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칠일 동안 머물렀다.463463 돌집(石塚)이라 표현한 점에서 ‘무덤형의 돌무지’로 보고, 탈해가 이 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죽음과 재생을 표상하는 入社式으로 이해한 견해가 있다(김열규, 「民譚과 就任 모티브」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1971). 이와 같은 유형은 웅녀의 굴 안 日光禁忌 등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황패강, 「단군신회시고」 , ≪한국서사문학연구≫, 1972, 125~129쪽).닫기 성 안에 살만한 곳을 살펴보니 마치 초승달[三日月]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머물만한 땅이었다. 이내 내려와 그 곳을 찾으니 바로 호공(瓠公)464464 호공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본래 왜인으로 신라에 건너와서 혁거세 38년(기원전 20) 마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탈해왕 2년(58)에는 대보(大輔)가 되었다. ≪삼국유사≫에서는 탈해왕 4년(60)에 시림에서 알지의 탄강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왕에게 아뢰었다고 한다(≪삼국유사≫ 권1 기이1 김알지탈해왕).닫기의 집이었다. 이에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놓고 [다음날] 새벽 아침에 문 앞에 가서 “이 집은 조상 때부터 우리 집입니다.”라고 말했다. 호공이 “그렇지 않다.” 하여 서로 다투었으나 시비를 가리지 못하였다. 이에 관가에 고하자 관가에서 묻기를 “그 집이 너의 집임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하자 [동자가]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 전 이웃 고을에 간 사이에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동자의 말대로] 따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이에 그 집을 취하여 살게 하였다.

註 463
돌집(石塚)이라 표현한 점에서 ‘무덤형의 돌무지’로 보고, 탈해가 이 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죽음과 재생을 표상하는 入社式으로 이해한 견해가 있다(김열규, 「民譚과 就任 모티브」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1971). 이와 같은 유형은 웅녀의 굴 안 日光禁忌 등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황패강, 「단군신회시고」 , ≪한국서사문학연구≫, 1972, 125~129쪽).
註 464
호공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본래 왜인으로 신라에 건너와서 혁거세 38년(기원전 20) 마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탈해왕 2년(58)에는 대보(大輔)가 되었다. ≪삼국유사≫에서는 탈해왕 4년(60)에 시림에서 알지의 탄강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왕에게 아뢰었다고 한다(≪삼국유사≫ 권1 기이1 김알지탈해왕).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활동(결혼·통치)
사회>사회조직>신분>주택
색인어
이름 : 호공,호공
지명 : 토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