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정을 시중으로 삼다 ( 812년 (음) )

4년(812년) 봄에 균정(均貞)170170 원성왕의 손자이고 예영태자(禮英太子)의 아들인 김 균정을 가리킨다. 헌덕왕 4년(812년) 봄에 시중이 되었다가 동왕 6년(814년)에 김헌창과 교체되었다. 822년 3월에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균정은 김웅원(金雄元), 김우징과 함께 이 난을 단시일내에 토벌하였으며, 835년 2월에는 김충공의 후임으로 상대등이 되었다. 이듬해 12월에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아들 우징과 조카 예징(禮徵), 김양(金陽) 등의 추대로 왕위 경쟁에 나섰으나 살해되었다. 후에 아들 우징(祐徵)이 왕위에 오르자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추봉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12).닫기을 시중으로 삼았다.

註 170
원성왕의 손자이고 예영태자(禮英太子)의 아들인 김 균정을 가리킨다. 헌덕왕 4년(812년) 봄에 시중이 되었다가 동왕 6년(814년)에 김헌창과 교체되었다. 822년 3월에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균정은 김웅원(金雄元), 김우징과 함께 이 난을 단시일내에 토벌하였으며, 835년 2월에는 김충공의 후임으로 상대등이 되었다. 이듬해 12월에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아들 우징과 조카 예징(禮徵), 김양(金陽) 등의 추대로 왕위 경쟁에 나섰으나 살해되었다. 후에 아들 우징(祐徵)이 왕위에 오르자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추봉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312).
주제분류
정치>행정>관인>인사·제도
색인어
이름 : 균정