠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中國) 및 북방 이민족들과의 잦은 마찰을 통해 성장하여 요동 일대를 영역으로 두었다. 중간에 백제(百濟)와의 마찰로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전사하기도 했지만,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면서 한반도 남부 일대로 국력을 집중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하여 개로왕(蓋鹵王)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475). 고구려의 영역 확장은 중국 영토 내에 서로 다른 왕조들의 대립을 통해 가능했으며, 실제로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었다. 계속된 침입의 와중에 고구려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고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이 당(唐)에 귀순하면서 보장왕(寶藏王) 27년(668)에 수도 평양성(平壤城)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고구려본기 및 역주 김동윤).
註 110
신라 24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540~576년이다. 본명은 삼맥종(彡麥宗), 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한다. 법흥왕(法興王)의 동생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김씨(金氏)이다. 비(妃)는 사도부인(思道夫人) 박씨(朴氏). 7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즉위 초에는 왕태후(王太后)인 법흥왕비(法興王妃)가 섭정하였다. 진흥왕은 즉위 후부터 불교를 받들었고, 말년에 이르러는 삭발한 후 승복(僧服)을 입고 스스로 법운(法雲)이라 칭했다. 왕비 역시 출가하였다(신라본기, 제4 진흥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11
신라 3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742~765년이다. 본명은 헌영(憲英).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로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비(妃)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이다. 경덕왕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쳐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신라본기, 제9 경덕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12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으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48쪽).
註 113
기원전 37년 ~ 668년까지 한반도 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국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주몽(朱夢)이 나라를 세웠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中國) 및 북방 이민족들과의 잦은 마찰을 통해 성장하여 요동 일대를 영역으로 두었다. 중간에 백제(百濟)와의 마찰로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전사하기도 했지만,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면서 한반도 남부 일대로 국력을 집중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하여 개로왕(蓋鹵王)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475). 고구려의 영역 확장은 중국 영토 내에 서로 다른 왕조들의 대립을 통해 가능했으며, 실제로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었다. 계속된 침입의 와중에 고구려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고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이 당(唐)에 귀순하면서 보장왕(寶藏王) 27년(668)에 수도 평양성(平壤城)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고구려본기 및 역주 김동윤).
註 114
신라 3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742~765년이다. 본명은 헌영(憲英).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로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비(妃)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이다. 경덕왕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쳐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신라본기, 제9 경덕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15
정덕본에서는 “△壤縣”으로 한 글자의 판독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삼국사절요》에서는 이곳을 “豐壤縣”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를 인정하여 교감 주해한다.
註 116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행주내동(幸州內洞) 및 외동(外洞) 일대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48쪽).
註 117
기원전 37년 ~ 668년까지 한반도 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국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주몽(朱夢)이 나라를 세웠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中國) 및 북방 이민족들과의 잦은 마찰을 통해 성장하여 요동 일대를 영역으로 두었다. 중간에 백제(百濟)와의 마찰로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전사하기도 했지만,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면서 한반도 남부 일대로 국력을 집중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하여 개로왕(蓋鹵王)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475). 고구려의 영역 확장은 중국 영토 내에 서로 다른 왕조들의 대립을 통해 가능했으며, 실제로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었다. 계속된 침입의 와중에 고구려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고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이 당(唐)에 귀순하면서 보장왕(寶藏王) 27년(668)에 수도 평양성(平壤城)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고구려본기 및 역주 김동윤).
註 118
신라 3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742~765년이다. 본명은 헌영(憲英).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로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비(妃)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이다. 경덕왕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쳐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신라본기, 제9 경덕왕 및 역주 표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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